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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고성선원, 고성토굴, 진월스님, 도원 &gt; go-sung &gt; Zen Academy</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link>
<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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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황벽 희운</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46</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황벽 희운 黃蘗 希運 </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선사는 민&#38313; 지방 출신으로, 이마 사이가 우뚝 솟은 것이 살로 된 구슬 같았고, 음성이 낭랑하며 의지가 깊고 맑았다. 어릴 때에 고향의 황벽산黃蘗山에서 출가하였다. 나중에 천태산天台山에 가다가 어떤 스님을 만났다. 그와 함께 웃고 말하기를 마치 예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처럼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눈의 광채가 사람을 쏘듯 빛났다. 그와 같이 길을 가는데, 때마침 개울물이 넘쳐서 삿갓을 벗고 지팡이를 세워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이때 그 스님이 선사를 데리고 함께 건너겠다고 하자, 선사가 “건너시려면 사형이나 혼자 건너시오.” 말했다. 그 스님이 옷을 걷고 물살을 건너는데,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하면서 돌아보며, “건너오시오, 건너오시오.” 말하자, 선사가 “쯧쯧 고얀 놈이로군, 내가 진작부터 알았더라면 네 다리를 꺾어 놓았을 것이다.” 말했다. 그 스님이 탄복하여서, “참으로 대승의 법기法器이시니, 저로서는 미치지 못할 바입니다.” 말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나중에 서울京師에 갔다가 어떤 사람이 알려 주어서 백장을 찾아가 물었다. “위로부터 전해오는 종승宗乘을 어떻게 보여 주십니까?” 하지만 백장이 잠자코 있으니, 선사가 “뒷사람들로 하여금 끊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였다. 백장이 “장차 그대가 그런 사람이 되겠구나.” 하며 일어나서 방장으로 들어가니, 선사가 뒤를 따라 들어가서 “저는 일부러 찾아 왔습니다.” 말하자, 백장이 “그렇다면 뒷날에 나를 저버리지 말라.” 하였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어느 날 백장이 선사에게 “어디를 갔다 오는가?” 물으니, 선사가 “대웅산大雄山 밑에서 버섯을 따고 옵니다.” 대답하였다. 백장이 “호랑이大蟲을 보았는가?” 하니, 선사가  호랑이 소리 흉내를 내니, 백장이 도끼를 들고 찍으려는 시늉을 하였다. 대사가 백장을 한 대 갈기니, 백장이 껄껄 웃고는 돌아가 버렸다. 백장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대웅산 밑에 호랑이가 한 마리 있으니, 여러분은 조심하시오. 늙은 백장도 오늘 한 차례 물렸소.” 라고 말했다. 선사가 남전南泉 회상에 있을 때에 울력으로 나물을 다듬는데, 남전이 “어디를 가시오?” 물으니, 선사가 “나물을 다듬으러 갑니다.” 대답했다. 남전이 “무엇으로 다듬는가요?” 물으니, 선사가 칼을 번쩍 들었고, 남전이 “여러 사람이 나물을 다듬는군.” 하였다. 어느 날 남전이 선사에게 “내가 우연히 목우가牧牛歌를 지었는데, 장로長老가 화답해 주시오.” 말하자, 선사가 “저에게는 따로 스승이 계십니다.” 하였다. 선사가 하직하고 떠나는데 남전이 문밖까지 전송을 나왔다가 대사의 삿갓을 번쩍 들고, “장로의 몸은 몹시 큰데 삿갓은 퍽 작구려.” 말하니, 선사가 “그렇지만 대천세계가 몽땅 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 라고 대구하였다. 남전이 다시 “왕王 노사老師는 적&#32891;이오.” 하니, 선사는 그대로 삿갓을 쓰고 떠났다. </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그 뒤에 홍주洪州 대안사大安寺에 머물렀는데 학자들이 밀물같이 모였다. 당시에 정승相國인 배휴裵休가 완릉 宛陵 지방을 다스렸는데, 그는 대선원大禪院을 짓고 선사에게 설법을 청하였다. 선사가 본래 머물던 산을 몹시 사랑하므로 다시 황벽黃蘗이라 불렀다. 나중에 또 고을로 청하여 모시면서 자기가 저술한 글 한 편을 선사에게 보이니, 선사는 이를 받아서 자리 옆에 놓으며 대략 훑어보지도 않고 가만히 침묵하다가, “알겠는가?” 물었다. 배휴가 “모르겠습니다.” 대답하니, 선사가 “문득 이렇게 회통한다면 오히려 비슷하겠지만, 만약 종이나 먹으로 표시한다면 어찌 나의 종지라 하겠는가?” 말하였다. 배휴는 다시 시 한수를 지어 바쳤으니: 대사의 심인心印 전해 받은 뒤부터 (自從大士傳心印), 이마에 구슬 있는 일곱 자 몸이 (額有圓珠七尺身), 촉수蜀水에 십년 동안 주석하다가 (掛錫十年棲蜀水), 돛단배 타고 오늘 장빈 건넜네. (浮盃今日渡章濱). 천여 명 용상들이 높이 따르고 (一千龍象隨高步), 만리향 꽃과 같이 인연을 맺어 (萬里香華結勝因), 제자로 섬기기를 원하지만은 (擬欲事師爲弟子), 그 법을 누구에게 부촉하실까? (不知將法付何人). 그러나 선사는 여전히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로부터 문중의 가풍이 강표江表에 성행하였다. 당나라 대중大中 때에 본산  에서 임종하니, 단제斷際 라는 시호와 광업廣業이라는 탑호가 드려졌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진월이 찬탄 첩부한다. </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style=""><font size="4" style=""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백장의 법을 받아 호랑이 위세로서,</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 size="4"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강호(江湖)를 제접하고 임제에 부촉하니,</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 size="4" style=""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높고 큰 선풍(禪風) 법맥이 뒷세상에 전하네.</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황벽희운 선사는 백장회해의 법을 이었고 임제의현 선사에게 전하여, 후대에 가장 활발한 임제종의 비조가 되신 분으로서, 한국에서는 고려말기에 가지산문의 태고보우 선사가 그 법계에 속한 석옥청공의 법을 받으면서, 오늘날 조계종으로 이어져 옵니다. 그분의 법어로 전하는 &lt;전심법요(傳心法要)&gt;는 간결 명료하게 선법의 요체를 보이는 선문의 주요 어록으로 전해져 옵니다.&nbsp; &nbsp; &nbs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ue, 21 Jul 2020 02:15:1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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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운거 도응</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45</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운거 도응 雲居 道膺</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선사는 유주幽州 계문&#34186;門 옥전玉田 출신으로, 성은 왕王씨이다. 어릴 때에는 재능이 뛰어나고 태어날 때부터 아는 지혜가 있었으며, 오랜 친구들을 격식을 갖추어 대하여 좋은 명성이 특별히 자자했다. 25세에 유주의 연수사延壽寺에서 계를 받고는, 처음에 비니 율장을 익히다가 “대장부가 어찌 자질구레한 형식에 걸리어 큰 길을 잃겠는가?” 라며 탄식하고, 의발과 지팡이를 챙기어 취미翠微 화상을 찾아가서 현묘한 진리의 강에 한 번 목욕한 뒤로 3년의 세월을 보냈다. 석실에 머물고 있을 때, 별안간 울긋불긋하고 특이한 의상을 입은 두 사자가 나타나, “스님께서는 남쪽으로 가시오. 그러면 반드시 기이한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하였다. 그 뒤에 과연 홍호洪湖에서 온 취의&#27635;衣를 입은 스님을 만났는데, “동산대사가 당대의 종장宗匠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이 말을 듣고는 곧 옷매무새를 고치고 동산으로 갔다. 동산대사는 격조가 높고 고풍스러웠으며, 말씀은 간략하나 뜻은 현묘했다. 선사가 도착하여 예로서 인사를 마치니, 동산이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묻자, 선사가 아무라고 이름을 고하였다. 그러자 동산이 “위로 향하는 법을 다시 일러라.” 하였고, 선사가 “위로 향하는 도에는 아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하니, 동산이 “내가 운암雲巖에 있을 때, 운암에게 대답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하였다. 이로부터 아침에 참문하고 저녁에 근신하며 평정을 유지하려 힘썼다. 또한 황제皇帝가 적수赤水에서 잃어버린 여의주를 찾고자 고심하는 그 심정을 본받고, 온백설자溫伯雪子가 공자와 눈빛만 마주치고도 그에게 도가 있음을 알아본 훌륭한 오성悟性을 모방하였다. 어느 날 동산에게 선사가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물었는데, 동산이 “그대가 뒷날 어떤 곳의 주지가 되었을 때, 누군가가 그렇게 물으면 무엇이라 대꾸하겠는가?” 하니, 선사가 “저의 허물입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동산이 선사에게 “듣건대 사대思大 화상께서 왜국倭國에 가서 왕이 되셨다 하는데, 사실인가?” 물으매, 선사가 “사대화상이라면 부처도 되지 않으셨을 터인데, 하물며 국왕이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고, 이에 동산이 묵묵히 인정하였다. 이로부터 현묘한 법을 남몰래 받고, 듣지 못했던 바를 들었으므로 다시 다른 곳으로 가려는 생각도 내지 않고, 배우려는 마음도 쉬었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선사가 상당할 때마다 다음과 같이 설했다. “무릇 출가한 사람은 오직 자기 분수에서 가려 취해야 하며, 절대로 분수 밖에서 찾으면 안 된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봇짐을 꾸려야 할 것인가? 또 몸에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고, 입으로는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말을 하여야 하는가? 몸에 고상한 옷을 걸쳤으면 숭앙받는 길을 취해야 한다. 그대들은 천 리, 만 리 밖에서 행각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여기에서도 다시 쉽게 쉽게만 보내면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사소한 인연이 큰일을 그르치지 않게 하라. 큰일을 끝내지 못했거든 밤낮으로 인因에 부합되게 닦아야 한다. 그래서 ‘존귀한 어른을 대하듯  하고, 조심조심하라.’고 하였으니, 가려 취할 때는 마치 살얼음을 밟듯 하고, 부지런히 지극한 도를 구할 때는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라고 하였으니, 다시 무슨 한가할 틈이 있겠는가? 마치 불길이 뒤쪽에서 엄습해 오는 것처럼 신속히 나아가야 한다. 일체의 일에 있어서는 모두 그 속을 남김없이 거두어들여 하나하나 잘 알아야 하고, 현상마다 달통해야 한다. 만약 털끝만한 일이라도 다하지 못함이 있다면 고달프게 될진대, 하물며 많은 일에서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한 걸음 자칫 실수하였다면 곧바로 한 걸음을 돌이켜라. 만약 돌이키지 않으면 까마득한 여러 겁에 매일 것이니, 이는 곧 생生을 자나는 것이며, 겁劫을 지나는 것이니라. 천 생, 만 생의 일이 단지 한 방향에 달렸으니, 만일 이 소식을 알지 못하면 천 생, 만 겁 동안 우둔하리라.“                 </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병마兵馬가 운거산으로 밀려들자, 대중이 모두 도망을 쳤는데, 오직 선사만이 단정히 앉아 요동하지 않았다. 통군사統軍事가 절도 하지 않고 마주 앉아서, “세계가 언제 편안해지겠습니까?” 물으니, 선사가 “장군의 마음이 흡족해진 뒤입니다.” 대답하자, 통군사가 얼른 선사에게 절을 하였다. 어떤 스님이 “3천리 밖에서 운거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랜데, 3천리 안의 일이 어떠합니까?” 물으니, 선사가 “3천리 안은 온통 진여眞如뿐이니라” 대답하였고, “어떤 것이 진여입니까?” 라는 물음에는 선사는 “3천의 3천이니l라.” 라고 대답하였다. “설산에서 6년 고행하심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라는 물음에는 “스스로 그 뜻을 세우려는 것이요, 만 가지 법에 의지하지 않으려는 것이니라.” 대답하였고, “샛별이 솟을 때 무엇을 보셨습니까?”라는 물음에는, “아무것도 본 것이 없느니라.” 대답하였다. “어떤 공부를 하였기에 외도外道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까?”라는 물음에는, “모든 것을 쉬느니라.” 하였으며, “떨어지고 때 뭇은 옷을 입은 소식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는, “한층 더 높아지느니라.” 하였으며, “그러면 교화를 보이시어 여러 근기를 이끌어 주는 것이군요” 하니,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천복天復 원년 가을에 선사가 갑자기 가벼운 병을 얻었는데, 동짓달 초순에 이르러서도 종종 가르침을 내리더니, 28일 저녁에 주사主事와 삼당의 상좌들이 문안을 드리러 가자, 그들을 돌아보고는, “그대들, 여기에 있으면서 대충 멀고 가깝고 한 것을 알았을 것이다. 죽고 사는 일은 예사로운 것이니, 과히 걱정하지 말라. 못을 끊고 쇠를 자르는 신념으로 불법을 어기지 말고, 죽기를 각오한 심정으로 여래를 저버리지 말라. 일은 많지 않은 것이 좋으니, 제각기 알아차려야 하느니라.” 고 말했다. 그 이듬해 정월 초이틀에 시자에게 “오늘이 며칠인가?” 물으니, 시자가 “설을 지내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대답하니, 선사가 “내가 출세한 지 꼭 30년이 되었으니, 떠날 때가 되었구나.” 하고 다음날 새벽에 입적하였다. </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p><p class="바탕글" style=""><font size="4" style=""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동산洞山의 법을 받아 운거산 회상 열어,</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 size="4"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천여 명 이끄시며 모범을 보이신 분!</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 size="4" style=""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진철眞澈에 부촉하시어 수미산문 須彌山門 여셨네.</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운거도응선사는 동산양개 선사의 법을 이어 운거산에 주석하며 천여 명이 모여든 큰 회상을 열었고, 동문同門인 조산본적과 같이 후대의 조동종 가풍을 크게 선양하였습니다. 신라에서 온 이엄선사가 그분의 법을 이어받고 돌아와, 구산선문의 하나인 수미산문을 열수 있게 하였기로, 한국에 큰 법연을 보인 분입니다. 수행자의 본분을 일깨우며 모범을 보이신 선사의 뛰어난 삶은 훌륭한 귀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Mon, 13 Jul 2020 12:51:4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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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동산 양개</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43</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동산 양개 洞山 良价</p><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선사는 월주 저기현 출신으로 성은 유兪씨이다. 처음에 촌원村院의 원주院主에게 출가하였는데, 원주는 선사를 감당하지 못했으나 선사는 싫어하거나 꺼리는 생각이 전혀 없이 그곳에서 2년을 지냈다. 원주는 그의 효순함을 보고 &lt;심경心經&gt;을 외우라고 했는데, 하루 이틀도 못가서 훤하게 외워버렸다. 스승이 다시 다른 경을 외우게 하려 하니, 선사가 “이미 외운 &lt;심경&gt;의 뜻도 아직 모르니, 다른 경을 배우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원주가 “전에 신통하게도 잘 외웠는데, 애 모른다고 하는가?” 물었고, 선사가 “&lt;심경&gt; 안의 딱 한 구절을 모릅니다.” 라고 대답하니, 원주가 “모른다는 구절이 어디인가?” 물음으로, 선사가 “눈 귀 코 혀 몸 뜻이 모두 없다 (無眼耳鼻舌身意)는 구절을 모릅니다. 화상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하니, 원주는 말이 막혔다. 이로부터 이 법공法公이 예사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원주는 곧 선사를 데리고 오설五洩 화상에게 가서 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하고는 “이 법공은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화상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하였고, 오설이 허락하였다. 선사가 그곳에 머문 지 3년이 지나자 계를 받고 모든 것을 다 깨친 뒤에 화상에게. “스승께 말씀 드립니다. 제가 행각行脚을 떠나고 싶으니, 화상께 허락을 청합니다.” 말하니, 오설이 “결택決擇을 찾고자 한다면, 남전南泉에게 가서 물으라.” 하였다. 선사가 “한번 떠나면 반연攀緣이 끊어질 것이니, 외로운 학은 둥우리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남전에게로 갔다.  남전이 귀종歸宗의 재를 올리는 자리에서, 법어를 내리기를 “오늘 귀종을 위해 재를 지내는데, 귀종이 오겠는가?” 하니,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선사가 나서서 절하고는 “스님, 다시 물어 주십시오.” 하였고, 남전이 물으니, 선사가 “길동무가 있으면 올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남전이 뛰어내려 등을 어루만지면서 “비록 후생이지만 다듬을 만한 재목이구나.” 하니, 선사가 “양민을 천민으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했다. 이로부터 이름이 천하에 퍼져 작가作家라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 운암을 참례하여 현묘한 뜻을 모두 깨쳤고, 그의 법을 이었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운암이 원주가 석실로 떠나려는 것을 알고, “석실에 가거든 그대로 돌아와서는 안 되느니라.” 말했으나, 원주가 대답이 없으므로 선사가 “그곳에는 벌써 누군가가 미리 자리를 차지해 버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운암이 다시 “그대는 다시 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물으니, 선사가 “인정을 끊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고, 또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인가?” 물으매, 선사가 “흡사 해계서解&#38622;犀(무소뿔)와 같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운암의 재齋에 어떤 이가 “화상은 돌아가신 스승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습니까?” 물으니, 선사는 “내가 비록 거기에 있었으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느니라.” 대답했고, “받은 것이 없다면 재를 차려서 무엇 합니까?” 하니, 선사가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으나 그를 저버릴 수는 없느니라.” 하였다. 또 재를 차리는데, “화상께서 돌아가신 스승의 재를 차리시니, 그 스승을 인정하시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반은 인정하고 반은 인정하지 않느니라.” 대답하였고, “어째서 전부를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라는 물음에는, “만일 전부를 인정하면 돌아가신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고 대답했다.  선사가 운거雲居에게 “어디를 다녀 오는가?” 물으니, “산을 돌아보고 옵니다.”라고 대답하자, 선사가 다시 “어느 산이 살 만하던가?” 물었고. 운거가 “어느 산인들 살 만하지 않겠습니까?” 대답하니, 선사가 “그렇다면 당나라 안의 모든 산을 몽땅 그대가 차지했구나.” 말하자, 운거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니, 선사가 “그렇다면 그대는 들어갈 문을 얻었구나.” 하자, 운거가 “길이 없습니다.” 하였다. 선사가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러 왔는가?” 물으니, 운거가 “길이 있다면 화상과 간격이 생깁니다.” 대답하자, 선사가 “이 사람은 뒷날 천만 사람이 잡아도 잡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p><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선사가 학도學徒들에게 권하기를: “천지 안, 우주 사이에 하나의 보배가 형체 속에 숨겨져 있다. 사물을 인식하는데 영특하나 안팎이 공적하고 적막하여 찾기 어려우니, 그 지위가 현묘하고도 현묘하다. 다만 자기에게서 구할지언정 남에게서 빌리지 말아야 하니, 빌릴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어 모두가 남의 마음이니 제성품만 못하며, 성품은 여여해서 청정하니, 이것이 곳 법신이다. 초목의 생성에 대한 견해도 이와 같도다. 머무를 때에는 반드시 벗을 선택하여 때때로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 멀리 갈 때에는 반드시 좋은 벗에 의탁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밝혀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이룬 이는 벗이다.’ 하였느니라. 선한 이를 가까이하면, 마치 안개 속을 다니는 것 같아서 옷을 적시지는 않으나 차츰차츰 눅눅해지고, 쑥이 삼이나 대 속에 나면 붙들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진다. 흰 모래가 진흙과 함께 있으면 함께 검어지나니, 하루 스승으로 모셨으면 종신토록 아버지 같이 대해야 한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또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여기는 모름지기 구절과 구절이 끊이지 않게 하여야 한다. 마치 장안長安으로 통하는 여러 길과 같이, 설사 실오리 같은 길이라도 끊이지 않는 것과 같아야 한다. 통하지 않는 곳이 있으면 이는 군주君主를 받들지 않는 것이니, 이 사람의 목숨은 경각에 달렸을 것이다. 설사 훌륭하고 묘한 법을 배웠다 하여도 역시 군주를 받들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그 밖의 것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 세상의 사소한 일 때문에 큰일을 잃지 마라. 가령 흉내를 내어서 약간의 옷과 밥을 얻는다 해도 나는 필경 노비로 다시 태어나 갚아야 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옛 어른이 말하기를 ‘모든 종류에 따라 각각 분재分齋가 있다’ 했으니, 기왕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옷과 밥에만 얽매이지 말고 인연에 맡겨 집착을 내지 말아야 한다. 나의 가풍은 이러할 뿐이다. 수긍하든 안하든 끝끝내 그대들 마음대로 동서 왕래함을 윽박지르지 않겠노라. 진중珍重하라.”고 하였다. </p><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선사가 함통咸通 10년 3월 1일, 삭발하고 가사를 입더니, 종을 치게 하고는 의젓이 앉아서 떠나니, 대중이 통곡하였다. 그러자 다시 깨어나서, “무릇 출가한 사람은 마음을 사물에 의지하지 않아야 하나니, 이것이 참 수행이다. 어찌 슬프고 안타까울 일리 있으랴.”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원주를 불러 우치재愚癡齋를 차리라 하니, 원주가 슬피 울면서 재를 차렸다. 7일째가 되자 선사도 조금 먹더니, 마지막 날에 말하기를, “중들이 어찌 이다지 경솔한가? 큰 길을 떠나는데, 어째서 이렇게 소란스럽고 슬퍼하는가?” 하였다. 8일째가 되는 날, 목욕물을 데우게 하여 목욕을 하고 단정히 앉아서 떠나니, 나이는 62세요, 승랍은 41세였다. 오본悟本이라는 시호와 혜각慧覺이라는 탑호가 드려졌다. </p><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style=""><font face="궁서" style="" size="4"><b>&nbsp; &nbsp; &nbsp; &nbsp; 운암雲巖의 법을 받아 동산 洞山에 머물면서,</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조산曹山 및 운거雲居에게 전하신 오본선사悟本禪師.</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생사에 자재함 보여 수행모범 되시네.</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 face="궁서" size="4"><b><br></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동산 양개선사는 마조의 준족이었던 남전南泉선사에게 참문하여 수도한 뒤에 석두의 상수였던 운암에게 참문하고서 법을 받았고, 조산본적과 운거도응 등에게 법을 전하여, 후대 오종 가운데 하나인 조동종의 비조가 되었으며, 한국 구산선문의 하나인 수미산문 개창조 진철이엄 선사 선맥의 선조가 되신 분입니다. 많은 가르침과 일화를 남기셨으며, 근본에 충실하였고 주체적 사상과 정진으로 후대의 모범을 보이셨으니, 빛나는 귀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28 Jun 2020 01:52:3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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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약산 유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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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약산 유엄 藥山 惟儼</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lt;조당집&gt;에서 전하기를: 선사는 강주絳州 출신으로 성은 한韓씨이다. 남강南康으로 옮겨 살았는데, 17세에 조주潮州 서산西山 혜조慧照를 섬기다가 대력大歷 8년에 형악衡岳에서 희조希&#25030; 율사에게 계를 받았다. 어느 날 아침에 선사가 “대장부가 마땅히 법을 떠나 스스로 청정해질지언정 어찌 형식적인 세행(肩肩事)에 얽매이겠는가?” 하고는, 그길로 석두 대사를 뵙고, 현묘한 뜻을 은밀히 이어 받았다. 선사는 정원貞元 초에 예양禮陽의 작약산芍藥山에 살았으므로 약산화상이라 불리게 되었다. 선사가 처음 머물 때, 촌장에게 가서 얻어 승당僧堂을 만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스무 명의 스님이 모였다. 이 때 갑자기 어떤 스님이 나서서 자진하여 원주院主 소임을 보니, 차츰차츰 40-50명이 모여서 장소가 협소하게 되었다. 이에 뒷산에 올라가 조그만 집을 지어 놓고 와서 약산에게 윗자리에 앉기를 청하여 모시고, 차례차례 대중이 그 집의 일을 주관해서 원주를 봤다. 원주가 선사에게 설법해 주기를 두세 차례 청하니, 화상이 한두 차례는 허락하지 않았으나, 세 번째에야 비로소 승낙 하였다. 이에 원주가 기뻐하면서, 대중에게 알리자, 대중은 기뻐하며 종을 치고 모였다. 대중이 모이자마자 선사는 문을 닫아 버리고 방장으로 돌아가니, 원주가 밖에서 힐난하며, “화상께서는 아까 저희들에게 설법해 주실 것을 허락해 주셨는데, 이제 어째서 중생들을 위하지 않으시고 저를 속이십니까?” 말하였다. 선사가 “경經에는 경사經師가 있고, 논論에는 논사論師가 있으며, 율律에는 율사律師가 있거늘, 원주는 나의 어떤 점을 나무라는가?” 대답하였다. 이로부터 한가한 며칠이 지난 뒤에 선사가 법당에 오르니, 어떤 이가 “화상은 누구의 법을 이으셨습니까?” 물으니, 선사가 “옛 부처님의 전각에서 글을 한줄 주었느니라.” 대답하였고, “그 한 줄에는 무엇이 쓰여 있었습니까?” 라는 물음에는 “그는 나를 닮지 않고, 나는 그를 닮지 않았다 했느니라. 그러므로 그 글자를 인정했느니라.” 라고 답하였다.      상공相公 이고李&#32758;k 선사를 뵈러 왔는데, 마침 선사가 경을 보고 있던 까닭에 전혀 돌아본 체도 하지 않으니, 상공은 절을 할 생각도 않고, “만나보니 천 리 밖에서 소문을 듣는 것만 못하구나.” 하며 비꼬는 말을 하였다. 이에 선사가 “상공” 하고 그를 불렀고, 그가 대답하자, “어찌 귀만 소중히 여기고 눈은 천히 여기는가?” 말하니, 상공이 얼른 절을 하고 나서 “어떤 것이 도입니까?” 물었다. 선사가 하늘을 가리켰다가 다시 물병을 가리키고서,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느니라.” 대답하였다. 상공이 절을 한 뒤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어 찬탄하였다. “고상히 연마한 몸 학 같으시고 練得身形似鶴形, 천 그루 솔밭 속에 두 상자의 경 千株松下兩函經, 스승께 도 물으니 별 말씀 없이 我問師道無餘說, 구름은 하늘 물은 병에 있다네 雲在靑天水在甁.”  선사가 어느 달 밝은 밤에 약산에 올라 밤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한바탕 웃었는데, 서쪽으로 90리 밖 예양까지의 사람들이 그날 밤 모두가 자기네 동쪽 이웃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고 하면서 차츰차츰 동쪽으로 찾아와서 약산에 이르니, 대중들이 말하기를, “지난밤에 화상께서 산마루에서 웃으시는 소리를 들었노라.” 하였다. 이에 상공 이고가 다음과 같이 찬탄했다. “그윽한 살림살이 흐뭇해하고 選得幽居 &#24860;野情, 한 해를 마치도록 오고 감 없네 終年無送亦無迎, 때로는 산봉우리 곧장 올라서 有時直上孤峰頂, 달 아래 구름 헤쳐 한바탕 웃네 月下披雲笑一聲.” 상공이 따로 선사에게, “어떤 것이 계誡 정定 혜慧 입니까?” 물으니, 선사가 “빈도貧道의 처소에는 그런 소용없는 살림살이는 없느니라.” 대답하였다. 다시 “저의 할 일을 아직 밝히지 못했으니, 화상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청하니, 선사가 한 동안 잠자코 침음沈吟하더니, “내가 지금 그대에게 한마디 말해 주기는 어렵지 않으나 그대가 오직 말 끝에 알아보아야 하느니라.” 라고 말했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어떤 스님이 “목숨이 몹시 급한 곳은 어떠합니까?” 물으니, 선사가 “잡곡을 심지 말라.” 대답했다. “그러면 무엇을 공양하시겠습니까?” 물으니, “입 가진 이가 없느니라.” 라고 대답하였다. 선사가 설법하기를 “여러분들이 보임하는 일을 알고자 한다면,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서고, 깊고 깊은 바다 밑에 들어가서 걸어야 하나니, 여기서 다니기와 조금도 다름이 없어야 비로서 약간 상응相應할 몫이 있다 하느니라.” 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 말을 들어 순덕順德에게, “옛사람이 말하기를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가서 서고, 깊고 깊은 바다 밑으로 다니라’ 했는데, 어떤 것이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서는 것입니까?” 물으니, “거기는 가파르니라.” 대답하였고, “어떤 것이 깊고 깊은 바다 밑으로 다니는 것입니까?”라는 물음에는 “깊고 밝은 데를 밟고 걷는 것이니라.”고 대답했다. 선사가 경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화상께서 평소에 경을 보지 못하게 하시더니, 어째서 자신은 경을 보십니까?” 물으니, 선사가 “내 눈을 가려야겠군.” 하고 대답했다. “학인도 화상을 따라 경을 보아도 되겠습니까?” 라는 물음에, 선사가 “그대가 나를 따라 경을 본다면, 쇠가죽도 뚫을 것이니라.” 고 대답하였다. 장경長慶이 이 이야기를 들어 어떤 스님에게, “옛사람이 눈을 가린다 하였는데, 눈에 무슨 허물이 있는가?” 물었고, 이에 대답하는 이가 많았으나 모두가 장경의 뜻에 부합되지 못하므로, 스스로 대답하여 말하기를, “또 하나 눈에 티는 어찌할 것인가?” 하였다. 선사가 태화太和 8년 11월 6일에 대중에게 외치기를, “법당이 쓰러진다, 법당이 쓰러진다.” 하였지만, 대중이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물건을 들고 나가 버리니, 선사가 손뼉을 치면서 깔깔 웃으며, “그대들은 나의 뜻을 모르는구나.” 말하고는 열반에 들었다. 춘추는 84세요 법랍은 65세였으며, 홍도弘道대사라는 시호와 화성化城이라는 탑호가 드려졌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style=""><font size="4" style=""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석두의 법을 잇고 약산에 석장錫杖세워</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 size="4"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납자를 제접하고 상공을 깨우치니,</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 size="4" style=""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고봉孤峰의 한 웃음소리 백리 밖에 퍼졌네. </b></font></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약산유엄 선사는 석두희천의 법을 이어서, 운암담성에게 전하여, 후대 오종 가운데 임제종과 쌍벽을 이루는 조동종의 비조가 되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경을 보면서도 거기에 걸림이 없으셨고,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선의 안목을 유지하며 대중을 교화하셨습니다. 이고와 같은 재상들에게도 의연하게 깨우치고 이끌었으며, 그렇다고 교만하거나 방자한 모습보다 겸손하고 순진하며 조촐한 살림살이를 통해 승속을 천연스럽게 제접하고 구원하셨으니, 그 가풍이 넓고 깊다 하겠습니다.         </p><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9pt;">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21 Jun 2020 01:49:1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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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석두 희천</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39</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석두 희천 石頭 希遷</p><p class="바탕글">   &lt;조당집&gt;에 전하기를: 선사의 휘諱는 희천이요, 속성은 진陳씨이며, 단주端州 고요高要 출신으로, 길주吉州 행사行思 화상의 법을 이었고, 남악南嶽에 살았다. 태중에 있을 때에 어머니가 비린내와 누린내 나는 음식을 끊었다. 탄생하는 날 저녁 방안에 광명이 가득하여서 부모가 이상하게 여겨 무당巫祝에게 물으니, 무당이 “이는 길하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풍골이 단정하고 수려하며, 턱이 모지고 귀가 크며, 극히 조용하여 잡되지 않으니, 예사 아이들과 다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어릴 때(7-8세 무렵)에 절에 갔는데, 불상을 보자 어머니가 절을 하게 하면서, ‘이것이 부처님이시다’ 하니, 선사가 절을 하고는 한참 바라보다가, “이 사람의 형상이나 손발 어디가 사람과 다른가? 이가 부처라면 나도 부처가 되리라.” 고 말하였다. 이에 승속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이때 친척과 마을에서는 모두가 미신을 숭상하여 희생물을 가지고 가서 복을 빌었는데, 동자가 불쑥 따라가서 보고는 제단을 헐고 희생물을 빼앗아 가지고 오기를 10여 년 동안 하니, 친족들 모두가 절을 돌면서 더욱 깨끗한 업을 닦기 시작하였다. 이 때 6조가 바야흐로 바른 법을 펴고 있었는데, 선사는 대대로 신주新州 가까이 살았으므로 바로 가서 육조를 뵙게 되었다. 육조가 한번 보자마자 기뻐하며 머리를 만지면서, “네가 나의 참 법을 잇게 될 것이니라.” 하고는, 밥상을 함께하면서 출가하기를 권하니, 이에 머리를 깎고 속세를 떠났다. 개원開元 16년에 나부산羅浮山에서 구족계를 받고 율부律部를 뒤지다가 장점과 단점을 발견하고 분연히 탄식하기를, “자성自性이 청정함이 계戒의 본체이다. 여러 부처님은 지음(作)이 없거늘 어찌 남(生)이 있으랴?”하고는 이로부터는 사소한 일에는 구애받지 않았고, 문자를 숭상하지도 않았다. 또 승조僧肇의 &lt;涅槃無名論&gt;을 보다가 “만상萬像을 망라해서 자기를 삼는 것은 성인뿐이시다.”라고 한 곳에 이르러, “성인은 자기가 없되 자기 아닌 것이 없고, 법신法身은 한량이 없거니 누가 나와 남이라 말하랴. 둥근 거울이 그 사이에 비치면 만상의 현묘한 본체가 저절로 나타난다. 경계와 지혜가 진실로 하나이거니, 누가 있어 가고 오는가? 참으로 훌륭하도다. 이 말씀이여.” 라고 말하였다. </p><p class="바탕글">   일찍이 산골 초막에서 잠시 졸다가, 자신이 육조와 한 마리의 거북을 타고 깊은 못 안을 헤엄쳐 가는 꿈을 꾸었는데, 깨어나서 “거북은 신령한 지혜요, 못은 성품의 바다이니, 나와 우리 스님은 함께 신령한 지혜를 타고 성품의 바다에 항해한지 오래 되었구나.” 라고 말했다. 육조가 임종할 때에 선사가 묻기를, “화상께서 돌아가신 뒤에 저는 누구를 의지하리까?”하고 물으니, 조사가 “행사 스님을 찾아가거라.” 대답하였다. 조사가 입적하자 바로 청량산淸凉山 정거사靜居寺 행사行思화상을 찾아가 절을 하고, 곁에 모시고 섰으니, 화상이 “어디서 왔는가?” 묻자, 선사가 “조계에서 왔습니다.” 대답하였다. 이에 화상이 화양자和痒子(효자손)를 들어 올리고, “거기에도 이런 것이 있던가?” 물으니, 선사가 “거기뿐만 아니라 서천西天에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화상이 “그대는 서천에도 가 본 모양이구나?” 하니, 선사가 “만약 갔었다면 거기에는 있었을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화상이 “틀렸으니 다시 말하라.” 다그쳐 묻자, 선사가 “화상께서도 반쯤은 말씀하십시오. 어째서 저더러만 말하라 하십니까?” 라고 말하니, 화상이 “그대에게 말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뒷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이가 없을까 걱정이니라.” 라고 말했다. 화상이 또 “그대가 조계에 갔었다는데, 무엇을 얻어 가지고 왔는가?” 물으니, 선사가 “조계에 간적도 없고 잃은 적도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오히려 “화상에서 일찍이 조계에 계실 적에 큰스님을 아셨습니까?” 질문하였다. 화상이 “그대는 지금 나를 아는가?” 물으니, 선사가 “안다고 해도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대답하고, “화상이 영남에서 나오신지, 여기에 얼마나 계셨습니까?” 물었다. 화상이 “나도 모른다. 그대는 언제 조계를 떠났느냐?” 되물으니, 선사가 “저는 조계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대답하자, 화상이 “나는 그대가 온 곳을 안다.”고 말하자, 선사가 “화상께서는 어르신인데, 경솔한 말씀을 마십시오.” 하였다. 화상은 선사가 예사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서협西俠 시자실에 있게 하니, 아침저녁으로 오로지 화상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p><p class="바탕글">선사는 &lt;참동계參同契&gt;를 저술하였고, 당의 정원貞元 6년 12월 6일에 입적하니, 춘추는 91세요, 승납은 63세였다.  희종僖宗황제가 무제無際라 시호하고 견상見相이라고 탑호塔號를 드렸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행사行思의 법을 잇고 육조의 뜻 이루어,</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마조와 쌍으로서 강호江湖로 회자膾炙되며,</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후손을 깨우치시는 “참동계參同契”를 남겼네.</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석두희천 선사는, 초조 보리달마 선사의 맥脈을 이어서 남종을 이룬 육조 혜능 회상에 일찍이 참석하였으며, 그 유지를 따라 청원행사 선사에 참문하고 법을 받아 호남(湖南)에서 회상을 이루시니, 당시 남악회양의 법을 이은 강서(江西)의 마조도일 선사와 함께, 당대의 유명한 인물들이 왕래 방문하는 바, “강호江湖”의 한 축을 형성하신 분으로서, 후대의 선종발전에 큰 업적을 남기셨음이 높이 평가됩니다. 그분의 걸출하고 호방한 인품과 선풍이 주목됩니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Mon, 15 Jun 2020 08:45:0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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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청원 행사</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36</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청원 행사 靑原 行思 </p><p class="바탕글">   &lt;조당집&gt;에서 전하기를: 선사는 여릉廬陵 출신으로 속성은 유劉씨이며, 길주吉州에 살았는데, 휘諱는 행사行思이며 6조의 법을 이어받은 뒤로 곧 여릉으로 가서 중생들을 교화하였다. 어떤 스님이 선사에게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물으니, 선사는 “여릉廬陵 지방의 쌀 값이 어떤가?” 대답하였다. 당나라 개원開元 28년 12월 13일에 법당에 올라 대중에게 고한 뒤에 가부좌를 맺은 채 열반에 들었다. 희종僖宗이 ‘홍제弘濟 선사’ 라는 시호와 ‘귀진歸眞’이라는 탑호를 올렸다.</p><p class="바탕글">   &lt;전등록&gt;에서 전하기를: 선사는 어릴 때에 출가하였는데, 매양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면 선사만은 잠자코 있었다. 나중에 조계曹溪의 법석法席이 번성하다는 말을 듣고 가서 절하고 물었다, “마땅히 무엇에 힘써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조사가 도리어 “그대는 일찍이 무엇을 했었는가?” 물으니, 선사가 “성제聖諦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답하였다. 조사가 “어떤 계급에 떨어졌었는가?” 물으니, 선사가 “성제도 하지 않거늘 무슨 계급이 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조사가 그를 법기로 여겨서 회상의 무리가 아무리 많아도 언제나 선사를 제일 윗자리에 있게 하니, 이는 마치 2조가 말을 하지 않아도 소림少林(달마대사)이 말하기를 나의 골수를 얻었다고 한 것과 같았다. 하루는 조사가 선사에게 말하기를, “예로부터 옷과 법을 합쳐서 전했으니, 옷은 믿음을 표시하고 법은 마음을 인가한 것이다. 나는 이제 사람을 얻었으니, 어찌 믿지 않을 것을 걱정하겠는가. 나도 옷을 전해 받은 뒤로 오늘까지 이렇듯 많은 환란을 당했는데, 하물며 후대의 자손들이겠는가. 반드시 많은 싸움이 일어나리니, 옷은 산문山門에 남겨두고 그대는 한 지방을 나누어 교화하면서 끊이지 않게 하라.”고 당부하였다.</p><p class="바탕글">    6조가 열반에 들려고 할 때에 희천希遷이라는 사미가 와서 조사께, “화상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희천은 누구에게 의지하리까?” 물으니, 조사가 “생각 사思자를 찾아가라.” 고 대답하였다. 조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 희천은 매양 조용한 곳에 단정히 앉아서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그를 본 제1수좌가 “그대의 스승은 이미 가셨는데, 공연히 앉아서 무엇을 하는가?” 물으니, 그가 “나는 유언을 받았는데 생각 사思자를 찾으라고 하였소.” 라고 대답하였다. 수좌가 “그대의 사형 가운데 행사行思 화상이란 분이 계시는데, 지금 길주에 사신다. 그대의 인연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조사의 말씀은 매우 정직했거늘 그대 스스로가 미혹했을 뿐이다.” 라고 가리켜 주었다. 희천이 그 말을 듣고 곧 조사의 탑에 절하고 물러나서 곧바로 길주 정거사로 갔다. 선사가 “그대는 어디서 오는가?” 물으니, 희천이 “조계에서 왔습니다.” 대답하니, 선사가 “무었을 얻으러 왔는가?” 물었고, 희천은 “조계에 가기 전에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선사가 “그렇다면 조계에 무엇 하러 갔는가?” 물으니, 희천이 “조계에 가지 않았던들 어찌 잃지 않은 줄 알았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희천이 다시 선사에게 “조계 대사께서도 화상을 아셨습니까?” 물으니, 선사가 “그대는 지금 나를 아는가?” 하였고, 희천은 “아는데 어찌 또 알아보겠습니까?” 하였고, 선사가 “온갖 짐승의 뿔이 많으나 기린의 뿔 하나로 만족한다.” 하였다. 희천이 다시 “화상은 스스로 조계를 떠나서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물으니, 선사는 “나는 모르겠다. 그대는 언제 조계를 떠났는가?” 하니, 희천이 “희천은 조계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하였고, 선사가 “나 또한 그대의 온 곳을 알고 있다.” 하니, 희천이 “화상은 다행히 대인大人이시니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하였다. 다른 날 선사가 다시 희천에게 “어디서 왔다고 했지?” 물으니, 희천이 “조계에서 왔습니다.” 하므로, 선사가 불자拂子를 번쩍 들면서 “조계에도 이런 것이 있던가?” 물으니,  희천이 조계뿐만 아니라 인도(西天)에도 없습니다.“ 하였다. 선사가 ”자네는 인도에 다녀온 것이 아닌가?“ 물으니, 희천이 ”갔었다면 곧 있는 것입니다.“ 대답하니, 선사가 ”맞지 않으니, 다시 말하라.“ 하였고, 희천이 ”화상께서도 하나의 반(一半)을 취한 것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전적으로 학인만을 속이지는 마십시오.“ 하니, 선사가 ”그대에게 말하기는 사양치 않으나 뒷사람이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이다.“라고 하였다. 선사는 청원산靑原山 정거사靜居寺에 머물러 교화하다가 석두 희천에게 법을 전하였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조계의 상족으로 청원靑原에 정거靜居하사</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nbsp; 석두石頭에 법 전하고 홍제弘濟하다 귀진歸眞한 분, </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조동曹洞과 운문雲門 법안法眼의 비조鼻祖되신 종사宗師님! </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청원행사 선사는 육조 혜능조사의 많은 제자 가운데에, 남악회양 선사와 쌍벽을 이루는 종사이며, 후대에 펼쳐지는 이른바 선종오가(禪宗五家) 즉, 위앙, 임제, 조동, 운문, 법안 종파 가운데,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이 그의 문하에서 출현하게 됩니다. 남악회양 선사가 마조도일 선사를 키워 그의 가풍을 크게 일으켰듯이, 청원행사 선사는 석두희천 선사를 통해 그의 문풍을 널리 폈으니, 각각 당대의 대표적 쌍벽을 이루어 선풍을 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음이 주목됩니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07 Jun 2020 08:34:3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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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곡 보철</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35</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마곡 보철 麻谷 寶徹</p><p class="바탕글">   선사의 생몰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어느 날 마조를 따라가다가 “어떤 것이 큰 열반입니까?” 물으니, 마조가 “급하구나.” 대답했다. 선사가 “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으니, 마조가 “물을 살펴라.” 고 하였다.  선사가 단하丹霞와 함께 산길을 가자가 물속의 고기를 보고 손으로 가리켰다. 단하가 “천연天然, 천연이로다.” 하였다. 이튿날 선사가 다시 단하에게 “어제는 무슨 뜻이었소?” 물으니, 단하가 몸을 던져 누워 버리는 시늉을 하자, 선사가 “아이고!” 하였다. 또 대사가 단하와 함께 마곡산麻谷山에 가서, “나는 여기서 살아야겠소.” 말하니, 단하가 “살겠다면 또한 따르겠지만, 어딘들 없겠소?” 하니, 선사가 “진중珍重 하시오.”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묻기를, “12분교는 제가 의심치 않거니와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물으니, 선사가 일어서서 주장자로 몸을 한 바퀴 돌리고, 한발을 들고서, “알겠는가?” 말했다. 그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때렸다. </p><p class="바탕글">   어떤 스님이 선사에게,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물으니, 선사가 잠자코 있었다. 그 스님이 다시 석상石霜에게 ”이 이치가 어떠합니까?“ 물으니, 석상이 ”주인이 너무 부지런히 힘쓰다 보니 그대(&#38349;梨)를 진흙탕에 끌어드리고 물에 빠트렸군.“ 하였다. 탐원耽源이 ”12면 관세음보살이 범부입니까, 성인입니까?“ 묻자, 선사가 ”성인이다.“ 대답하니, 탐원이 선사를 한 주먹 때리자, 선사가 ”그대가 그 경계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겠구나.“ 하였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마조의 측근으로 격외선법 이어받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nbsp; 마곡산 보배로서 천연天然과 교우하며,</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대낭혜大朗慧 무렴無染 키워서 성주산문聖住山門 여셨네!</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마곡 보철 선사에 관련하여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 앞에서 인용한 &lt;전등록&gt;의 단편적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탁원한 선지와 가풍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조선사를 가까이 모시고 참구하여 법을 이었으며, 당시 마조와 쌍벽을 이루는 석두石頭의 문인으로 그 법을 이은 단하 천연선사, 남양 혜충 국사의 법을 이은 탐원선사 등의 당대 선지식들과도 우의가 깊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선사의 걸림이 없고 개방적인 인품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라의 왕손이었던 대랑혜 무렴 선사에게 법을 전해, 성주산문의 비조가 되었음이 주목됩니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31 May 2020 02:57:3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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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염관 제안</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33</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염관 제안 鹽官 齊安</p><p class="바탕글">   &lt;전등록&gt;에서 전하기를: 선사는 해문군海門郡 출신으로 성은 이李씨이다. 태어날 때에 신령스러운 광명이 방을 비추었고, 또 이상한 스님이 와서 그를 두고, “더할 수 없이 뛰어난 깃대(無勝幢)를 세우고, 부처의 태양을 돌이켜 비추게 할 자가 어찌 그대가 아니겠는가” 예언하였다. 자라나서 마침내 그 고을의 운종雲琮 선사에 의해 득도되어 구족계를 받았는데, 나중에 대적이 공공산 &#40852;公山에서 교화를 편다는 말을 듣고 길을 떠나 찾아갔다. 선사는 모습이 기이하였기 때문에 대적은 그를 한번 보자, 그가 매우 뛰어난 인재임을 알아서 곧 입실入室을 명하여 바른 법을 은밀히 보여 주었다. 어떤 스님이 선사에게, “어떤 것이 본래의 몸인 노사나불입니까?” 물으니, 선사가 “저 구리병을 내게 갖다 주게나.” 말하자, 그 스님이 깨끗한 병을 가지고 왔다. 선사가 “본래의 자리로 갖다 두어라.” 하니, 그 스님이 본래의 자리에 가져다 두고 와서 다시 앞의 말을 물으니, 선사가 “옛 부처님은 지나가신 지 오래다.” 라고 대답하였다. 어떤 교학자 스님이 와서 선사를 뵙자, 선사가 “좌주坐主는 어떤  사업을 쌓았는가?” 묻었고, 그 스님이 “&lt;화엄경&gt;을 강설하였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선사가 “경전 속에는 몇 가지 법계가 있다고 하였는가?” 물으니, 그 스님이 “자세히 말하자면 겹겹이 다함이 없고(重重無盡),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 법계가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선사가 불자를 세우면서, “이것은 몇 번째 법계인가?” 물으니, 그 스님이 골똘히 궁리하면서 천천히 답변을 생각하자, 선사가 “생각해서 알거나 따져서 이해하는 것은 귀신 집안의 살림살이요, 햇볕아래의 외로운 등불이니, 결과적으로 비춤을 잃으리라.” mf하였다.        선사가 어느 날 대중에게, “허공으로 북을 산고 수미산으로 망치를 삼는다. 누가 치겠는가?” 물으니,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법곤法空이라는 스님이 와서 경전의 온갖 뜻을 물으니, 선사가 낱낱이 대답하고 나서 “스님이 온 뒤로부터 나는 전혀 주인 노릇을 못했다.” 말하니, 법공이 “화상께서 다시 주인이 되십시오.” 대답했다. 선사가 “오늘밤에는 본래의 자리에 돌아가서 머물러 있다가 내일 다시 오시오.” 하니, 법공이 물러갔다. 이튿날 아침에 선사가 사미를 시켜 법공 스님을 불러오라고 했다. 법공이 오자 대사가 사미를 돌아보면서, “쯧쯧, 이 사미가 일을 요달하지 못했구나. 법공스님을 모셔오라 했는데, 이 당堂을 지키는 집안사람만을 데리고 왔구나.” 하니 법공이 말이 없었다. 원주院主인 법흔法昕이 와서 뵙자, 선사가 “너는 누구냐?” 물으니, 그가 “법흔입니다.” 대답하자, 선사는 “나는 너를 모르겠다.”하니, 법흔은 말이 없었다. 그 뒤에 선사는 병 없이 앉아서(宴坐) 입적하였다. 선종제가 오공悟空 선사라는 시호 및 서심지탑棲心之塔이러는 탑호와 추도의 시를 내렸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마조의 준족으로 걸출한 오공선사悟空禪師</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제안齊安의 염관鹽官되어 짭짤한 선풍으로</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범일梵日에 법 전하여서 사굴산문&#38349;&#23835;山門 여셨네.</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마조의 법을 받아 항주지역에서 교화하였으며, 신라의 통효 범일선사에게 법을 전함으로서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비조가 되신 염관 제안선사는 상호가 뛰어나고 선지가 투철하여 탁월한 교화를 하였습니다. 마조의 가풍처럼 걸림이 없이 격외선풍을 선양한 것으로 보입니다. &nbsp;<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24 May 2020 14:35:2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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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장경 회운</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31</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장경 회운 章敬 懷&#24818;</p><p class="바탕글">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선사는 천주泉州 동안同安 출신으로 성은 사謝씨이다. 대적의 법 (心印)을 받고 처음에는 정주定州의 백암栢巖에서 지내다가 나중에 중조산中條山에서 살았다. 당의 원화元和 초기에 헌종憲宗의 조칙에 의하여 상현사上玄寺에 머물으니, 배우려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어느 날 선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했다. “지극한 이치는 말을 잊었거늘 요즘 사람들이 알지를 못하고 억지로 딴 일을 익히는 것으로 공능功能을 삼는다. 그리하여 제 성품이 원래 티끌 경계가 아니라 바로 미묘한 큰 해탈문이고, 갖추고 있는 비추어 깨달음(鑒覺)은 본래 물들거나 걸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광명은 일찍이 쉬거나 폐廢한 적이 없으니, 지난 겁부터 지금까지 진실로 변함이 없는 것이 마치 해가 멀고 가까운 곳을 비추어서 온갖 빛깔에 미치면서도 일체와 더불어 섞이지 안흔 것과 같다. 신령스러운 빛(靈燭)은 묘하게 밝아서 단련鍛鍊을 빌리지 않거늘 이를 요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상物象을 취하는데, 이는 마치 눈을 비벼 허공 꽃이 망령되게 일어나는 것과 같아서 헛되이 수고롭게 여러 겁을 지낼 뿐이다. 만일 능히 돌이켜 보아서 두 번째 사람(第二人)이 없다면, 들고 놓는 온갖 동작이 실상을 어기지 않는다.” 어떤 스님이, “마음과 법이 아울러 없어지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물으니, 선사가 “영인&#37090;人은 티가 묻지 않았거늘 쓸데없이 도끼만을 흔드는구나.” 대답했다. 다시 “대사시여, 돌이키지 못하는 말(不返之言)을 말씀해 주십시오.” 요청하니, 선사가 “그대로가 돌이킴이 없는 구절이니라.” 대답&#54776;다.</p><p class="바탕글">   어떤 이가 “조사들이 전하시는 심지법문心地法門은 진여의 마음입니까? 망상의 마음입니까? 진眞도 아니고 망妄도 아닌 마음입니까? 삼승교의 밖에 따로 세운 마음입니까?” 물으니, 선사가 “그대는 눈앞의 허공을 보는가?” 물었다. 그가 “항상 눈앞에 있다는 것을 믿고 알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보지 못합니다.” 답하니, 선사가 “그대가 그림자를 잘 못 안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가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하니, 선사가 손으로 허공을 세 번 튀기자, 그가 “어찌해야 옳습니까?” 말하자, 선사가 “그대는 뒤에 차차 알게 되리라.” 하였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와서 선사를 세 번 돌고 석장을 구른 뒤에 서자, 선사가 “그렇다, 그렇다.” 하였다. 그 스님이 다시 남전에게 가서 역시 남전을 세 번 돌고 나서 석장을 구르고 서자, 남전이 “틀렸다, 틀렸다. 이는 바람의 힘으로 굴려지는 것이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지고 무너진다.” 하였다. 그 스님이 “장경은 옳다고 하였는데, 호상은 어찌하여 틀렸다고 하십니까?” 하니, 남전이 “장경이 옳다고 한 것이 그대에게는 옳지 못하다.” 하였다. 젊은 스님 하나가 행각을 g고 돌아오자, 선사가 “그대가 여기를 떠난 지 몇 해나 되었는가?” 물으니, 그 스님이 “화상을 떠난 지 8년이 되었습니다.” 선사가 “무엇을 얻었는가?” 물으니, 그 젊은 스님은 땅에다 하나의 동그라미(一圓相)을 그렸다. 선사가 “그것뿐인가? 또 무엇이 있는가?” 물으니, 그 스님이 동그라미를 지워 버리고 절을 한 뒤에, “사대와 오온의 몸에서 어떤 것이 본래의 불성입니까?” 물었다. 선사가 그 스님을 불렀고, 그 스님이 대답하니, 선사가 양구良久하다가 “그대는 불성이 없다.” </p><p class="바탕글">   당나라 원화 13년 12월 22일에 입적하였다. 탑을 패수&#38712;水에 세웠는데, 시호는 대각大覺 , 탑호를 대보상大寶相이라고 하였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nbsp; 대적(大寂)의 심인(心印) 얻은 대보상(大寶相) 대각선사(大覺禪師),</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신라의 현욱(玄昱)에게 그 법을 전하시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뒷날의 봉림산문에 조사되어 빛난 분! </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font face="궁서" size="4"><b>&nbsp;</b></font><!--[endif]-->  <o:p></o:p></p><p class="바탕글">마조의 법을 있고 당나라 헌종의 존경을 받아 선풍을 크게 펼친 장경 선사는 중국 선종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지만, 특히 신라의 원감 圓鑑 현욱스님에게 법을 전하여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봉림산문의 비조가 되도록 함에 주목됩니다. 앞에서 인용한 법연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동문 준족 남전선사 회상에 왕래하는 수행자들과의 언급 등을 통해, 중국 중원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킨 인물로 평가됩니다. <!--[endif]-->&nbsp;<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Fri, 15 May 2020 09:43:1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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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남전 보원</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29</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남전 보원 南泉 普願</p><p class="바탕글">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선사는 정주鄭洲 신정新鄭 출신으로서 성은 왕王씨이다. 당나라 지덕至德 2년에 대외산大&#38536;山의 대혜大慧선사에게 배우다가 서른 살에 숭악嵩嶽에 가서 계를 받았다. 처음에는 계율을 공부하였고, 이어서 여러 강단에서 경론을 연찬하다가 마침내 대적 마조의 회상에 나아가서 참선수행에 전념하여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 하루는 대중스님들에게 죽을 돌리는데, 마조 대사가 “통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물었고, 선사가 “이 늙은이가 입을 다물 것이지 이 따위 말을 하는구나.” 라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같이 배우는 무리가 감히 E지고 묻는 이가 없었다. 정원貞元 11년에 지양池陽에 머물면서 스스로 선제 禪齊를 짓고 30여년 동안 남전산南泉山을 내려가지 않았다. 대화大和 초년에 선성宣城의 염사廉使인 육긍陸亘 이 대사의 도풍道風을 흠모하여 산에서 내려오기를 청하면서 제자의 예를 갖추엇다. 그리하여 현묘한 진리를 크게 떨치니, 이로부터 배우는 무리들이 항상 수 백명이 넘었고, 말씀이 자자하게 퍼져서 영장&#37090;匠 즉, 선리에 밝은 선덕禪德으로 불렸다. </p><p class="바탕글">   선사가 어떤 때에, “강서江西의 마조는 말하기를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지만, 왕노사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고 하니, 이렇게 말해도 허물이 있겠는가?” 말하니, 조주가 절을 하고 나갔다. 그러지 어떤 스님이 조주를 따라 나와서, “상좌께서 절을 하고 나오신 뜻이 무었입니까?”하고 물었다. 조주가 “그대는 화상께 가서 물어라.” 대답했다. 그 스님이 다시 올라와서 선사에게 “지금 종심從&#35543; 상좌가 절을 한 뜻은 무었입니까?” 여쭈니, 선사가 “그는 나의 뜻을 알아 차렸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p><p class="바탕글">  동쪽과 서쪽 양당兩堂에서 고양이 하나를 두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선사가 고양이를 잡고서 대중에게 외쳤다. “말할 수 있으면 고양이를 살리겠지만, 말하지 못하면 목을 베리라.”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니, 선사는 곧 목을 베었다. 때마침 조주가 밖에서 돌아왔는데, 선사가 앞의 일을 들어 이야기 하니, 조주는 신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나아갔다. 선사가 이를 보고, “아까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구했을 텐데...” 말하였다.  어느 때에 조주가 선사에게 “도는 사물 밖이 아니고, 사물 밖은 도가 아닌데, 무엇이 사물 밖의 도입니까?” 여쭈니, 선사가 문뜩 때렸다. 조주가 방망이를 잡고서, “이후로는 사람을 잘못 때리지 마십시오.” 하니, 선사가 “용과 뱀은 가리기 쉽지만, 납자는 속이기 어렵구나.”라고 말했다.</p><p class="바탕글">   선사가 세상을 뜨려 할 때에 제일 상좌가 “화상께서 세상을 뜨신 (百年) 뒤에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물으니, 선사가 “산 밑으로 가서 한 마리 검은 암소 (水&#29295;牛)가 되련다.” 고 대답했다. 상좌가 “제가 화상을 따라가고자 하는데 되겠습니까?” 물으니, 선사가 “그대가 나를 따르려면 모름지기 한 줄기 풀을 입에다 물어야 한다.” 고 대답했다. 대사가 병든 모양을 나타내다가, 대화大和 8년 섣달 스무닷새 첫새벽에 문인들에게, “별 그림자 등불 허깨비가 오래도 견디었다. 내가 가거나 온다고 여기지 말라.”고 말하고 눈을 감으니, 수명은 87세이고 법랍은 58세였다. 이듬해 봄에 탑에 안치하였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nbsp; 마조의 회상에서 큰 뜻(普願)을 이루시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조주(趙州)와 철감(澈鑑) 키워 사자 무리 으뜸 되어,</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천하에 왕노사(王老師) 가풍 걸림 없이 펼친 분!</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마조 선사 회상의 준걸들 가운데 하나로서, 남전보원선사는 중국에서는 조주종심 선사와 육긍 대부 등을 포함한 많은 승속에 거친 제자를 두었고, 한국으로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 개창자 철감도윤 선사에게 법을 전하여 선풍을 드날리게 한 분입니다. 처음에 계율과 교학을 익혀 정통하고는 선문에 들어 일가를 이루어서 삼학을 원만하게 구족하였지만, 마침내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초월의 경지를 보이며 자유자재를 누리신 인물이시니, 후학에게 해탈의 모법을 보이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등록에서 보이는 남전선사의 여러 가지 일화와 인연들을 유념하고 참고하여 대가의 살림살이를 본 받아야하겠습니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Wed, 06 May 2020 11:48:5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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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백장 회해</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27</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백장 회해 百丈 懷海 </p><p class="바탕글">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선사는 복주福州 출신인데, 어릴 때에 이미 속세를 떠나 삼학三學을 두루 연마하였다. 대적(마조)이 남강南康에서 교화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서 정성을 기우려 의지하고 따랐다. 서당지장선사와 같이 입실하였는데, 당시 이 두 대사가 두각을 나타내었다. 어느 날 선사가 마조를 뵙게되었는데, 선사가 오는 것을 보자 마조는 법상 귀퉁이에서 불자拂子를 잡아서 고추 세웠다. 선사가 “그것뿐입니까? 또 다른 것이 있습니까?” 물으니, 마조가 불자를 원래 자리에다 놓고는, “그대는 무엇을 가지고서 어떻게 사람을 위하려 하는가?” 말했다. 선사가 얼른 불자를 들어서 보이니, 마조가 다시 “그것뿐인가? 그 밖에 또 있는가?” 물으니, 선사가 불자를 본래 자리에 꽂아두고 공손히 서 있으니, 마조가 소리를 질렀다. 이로부터 우레와 같은 명성이 진동해서 단월 신도들이 홍주洪州로 청해서 대웅산大雄山에 머무르게 하니, 그 거처에 산봉우리가 험악하기 때문에 백장산百丈山이라 불렀다. 거기에 있기 시작한지 한달이 채 못되어서 현묘한 진리를 참구하려는 선객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는데, 위산&#28505;山과 황벽黃蘗이 그 으뜸의 자리에 있었다. </p><p class="바탕글">   어떤 스님이 서당에게 “물음이 있으면 대답이 있고,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 때는 어떠합니까?” 물으니, 서당이 “놀라서 썩은들 무엇 하겠는가?” 라고 대답했다. 이 애기를 듣고 선사가 “원래 이 노형老兄을 의심하였다.” 고 말했다. 어떤 스님이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하니, 선사는 “일합상一合相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어느 날 선사가 대중에게 “어느 한 사람은 오래 동안 밥을 먹지 않고도 배고프다는 말을 않고, 어느 한 사람은 종일 밥을 먹으면서도 배부르다는 말을 않는다.” 말했는데,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운암雲巖이 “화상은 매일 구구하게 누구를 위하십니까? 물었다. 선사가 ”어느 한 사람이 요구한다.“ 라고 대답하니, “어찌하여 그로 하여금 스스로 하게 하지 않습니까?“ 라고 또 물었고, “그는 집안 살림이 없느니라.” 라고 대답하였다.    어떤 스님이 “어떤 것이 대승의 돈오법문頓悟法門입니까?” 물으니, 선사가 대답하기를: “그대들은 모든 반연을 쉬어라. 만 가지 일을 쉬고, 착하거나 악한 일, 사간과 출세간의 온갖 법을 기억하지도 말고 반연하여 생각하지도 말라. 몸과 마음을 탁 놓아서 자유롭게 하고, 마음은 목석처럼 분별하는 것이 없게 하라. 마음이 행하는 바가 없어서 마음의 바탕이 허공과 같이 되면 지혜의 태양이 스스로 나타나니, 마치 구름이 흩어지면 태양이 들어나는 것과 같으리라. 분별망상도 모두 쉬고, 온갖 반연과 탐욕 성냄 애욕의 더럽고 깨끗한 망정이 다하면, 오욕이나 팔풍을 대하여도 보고 듣고 깨달아서 앎에 속박되지 않고, 모든 경계에 미혹되지도 않ㅇ서 자연히 신통묘용을 구족한다. 이와 같이 해탈한 사람은 온갖 경계를 대하여도 마음에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없고, 마음을 거두지도 않고 흩뜨리지도 않으며, 온갖 소리와 색을 투사하여도 걸리거나 막힘이 없으리니, 이를 이름 하여 도인이라 한다.” 라고 했다. 선사는 가끔 설법을 마치고 나서 대중이 흩어지면 곧 그들을 불렀는데, 대중이 고개를 돌리면,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말했다. </p><p class="바탕글">   당나라 원화元和 9년 1월 17일에 입적하니, 세납이 95세였다. 장경長慶 원년에 대지선사大智禪師라는 시호와 대보승륜大寶勝輪이라는 탑호가 하사되었다. 선사는 선종이 보리달마에서 시작하여 조계 혜능에게 이르기까지 대체로 그 후예들이 율종 사찰에 살아오며 그 전통이 서로 맞지 않았음을 느끼고, “조사의 도를 널리 펴고 미래까지 끊이지 않고 싶다면, 어찌 여러 부분의 소승의 교리에 따라 수행하랴?”하며, 대승교리를 중심으로 당시 상황에 맞추어 독자적인 &lt;선문규식禪門規式&gt;을 만들어 선종사원에서 준수하게 하였다. 이로서, 선종총림에 “첫째, 청정한 대중을 더럽히지 않고 공손한 믿음을 내는 것, 둘째, 스님의 형상을 잃지 않아서 부처님의 제도에 맞게 되는 것, 셋째, 공문公門이 소란하지 않아서 시비가 줄어드는 것, 넷째, [허물이] 밖으로 새지 않고 종문의 기강이 잘 보호되도록 하는” 이로운 장치가 마련되었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nbsp; 백장 대웅산에 청백총림 창설하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선원의 전통 세워 후세에 솔선수범!</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nbsp; 무상한 세월 속에서 &lt;선문규식&gt; 빛나네. </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백장선사는 이른바 청규淸規 즉, 참선 수행 위주와 자주 독립 정신으로 선종 사찰의 독자적 운영 규율과 전통의 초석을 놓으신 조사로서 선종 역사에서 길이 귀감이 되어 온 분입니다. 널리 알려진 바, 일일부작일일불식一日不作一日不食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선농일치禪農一致 수행정신으로 자급자족을 추구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을 실천하고, 선원 내부질서 확립과 소임의 역할분담을 규정하여 선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음은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분의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 위앙종의 종주였던 위산선사와 임제종의 종주 임제선사의 스승인 황벽선사가 있음도 주목됩니다. 즉, 중국의 이른바 오종五宗 즉, 다섯 갈래의 선종 주류분파 가운데 두 개의 종파를 이룬 분들이 백 선사의 직계 법손이었음은 그 영향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at, 02 May 2020 09:07:5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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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서당 지장</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25</link>
<description><![CDATA[<div>서당 지장 西堂 智藏 </div><div><p class="바탕글">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서당 선사는 건화虔化 출신으로 성은 요寥씨이다. 여덟 살에 출가하여 스물다섯 살에 구족계를 받았다. 모습이 특이하였는데, 어떤 관상가가 보고는, “스님의 기골氣骨이 비범하시니 반드시 법왕法王의 보좌輔佐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선사는 나중에 불적암佛迹巖으로 가서 대적大寂 (馬祖) 에게 참문하고 백장百丈 회해懷海선사와 함께 입실하였는데, 모두 인가를 받았다. 하루는 대적이 선사에게 글을 주어 장안長安의 혜충慧忠 국사에게 전하라고 해서 갔다. 국사가 “그대의 스승은 어떤 법을 설하는가?” 물으니, 선사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서 섰다. 국사가 “그것뿐인가? 그 밖에 또 있는가?” 하고 물으니, 선사가 다시 동쪽으로 가서 섰다. 국사가 “그것은 마조대사의 것이니, 그대의 것은 무엇인가?” 물으니, “벌써 화상께 바쳤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얼마 뒤에 경산徑山 국일國一 선사에게도 글을 전하였다.   </p><p class="바탕글">   대장군 노사공路嗣恭이 대적을 초청하여담당 고을에 머물게 함으로서 장차 성대한 교화를 기약하려 하였다. 선사가 고을로 돌아오니, 대적이 마납가사摩納袈裟를 그에게 주면서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가까이하게 하였다. 어떤 스님이 마조에게, “청컨대 화상께서 네 구절(四句)을 여의고 백가지 부정(白非)을 끊은 채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바로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물으니, 마조가 대답하기를, “나는 오늘 생각(心情)이 없으니, 그대는 지장에게 가서 물어라.” 했다. 그 스님이 선사에게 와서 물으니, “그대는 왜 화상께 묻지 않는가?” 대답했다. 그 스님이 “화상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상좌上坐’에게 물어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니, 선사가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서, “오늘은 머리가 아프니, 회해懷海 사형에게 가서 물어라.” 하였다. 그 스님이 다시 회해에게 가서 물으니, 회해가 “나는 그러한 것에 대하여 도리어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 스님이 마조에게 다시 가서 그 말들을 이야기하니, 마조는 “지장의 머리는 희고, 회해의 머리는 검다.”고 말했다. 마조가 어느 날 선사에게, “그대는 왜 경전을 보지 않는가?” 물으니, 선사가 “경전인들 어찌 다르겠습니까?” 대답했다. 마조가 “그렇기는 하지만 그대가 뒷날 남을 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니, 선사가 “저는 병이 나서 스스로를 감당하기도 급급한데, 감히 남을 위하라고 하십니까?” 하였고, 이에 마조는 “그대가 말년 (貞觀末年) 쯤 반드시 세상에서 흥기하리라.” 하였다.</p><p class="바탕글">  선사는 마조가 입적한 뒤, 정원貞元 7년에 대중의 요청에 의하여 개당開堂하고 교화를 시작하였다. 상서尙書인 이고李&#32758;가 일찍이 어떤 스님에게, “마 대사가 어떤 설법을 하였는가?” 물으니, 그 스님이 “대사께서는 어떤 때는 마음이 곧 부처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고 하였소.” 대답하니, 이고가 “모두가 그쯤이구나.” 말하고는 다시 선사에게 와서 다시 물었다. “마 대사께서는 무어라고 설법하셨습니까?” 하자, 선사가 이고를 불렀다. 이고가 대답하자, 선사가 “북과 고동소리가 나는구나.” 하였다. 선사가 서당사西堂寺에 주석할 때에 어떤 속인 선비가 찾아와서, “전당과 지옥이 있습니까?” 여쭈니, “있다.”고 답했다. “불보 법보 승보는 있습니까?” 물으니, “있다.” 하였고, 그밖에 여러 가지를 물었으나, 모두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선비는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잘못 아닙니까?” 따졌다. 선사가 “그대가 일찍이 어떤 큰스님 (尊宿)을 만난 적이 있는가?” 선비에게 물으니, 그는 “제가 경산徑山 화상을 뵙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사가 “경산이 그대에게 무어라고 하던가?” 물으니, 선비가 “일체가 모두 없다고 하였습니다.” 대답했다. 이에 선사가 “그대에게 아내가 있는가?” 물으니, 선비가 “있습니다.” 하였고, 선사가 “경산화상도 아내가 있는가?” 물으니, 선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으므로, 선사가 “경산화상이 없다고 한 것이 맞는구나.” 하니, 선비가 곧 절을 하고는 물러갔다.</p><p class="바탕글">   선사가 원화元和 9년 4월 8일에 입적하니, 세납은 80세요, 법랍은 55세였다. 헌종憲宗이 대선교선사大宣敎禪師라는 시호와 원화증진元和證眞이라는 탑호를 하사하였고, 목종穆宗 때에 다시 대각선사大覺禪師라는 시호를 더하였다. </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font face="궁서" size="4"><b>마조의 상족으로 대각大覺의 대선교사大宣敎師! </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도의道義에 마음 전해 법맥을 이루시고,    </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nbsp; 서쪽서 오신 조사 뜻 동쪽으로 전한 분.</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서당 지장 선사는 마조선사의 으뜸가는 제자로서, 신라에서 온 명적 스님을 깨우쳐 도의 선사로 만들고 법을 전하여서, 후대에 한국 선종 즉,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宗祖가 되도록 키우신 분이시니, 한국의 선종 수행자들에게 길이 기억되고 존중되어 마땅한 분입니다. 현재 전해지는 바, 선종의 법맥과 법계도法係圖를 보면, 서당선사의 중국인 제자는 크게 들어나거나 돋보이지 않고 다만 한국의 도의 선사에게 법을 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로 말미암아 중국에서는 별로 관심을 받아오지 못해왔지만,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히 주목하고 감사해야 할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다른 모든 업적은 접어두고라도, 도의선사를 키워서 법을 전한 사실만으로도 그 공적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br></p></div>]]></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hu, 23 Apr 2020 08:00:3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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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조 도일</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23</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마조馬祖 도일道一&nbsp;</p><p class="바탕글">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선사는 한주漢州 십방 출신으로 성은 마馬씨이다. 용모가 기이하고 행동은 소같이 느긋하였으나 판단은 호랑이 같이 날카로웠다(牛行虎視)고 하며, 혀를 내밀면 코를 덮고 발바닥에는 두 개의 바퀴 무늬가 있었다. 어릴 때에 자주資州의 당唐 화상和尙에 의하여 득도하게 되었고, 유주의 원圓 율사律師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당나라 개원開元 연간에 형악衡嶽의 전법원傳法院에서 선정을 익히다가 회양선사를 만났는데, 같이 공부한 아홉 사람 가운데 홀로 심인心印을 이어받았다. 처음에는 건양현建陽顯 불적령佛迹嶺에있더니 임천臨川으로 옮겼다가 다시 남강南康의 공공산&#40852;公山으로 갔고, 대력大歷 시대에는 개원정사開元精舍에 머물렀는데, 당시 대장군(連帥) 노사공路嗣恭이 덕화를 전해 듣고 사모하다가 몸소 와서 종지를 받으니, 그로 말미암아서 사방의 학자들이 그의 법좌 아래로 모여들었다. </p><p class="바탕글">   어느 날 대중에게 “여러분, 제각기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믿으시오. 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오. 달마대사께서 남천축국으로부터 중국에 오셔서 일심의 법을 전하여서 그대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고, 또 &lt;능가경&gt;의 경문을 인용하여 중생의 마음자리를 인印치셨으니, 그대들이 스스로 믿지 않을까 걱정하셨기 때문이오. 이 마음의 법은 제각기 갖고 있으니, 이 때문에 &lt;능가경&gt;에 말씀하기를 ‘부처님의 말씀은 마음을 으뜸으로 삼고 문이 없음을 법문으로 삼는다고 한 것이오.” 라고 깨우쳤다. 또 “무릇 법을 구하는 이는 마땅히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나니,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뿐이요, 삼라만상은 한 법이 찍어낸(印) 바이다... ...무릇 보이는 것(色)은 모두 그것을 보는 마음의 작용이지만, 마음 스스로 마음이라 하지 못하고 색을 말미암기 때문에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다만 때에 따라 말할지니, 그대로가 사事이고 그대로가 이理여서 결코 걸리는 바가 없다. 보리의 도과道果도 이와 마찬가지이니... ...만일 이 마음을 요달하면, 때에 따라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면서도, 성인의 태胎를 기르면서 운運에 맡겨 세월을 보내게 되리니, 그밖에 다시 무슨 일이 있으랴?” 하며 “심지心地서 때에 따라 말을 하나니(心地隨時說), 보리菩提도 또한 편안 할 뿐이로다(菩提亦只寧) 사事와 이理 둘 다 모두 걸림 없다면(事理俱無&#31001;), 태어남 다름 아닌 불생이리라(當生卽不生).”라고 게송을 전했다. </p><p class="바탕글">   어떤 스님이 마조께 “화상은 어찌하여 마음이 곧 부처라 하십니까?” 물으니,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니라.” 답했고, “울음을 그쳤을 때는 어찌합니까?” 하니,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니라.” 하고, “이 두 가지를 제외한 사람이 오면 어떻게 지시합니까?” 하니, “그에게 물건도 아니라고 말하리라.” 하였다. 제자들과의 수많은 문답이 전해온다.</p><p class="바탕글">   정원貞元 4년 정월에 건창建昌의 석문산石門山에 올라가서 숲속을 거닐다가 골짜기의 평탄한 곳을 보고는 시자에게, “나의 썩을 몸이 다음 달에 이곳에 귀속하리라.” 말하고 돌아와서, 2월 4일에 가벼운 병기를 보이고는, 목욕을 마치고 가부좌로 앉아 입적하였다. 원화元和 때에 대적선사大寂禪師라고 시호가 추증되었고, 탑호를 대장엄大莊嚴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해혼현海昏縣에 영당影堂이 있다. 대사에게 입실한 제자가 139명인데, 제각기 한 지방에서 종주宗主가 되어 한량없는 교화를 펼쳤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nbsp; 뚜렷한 심지법문心地法門 이理와 사事 갖추시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불심佛心의 말달림은 천지에 자재하사.&nbsp;</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선종을 널리 펼치신 대장엄의 마조사馬祖師 !</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중국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 선사로부터 오조 홍인선사까지 조촐하게 전해지던 선법이 육조 혜능선사에 이르러서 전법의 확대로 그 든든한 토대가 마련되었는데, 마조선사 시대에 선종의 전통이 중국에서 전국적으로 큰 규모로 널리 확장되고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선종전래는 대부분 그분의 제자들로부터 비롯되었기로 특별한 주목이 필요합니다. 마조대사의 출가와 초기 수행시기에 신라의 왕자출신 정중사 淨衆寺 무상無相선사(684-762)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 데, 이에 대하여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아무튼 마조선사는 한국 선종의 연원과 전통의 역사에서 비조 鼻祖의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위인입니다. &nbsp;</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Mon, 13 Apr 2020 06:50:3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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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남악 회양</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21</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남악회양 南嶽懷讓        </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 전하기를, 회양 화상이 처음 태어났을 때에 여섯 가닥의 흰 서기가 하늘로 뻗치더니, 의봉儀鳳 2년 사월 초파일에 탄생하였다. 이때 금주 태수 한해韓偕가 관련사실을 자세히 기록해서 보고하니, 황제가 분부하였다. “승가의 상서이니, 더욱 경사로운 일이다.” 라고 하며, 직접 가서 양육하는 것을 살펴보고 후하게 상을 내려 위로하게 하였다. 다섯 살이 되자, 생김새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고 마음에는 은혜와 겸양을 갖추어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으므로 그의 부모는 그를 양讓이라 불렀다. 열 살이 되기까지 오직 불경佛經만을 좋아하였는데, 그 무렵 지나가던 현정玄靜 삼장이 설법을 하고, 이어 그 부모에게 “이 아이는 출가하여 최상승의 법을 열러 지극히 미묘한 경지에 이를 것이며, 불법의 이치를 터득할 것입니다.” 라고 일렀다. 열다섯 살이 되자, 문득 부모를 하직하고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로 가서 홍경弘景 율사를 섬기어 8년이 지나자, 회양懷讓이라 이름 하였다. 지통至通 원년 사월에 구족계를 받고, 구시久視 원년 7월에 이르러, “내가 지금 계를 받은 지 다섯 해를 지내는 동안 위의를 널리 배워 겉모양은 점잖게 되었지만, 진리는 배우려 해도 깨달을 길이 없구나.” 하고 탄식하며, “출가라는 것은 무위법을 위해서이니, 천상과 인세에 이보다 나은 일은 없으리라.” 독백하였다. 이때 탄연坦然 선사가 그를 보고, 함께 행각行脚을 나서 여러 선지식을 찾아뵙자고 제안하여, 숭산嵩山 안安 화상에게로 갔다. 탄연은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물어 깨닫고 이어서 안 화상을 섬기었으나, 혜양은 조계로 가서 육조에 의지했다. </p><p class="바탕글">&nbsp; 혜능 조사가 “그대는 지금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물으니, 회양이 “숭산에서 일부러 화상께 예배하러 왔습니다.” 대답했다. 조사가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물으니, “한 물건이라고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 답했다. 그리고는 조사의 곁에서 12년을 모시고, 경운景雲 2년에 조사에게 하직을 고하니, 조사가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다 했는데, 그 것을 닦아 증득할 수 있겠는가?” 물었고, 회양이 “닦아 증득하는 것이야 없지 않으나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답하였다. 조사가 “그 더럽힐 수 없는 것이 부처님들께서 보호하시는 바이니, 그대도 그렇고 나도 그러하니라. 서천西天의 27조 반야다라께서 그대에 관해 예언하셨는데, 불법이 그대로부터 융성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뒤에는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리니, 그대는 이 법을 너무 일찍 말해 주지 말라. 병폐가 그대에게 있게 되리라.” 하고 법을 부촉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 마馬 화상 (馬祖 道一 선사) 이 한쪽에 앉았는데, 회양 선사가 벽돌을 가지고 그 앞으로 가서 돌에다 갈았다. 이를 본 마 화상이 “무엇을 하십니까?” 물으니, 선사가 “거울을 만들려 하오.” 답하였다. 마가 “벽돌을 갈아서 어찌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하니, 선사가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좌선하여 어찌 부처를 이루리오?” 하니, 마가 “그러면 어찌하여야 옳습니까?” 물으매, “사람이 수레를 몰고 가는 것과 같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때려야 되겠는가, 소를 때려야 되겠는가?” 선사가 되묻고는, “그대는 좌선을 배우려는가, 좌불 坐佛을 배우려는가? 만일 좌선을 배우려 한다면 선은 앉거나 눕는 것이 아니요, 좌불을 배우려 한다면 부처는 일정한 모습이 아니어서 법에 머묾도 없고 취할 수도 없거늘 어찌해야 하는가? 그대가 만일 앉는 것이 부처라 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요, 앉는 모습에 집착한다면 해탈의 이치가 아니니라.” 설법하였다. 마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절하고서, “어떻게 마음을 써야 선정의 무상삼매無相三昧에 부합되겠습니까?” 물으니, 선사가 “그대가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배우는 것은 마치 종자를 뿌리는 것 같고, 내가 법요法要를 말해주는 것은 단비와 같다. 그대는 인연이 계합하는 까닭에 도를 보게 되리라.” 하였다. 마가 “도를 본다 하시는데, 어떤 도를 봅니까? 도는 색色이 아니거늘 어떻게 봅니까?” 물으니, 선사가 “심지를 보는 법안法眼으로 도를 볼 수 있나니, 무상삼매도 역시 그러하니라.” 답하였고, 마가 크게 깨달았다.</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회양선사에게는 입실入室한 제자가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그들 각자에게 인가하는 말을 다음과 같이 해주었다. “그대들 여섯 사람이 똑같이 내 몸을 증득해서 각기 한 길에 계합하였다. 한 사람은 나의 눈썹을 얻어서 위의가 훌륭하고 (상호常浩), 한 사람은 나의 눈을 얻어서 돌아봄에 능숙하고 (지달智達), 한 사람은 나의 귀를 얻어서 이치를 듣는데 능숙하고 (탄연坦然), 한 사람은 나의 코를 얻어서 기氣를 아는데 능숙하고 (신조神照), 한 사람은 나의 혀를 얻어서 담론에 능숙하고 (엄준嚴峻), 한 사람은 나의 마음을 얻어서 고금古今에 능숙하다 (도일道一).” 아울러, “일체법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겨나지만, 마음은 본래 생겨난 바가 없어서 법이 머무를 수가 없다. 만일에 이 마음 바탕(心地)을 통달하면 하는 일마다 걸림이 없나니, 상근上根의 무리를 만나기 전에는 마땅히 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라고 당부하였다. 회양 선사는 특히 도일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법을 전하였다: “마음 땅 온갖 씨앗 품어 있으니, 좋은 비 만나면 다 싹을 틔우리. 삼매의 꽃은 본래 상이 없으니, 무엇이 무너지고 이룰 수 있나? 心地含諸種 遇澤悉皆萌 三昧華無相 何壞復何成”  회양 조사는 천보天寶 3년, 형악衡에서 입적하니, 황제가 칙령으로 대혜선사大慧禪師 최승륜最勝輪 탑塔이라는 시호를 내려서 기렸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 </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인품은 겸양하며 무위법 사무치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망아지 길들여서 천하를 답파하니</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남악에 조사의 선풍 깃발 높이 날리네! </b></font></p><p class="바탕글">&nbsp;&nbsp; 육조 혜능선사의 법을 이은 이가 많은 가운데에 가장 훌륭하여 적장자로 전해져 오는 회양 선사는 칠조七祖로 불릴 수 있는 분입니다. </p><p class="바탕글">특히 육조를 통해 전해들은 인도의 27조 반야다라의 예언을 이루어서, 제자로서 마조馬祖를 키워내어 후대의 본격적 선종 발전을 준비하신 업적과 공덕은 탁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출가이전 어려서부터 경학에 밝았으며, 출가하여 구족계행으로 여법한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무위의 심법을 깨쳐서 조사의 지위에 나가신 원력과 수행은 후대의 귀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한국 조계종의 정맥이 되어 주신 그 분의 선법과 가풍을 올바로 배우고 이어나가야 하겠습니다.           </p><br>]]></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Mon, 12 Nov 2018 22:31:1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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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혜능</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19</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삼십삼조第三十三祖 (中國第六祖) 혜능慧能</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서 전하기를, 혜능 화상의 속성은 노盧씨요, 신주新州 사람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 홀어머니 아래서 고생하며 가난하게 살았고, 혜능이 저자에서 나무를 팔아 살림을 꾸렸다. 어느 날 안도성安道誠이라는 사람에게 나무를 팔고 그의 가게까지 배달한 뒤에 돌아서는데, 도성이 외우는 &lt;금강경&gt; 소리를 듣고 바로 마음이 활짝 열려 깨달았다. 이에 혜능이 “이게 무슨 경입니까?” 그에게 물으니, “이는 &lt;금강경&gt;이다.”라고 답했다. 혜능이 “어디에서 그 경전을 얻어 읽으셨나요?” 물으니, 도성이 “나는 기주&#34308;州 황매현 동쪽에 있는 풍모산馮母山에 가서 제5조 홍인弘忍 대사께 참배하고 왔는데, 아직도 그 산에서 설법하고 계신다. 문인들이 천명이 넘는데, 내가 거기서 들으니, 대사께서 승속僧俗에게 권하시기를 이 경을 받아 지니면 곧장 견성見性을 하고 성불하리라 하셨다.” 고 대답했다. 혜능이 이 말을 들으니, 숙업의 인연이 깊었는지 도성이 혜능에게 황매산에 가서 오조에게 참배하라고 권했다. 그러자 혜능이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는데 집이 가난하여 보양할 길이 없으니, 어떻게 노모를 버리겠습니까? 더구나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하니, 도성이 은전 백냥을 주어 어머니의 의식衣食에 쓰게 하면서 혜능에게 빨리 오조를 참배하라 하였다. 혜능이 그 돈을 받아 노모의 시중에 쓰도록 안배해서 부탁을 하고는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한 달이 안되어 풍모산에 이르렀다.</p><p class="바탕글">&nbsp; 오조가 “그대는 어디에서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물으니, 혜능이 “저는 신주에서 부처가 되기 위해 왔습니다.” 대답하였다. 오조가 “그대 같은 영남 사람에게 불성佛性은 없다.” 하니, 혜능이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지만 불성에는 남북이 없습니다.” 응대하니, 조사가 “신주는 사냥하는 오랑캐 땅인데 어찌 불성이 있겠는가?” 물음에, 혜능이 “여래장如來藏의 성품은 개미에게까지 두루 미치거늘 어찌 오랑캐에게만 없다 하겠습니까?” 되물었다. 조사가 “너에게 이미 불성이 있다면 어찌 나의 뜻을 구하는 게냐?” 하며 기특하게 여겨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뒤에 조사의 심인心印을 얻어 의발과 법을 받고는 그곳을 떠나, 사회四會와 회집懷集 사이 지역에서 4년간 숨어 살았다. </p><p class="바탕글">&nbsp; 의봉儀鳳 원년 정월 8일에 혜능이 남해현南海縣의 제지사制旨寺에서 인종印宗 법사를 만났다. 어느 날 인종이 경을 강론 하는데, 비바람이 불어 깃발이 펄럭이니, 그 것을 보고 법사가 대중에게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물었다. 이에 어떤 이는 바람, 어떤 이는 깃발이라고 다투다가 강주講主에게 증명을 요청했으나, 강주가 매듭을 짓지 못하고 혜능에게 청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라고 혜능이 말하자, “그러면 무엇이 움직이는가?” 강주가 묻자, “그대들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정월 보름날 머리를 깎고, 이월 팔일 법성사法性寺에서 지광智光에게 부탁하여 비구계를 받으니, 그 계단戒壇은 원래 송 때의 구나발마求那跋摩 삼장이 세운 것인데, 그가 일찍이 말하기를 “후일 육신肉身 보살이 여기서 계를 받을 것이다” 한 곳이다. 양梁나라 말기의 진제眞諦 삼장이 계단옆에 보리수 한 그루를 심고 말하기를 “120년 뒤에 육신보살이 이 나무 아래서 설법을 하리라.” 하였는데, 과연 조사가 그 나무 아래에서  무상승無上乘의 법을 연설하게 되었다. 이듬해 2월 3일에 제지사를 떠나 조계曹溪의 보림사寶林寺로 가서 설법하고 도를 펴서 대중을 제도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nbsp; 신룡神龍 원년 정월 보름에 측천효화則天孝和 황제가 대사에게 칙명으로, “짐이 성심으로 도를 흠모하고 간절히 선문禪門을 사모하므로 여러 선문의 선사들을 궁중의 도량에 모으니, 수秀와 안安 두 대덕이 좌중에서 으뜸이었소. 짐이 매양 법을 물으면 재차 사양하여 말하기를 ‘남방에 능能 화상이라는 이가 있는데, 홍인 대사의 수기를 받았고, 달마의 의발을 신표로 받았으며, 최상승의 법을 모두 깨달았고, 불성을 분명하게 보았는데, 이제 소주韶州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중생들에게 마음이 곧 부처라는 법을 보여 깨우치고 있습니다’ 하였소. 짐이 듣건대 여래께서 마음의 법을 마하가섭에게 전하셨고, 그렇게 다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하여 달마에게 이르러 그 가르침이 동토東土에 전해저서 대대로 이어져 지금껏 끊이지 않고 있다 하였소. 대사께서 이미 법을 받으셨고, 또 믿음을 상징하는 가사가 있다 하시니, 서울로 오셔서 교화를 베풀어 승속이 귀의하게 하고, 천상과 인간이 우러러보게 하시오. 그러므로 이제 중사中使인 설간薛簡을 보내어 영접하니, 바라건대 대사께서는 빨리 왕림하여 주시기를 바라오.” 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 혜능 조사가 “사문 혜능은 변방에서 태어나 성장해서 도를 흠모하다가 송구스럽게도 홍인대사에게 여래의 심인과 서천의 의발을 전해 받고, 동산東山의 불심을 이었습니다. 이에 천은을 엎드려 받자와 중사인 설간을 보내시어 저를 대궐로 들라 하시나, 혜능은 오래 산 속에서 살았고, 나이를 먹어 풍질에 걸렸습니다. 혜능으로 하여금 산에서 살면서 병을 고치고 도업을 닦아 많은 은혜를 갚도록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표를 올렸다.  이때 설간이 “서울에 계신 여러 대덕들은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좌선을 해야 비로서 도를 얻는다 합니다.” 하니, 조사가 “마음에 의해서 도를 깨닫는 것이지 어찌 앉는데 있겠는가?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누군가 말하되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 하면, 그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자로서 내가 말한 뜻을 알 지 못한 것이다.’ 하셨고, 또 말하기를 ‘여래라 함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기 때문에 여래라 하느니라.’ 하였고, 또 말하기를 ‘모든 법이 공하므로 여래라 하니, 필경에는 얻을 수 없고 증득할 수도 없다’하였거늘, 하물며 앉는 것이겠는가?” 라고 깨우쳤다. 아울러 마음의 요제와 대승인의 견해를 묻는 설간에게, “번뇌가 곧 보리이니 둘도 아니고 다름도 아니기 때문이다. &lt;열반경&gt;에서 말하기를 ‘밝음과 어두움을 범부는 둘이라 보지만,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하였으니, 다르지 않은 성품이 바로 참된 성품이니, 범부에게 있어서도 줄지 않고, 성인에게 있어서도 늘지 않고, 번뇌에 머물면서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에 있어서도 고요하지 않다. 단절하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으며, 감도 아니고 옴도 아니요, 중간과 안팎에 있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성상性相이 항상 머물러 영원히 변하지 않으므로 도라 한다.” 고 대답했다. 중사가 조사를 하직하고 표를 받들어 서울로 가니, 신룡 원년 5월 8일이었다. </p><p class="바탕글">&nbsp; 9월 3일에 이르러 회답으로 다음과 같은 조서가 내려졌다. “대사께서 늙음과 병을 핑계로 짐을 위해 도를 닦겠다 하니, 나라의 복전福田이로다. 대사는 마치 정명淨名이 병을 핑계하여 금속여래의 후신으로서 거룩한 가르침을 펴고, 모든 부처님들의 마음을 전하여 불이법不二法을 말하되, 비야리에서 입을 다무니, 성문은 꾸지람을 듣고 보살은 하직하고 물러난 것과 같소이다. 대사께서도 그러하셔서 설간이 대사의 가르침을 전해 줌으로써 여래의 지견을 받들게 되어 온갖 선과 악을 모두 생각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의 본체에 들어 적적하고 항상 조용하며,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 같음을 알게 하셨소이다. 짐이 전세에 선을 쌓아 경사가 있음이던가, 숙세에 복된 인연을 심은 공덕인가, 대사께서 세상에 나심을 만나 최상의 불심을 활짝 깨치게 되니, 짐은 첫째로 대사의 은혜에 감동하여 받들어 수행해서 영원히 쇠퇴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 삼가 마납가사 한 벌과 금 발우 한 벌로써 대사께 공양하오.” 그 뒤에 사액寺額을 중흥사重興寺라 칙명으로 하사하고, 또 신주의 옛집을 국은사國恩寺로 다시 짓게 하였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조사가 매양 여러 선지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의 자심自心이 부처이니, 더 이상 의심치 말라. 밖에서는 한 물건도 따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없다. 근본 마음에서 만 가지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한다’ 하였다. 그대들은 모름지기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알아야 한다. 일상삼매라 함은 모든 곳에서 형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 형상에 대하여 미움도 사랑도 없으며,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며, 이익을 생각지도 않고 흩어져 없어짐을 생각지도 않고, 저절로 안락한 것이다. 일행삼매라 함은, 모든 곳에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는 것 모두가 하나의 직심直心이고, 바로 그대로가 도량道場이며, 그대로가 정토淨土인 것이다. 마치 땅의 종자가 모든 것을 함장含藏하는 것과 같이 마음의 삼매도 그러하다. 내가 설법하는 것은 마치 비를 내리는 것 같고, 그대들에게 불성이 있는 것은 땅 속에 씨앗이 있는 것 같으니, 만일 법의 비를 만나면 제각기 자랄 것이다. 나의 말을 믿는 이는 반드시 보리를 이룰 것이요, 나를 의지해서 수행하는 이는 반드시 거룩한 과위果位를 얻을 것이다. 내가 이제 의발을 전하지 않으려는 것은 대중이 믿어 마음에 의혹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음의 요법을 두루 전하나니, 제각기 힘에 따라 교화를 펴라.”</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서 전하기를, 혜능이 황매산으로 홍인 화상을 참배하고자 가는 길에, 유지략劉志略이라는 거사를 만나 사귀게 되었다. 당시 그의 고모인 무진장無盡藏 비구니가 &lt;열반경&gt;을 읽고 있었는데, 혜능이 잠시 듣고서 그 뜻을 해설해 주니, 그 비구니는 책을 들고 와서 글자를 물었다. 혜능이 “글자는 모르니 뜻이나 물으시오.” 하니, 비구니가 “글자도 모르면서 어찌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니, 혜능이 “모든 부처의 묘한 이치는 문자에 매어 있지 않소.” 라고 대답했다. 비구니가 감탄하고 마을의 어른들에게 “혜능은 도가 있는 사람이니, 초청해서 공양하시오.” 하니, 마을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와서 절하고 공경하였다. 그 근처에 보림사寶林寺의 옛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집을 지어서 대사를 살게 하자고 논의하니, 사방에서 대중들이 구름처럼 모야서 잠깐 사이에 좋은 집이 이루어졌다. 대사는 어느 날 문득 스스로 “내가 큰 법을 구하러 나왔는데, 어찌 중도에서 그치겠는가?” 생각하고 , 이튿날 길을 떠나 황매산로 향했다.</p><p class="바탕글">&nbsp;&nbsp; 홍인 조사로부터 법을 받은 뒤에 몇 년을 숨어 지내다가 때가되어 법성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동산법문 즉 홍인 가풍을 개설하였다. 그 뒤에 소주 자사 위거韋據가 대범사大梵寺에서 법문을 설하기를 청하므로, 그곳에서 설법한 것을 문인들이 기록해서 &lt;단경壇經&gt;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전해졌다. 그 뒤에 조계로 돌아와 큰 법의 비를 뿌리니, 배우는 자들이 항상 천여 명이었다. 신룡년간의 조칙과 설간 관련 내용은 &lt;조당집&gt;에서 전한 것과 같으나, 이곳에서는 측천 대신 중종中宗이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선천先天 원년에 조사가 모든 대중들에게 말했다. “내가 외람되이 홍인 대사의 의발과 법을 전해 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대들에게는 법만을 전할 뿐 의발은 부촉하지 않나니, 그대들의 신근信根이 순수하게 성숙하여 결코 의심이 없어서 큰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 땅 온갖 씨앗 품어 있어서, 너르게 내린 비로 모두 싹트네. 꽃의 뜻 한 순간에 깨치고 나면, 깨달음 열매들은 저절로 맺네. 心地含諸種 普雨悉皆生 頓悟華情已 菩提果自成’”  그 뒤에 또 “내가 간지 70년쯤에 두 보살이 동쪽에서 올 텐데, 하나는 재가자이고 또 하나는 출가자이다. 두 사람은 동시에 교화를 펴서 나의 종지를 건립하고 가람을 잘 꾸려서 법손이 번창하리라.”  하였다. 신주의 국은사로 가서 목욕한 뒤에 가부좌를 한 채 천화遷化하니, 선천 2년 계축년 8월 3일이었다. 그 때에 기이한 향기가 사람을 엄습하고 힌 무지개가 땅에서 뻗혔다. 당시에 소주와 신주의 두 자사가 각각 신령한 탑을 세우려하자, 승속이 따라야 할 곳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두 자사가 같이 향을 피워 축원하기를 “향연기가 끌리는 쪽이 대사께서 돌아가시려는 곳이다” 하니, 향로가 하늘로 곧게 솟아올라서 조계로 날아가니, 11월 13일 탑에 안치하였다. 세납이 76세였다. 법을 받은 이는 인종 법사 등 33인을 제외하고도 각기 한 지방을 교화하면서 정통 후계자를 표방했으며, 그 밖에 이름을 숨기고 자취를 감춘 이는 헤아릴 수 없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노 행자 법 받은 뒤 구족계 높게 지녀,</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계 정 혜 원만하여 법 비를 내리시니,</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조계의 조사선풍이 온 누리에 퍼졌네!</b></font></p><p class="바탕글">&nbsp;&nbsp; 육조 혜능 선사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그 분의 어록 법문집인 &lt;육조단경&gt;은 부처님 경전 이외에는 유일하게 ‘경經’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출신과 성장, 입산 출가 구도, 수행과 오도, 수법과 전법 교화 과정 등의 일생이 비범하며 극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석존으로부터 가섭을 거쳐 보리달마에 이른 인도 법통이 중국에 이르러 선종을 형성하여 토착화되었지만, 육조이후에 본격적인 자리매김이 되었고, 그 이후로 중국불교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른바 ‘삽삼조사&#21317;三祖師’의 마지막 조사로서 특수한 위치에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그 후예들에 의하여 한국과 일본 등지를 거쳐 선불교가 서구 및 세계화의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신라 당시의 삼법三法 스님과 대비大悲 스님이 그분의 정상을 모셔와 지리산 쌍계사에 안치하였다는 ‘육조정상탑 六祖頂相塔’ 연기 등은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p><p class="바탕글">현재 한국불교의 적장자 종단으로 불리는 종단의 이름이 그분이 계셨던 ‘조계’를 차용하여 종명으로 쓰고 있음은, 그분의 사상과 법통이 한국불교계 내의 영향과 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그분의 사상과 삶을 되새기며, 그분의 가르침을 오늘에 새롭게 펼치는 일에 성실히 하여, 개인은 물론 사회와 인류문명 발전에 정신적 자산을 삼아야 될 줄 압니다.<br></p><br>]]></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hu, 01 Nov 2018 19:42:1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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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홍인</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16</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삼십이조第三十二祖 (中國第五祖) 홍인弘忍  </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 전하기를,  홍인 화상의 성은 주周씨이고, 본시 여남汝南에서 살다가 남쪽인 기주 황매에 옮겨 살았다. 태어난 지 7년째에 출가하여 도신 대사를 섬겼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두 번 묻는 법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빛이 나서 하늘을 관통했고, 항상 이상한 향냄새를 맡고는 몸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이윽고 태어나니, 관상쟁이가 보고 “이 아이는 일곱 가지 대인大人의 상이 부족하여 부처님보다는 못합니다.” 했다. </p><p class="바탕글">&nbsp;도신 조사로부터 법을 받은 뒤에 황매산에서 교화하는데, 노盧 행자行者라는 나이 서른  두 살의 청년이 영남嶺南으로부터 찾아와 조사를 친견했다. 조사가 “그대는 어디서 왔으며, 무슨 일로 왔는가?” 물으니, 노 행자가 “신주新州에서 왔는데 부처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대답했다. 조사가 “그대는 영남 사람이라 불성이 없느니라.” 하니, 행자가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불성에는 남북이 없습니다.” 하였다. 조사가 “그대는 무슨 공덕을 짓겠는가?” 물으니, 행자가 “힘껏 돌을 지고 방아를 찧어 스승과 스님들께 공양할까 합니다.” 답하였다. 조사가 허락하니, 하룻밤 하루 낮에 쌀 열두 섬을 찧으면서 한결같게 시봉하여 여덟 달이 지나자, 행자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도의 근원입니까?” 조사가 “그대는 속인이거늘 나에게 그것을 물어 무엇 하려 하는가?” 하니, 행자가 “세속제에는 승속이 있으나 도에 어찌 승속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조사가 “그대가 만일 그렇게 안다면 절대 남에게서 찾으려 하지 마라.” 하니, 행자가 “그렇다면 밖에서 얻을 것이 아닙니다.” 하니, 조사가 “안에서 찾는다 해도 옳지 못하느니라.” 하였다. </p><p class="바탕글">   홍인 조사가 입멸하기 전에 대중에게 고했다. “바른 법은 듣기 어렵고, 거룩한 모임은 만나기 어려운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으니, 만약 깨친 바가 있거든 말해 보라. 나의 말만 기억하지 말라. 내가 증명해 주리라.” 그 때 대중 가운데 신수神秀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써 벽에 붙였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거울, 때때로 털고 닦아 먼지 없애리.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懃拂拭 莫使有塵埃” 이에 노 행자가 자기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그 옆에 써 붙이도록 했다. “몸은 보리수가 아닐뿐더러, 마음도 또한 거울 틀이 아니리.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경지로, 어디에 먼지 일랑 있을 수 있나? 身非菩提樹 心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 그를 본 조사가 방앗간으로 가서 행자에게 “수고하는구나. 행자야, 쌀이 익었느냐?” 물으니, 행자가 “쌀이 익은지는 오랩니다만, 아직 까부르지 못했을 뿐입니다.” 답했다. 조사가 “삼경이 되거든 오거라.”하고 돌아갔다. 그 때에 행자가 조사의 처소에 가니, 조사가 그의 이름을 혜능慧能으로 바꾸어 주고, 의발衣鉢과 법을 전해 주었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홍인 조사가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은 하나의 큰 일(一大事)을 위함이다. 그리하여 근기의 크고 작음에 따라 인도하셔서 십지十地와 삼승三乘과 돈점頓漸 따위의 종지로써 교문敎門을 이루었지만, 위없는 비밀하고 미묘하며 원명圓明한 정법안장은 상수제자인 대가섭존자에게 부촉하셨다. 차례차례 이십 팔대를 전수하여 달마대사에 이르러서는 중국으로 오셔서 혜가 대사에게 전하신 것이 나에게까지 전해 왔다. 이제 나는 법보와 전해 받은 가사를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스스로 잘 보호해서 끊이지 않게 하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하며, 다음 게송을 혜능에게 읊었다 “뜻 있는 이 와서는 씨를 뿌리고, 이 땅을 원인하여 열매 맺으니, 뜻 없는 이는 이미 씨 뿌림 없고, 성품이 없음으로 남도 또 없네. 有情來下種 因地果還生 無情旣無種 無性亦無生” 홍인 조사가 법을 전한 뒤에 4년이 지나, 상원上元 2년 을해년에 대중에게 “나는 이제 할 일을 마쳤으니 떠날 때이다.” 라고 알리고는, 방에 들어가서 단정히 앉아 입적하니, 74세였다. 황매현 동쪽 산에 탑을 세우니, 대종 황제가 대만선사법우지탑大滿禪師法雨之塔 이라고 시호와 탑호를 내렸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선풍을 널리 펴고 법의 비로 크게 채워,</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혜능을 이루어서 여래 심인 전하시니,</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동방에 정법안장이 인연 따라 꽃피네!</font></p><p class="바탕글"> </p><p class="바탕글">&nbsp;&nbsp; 오조 홍인 선사는 여러모로 후대의 모범이 되어 왔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당신은 일곱 살 어린 나이에 동진 출가하여 여법하게 수행하셨고, 불성佛性과 공空에 통하여 &lt;금강경&gt;을 널리 권하셨으며, 700여 대중을 모아 교육하시고 수행시켜서 그 이후의 불법 홍포에 그게 이바지 하셨습니다. </p><p class="바탕글">후대에 회자되는 신수 대사와 같은 제자는 당대의 서울인 장안에서 여러 대에 걸쳐 황제의 스승이 되어 대중을 교화했고, 혜능 같은 영재는 후대의 선법을 번창 하도록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p><p class="바탕글">황매산에서 매화처럼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도 법의 향기를 널리 펴고 법을 비내려 그 은덕이 두루 미치게 하였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수법제자 혜능을 성숙시키고 보호하는 지혜와 자비의 성심과 대중을 통어하는 방편 등으로 이사理事와 돈점頓漸에 통달하셨던 조사의 자재한 가풍은 길이 귀감이 될 줄 압니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Mon, 29 Oct 2018 11:59:3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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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도신</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15</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삼십일조第三十一祖 (中國第四祖) 도신道信</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 전하기를, 화상의 성은 사마司馬씨인데, 본래 하내河內에서 살다가 기주&#34308;州의 광제廣濟에서 성장하였다. 승찬 조사의 법을 이어 받은 뒤에, 황매黃梅로 가는 길에서 일곱 살 정도의 한 어린이를 만났는데, 말하는 것이 특이했다. 조사가 “네 성이 무엇이냐?” 물으니, 동자가 “성은 있으나 예사로운 성이 아닙니다.” 대답하였다. 조사가 “그게 무슨 성이더냐?” 물으니, 동자가 “불성佛性입니다.” 답했다. 조사가 “너는 성이 없단 말이냐?” 물으니, 동자가 “그 성은 공空하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이에 조사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아이가 예사롭지 않으니, 내가 멸도한 지 20년 뒤에 크게 불사를 이루리라.” 하였다. 동자가 “여러 성인들은 무엇에서 증득합니까?” 물으니, 조사가 “텅 비고도 텅 비었느니라.” 답했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서 전하기를, 도신 대사는 승찬 조사의 가풍을 이어받고서는, 마음을 굳게 지녀 졸지 않았으니, 거의 60년 동안 겨드랑이를 바닥에 대지 않았다. 수나라 대업 13년에 무리들을 이끌고 길주로 가다가 도적떼를 만났는데, 성을 둘러싸고 79일 동안이나 풀어주지 않아서 대중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대사는 그들을 가엾게 생각해서 마하반야 摩訶般若를 염念하게 하였다. 이때 도적들이 성벽 위를 바라보자 마치 신병神兵이 있는 듯 했으므로 서로 “이 성안에 반드시 이인異人이 있으니 공격하지 말자”고 하고는 슬금슬금 물러갔다. 황매현을 가다가 한 어린이를 만나 문답하고는 법기法器임을 알아채고서, 시자를 시켜 그 집의 부모에게 출가시키기를 요구하게 하였다. 그 부모는 전생의 인연 때문에 어려운 기색 없이 아들을 놓아 주어서 대사의 제자가 되게 하니, 이름을 홍인弘忍이라 하였다. 나중에 홍인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과 옷을 전하였다. “씨앗과 꽃은 나는 성품 있어서, 땅에서 뿌려져서 꽃을 피우네. 큰 인연 더불어서 믿음 합하면, 마땅히 남이 없이 남을 내리라. 華種有生性 因地華生性 大緣與信合 當生生不生” </p><p class="바탕글">   정관貞觀 계묘년에 태종太宗이 대사의 도풍을 듣고 그 풍채를 보고자 해서 조서를 내려 장안으로 불렀지만, 표를 올려서 사양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였지만, 끝내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네 번째에는 사자에게 “만약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거든 목을 베어 오라”고 명령했다. 사자가 산으로 가서 조서를 전하니, 대사는 목을 뽑아 칼날로 가져가면서도 얼굴빛이 태연하였다. 사자가 이상히 여겨서 그대로 돌아가 장계狀啓를 올리니, 황제는 더욱 흠모하는 마음을 내어 진기한 비단을 하사함으로서 그의 뜻을 이루게 해 주었다. 고종高宗 영휘永徽 신해년 9월 4일에 홀연히 문인들에게, “일체의 법은 모두가 해탈이니, 너희들은 제각기 호념해서 미래의 유정들을 교화하라.” 고 훈계를 내리고, 평안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그대로 본산에 탑을 세웠는데, 이듬해 4월 8일에 탑의 문이 저절로 열렸고 대사의 모습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문인들이 감히 문을 닫지 못했다. 대종代宗이 대의大醫 선사라 시호를 내리고서 자운지탑慈雲之塔이라고 불렀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진월이 찬탄하고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스스로 해탈하여 해탈법 널리 펴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황제의 권력에도 법력으로 응대하며,</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생사에 자재하신 분, 도의 믿음 크셔라!</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삼조 승찬 선사로부터 마음에 걸림이 없는 해탈법을 증득하고 제자들을 통해 후대에 전하신 사조 도신선사는, 태종 황제의 간곡한 부름에도 응하지 않으며 탈속하고 초연한 출가 수도자의 의연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p><p class="바탕글">시적하심에도 좌탈坐脫의 모습을 보이셨음은 물론, 입적하고 해가 바뀐 뒤에도 살아있을 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심은 생사자재를 증명해 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오조 홍인 대사를 제자로 키우고 법을 부촉하였음은 후대의 선불교 융성의 씨앗을 뿌린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근래 정교의 유착이나 승풍의 혼탁한 분위기를 감안하면 도신 선사의 선풍이 더욱 아쉽고 그리운 실정임을 느낍니다.&nbsp;<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Mon, 29 Oct 2018 11:54:0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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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승찬</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13</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삼십조第三十祖 (中國第三祖) 승찬僧璨</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서 전하기를, 승찬은 어디 사람인지도 알 수 없고, 성도 이름도 모른다. 혜가 대사를 만나 심법을 얻은 뒤에는 대중을 많이 모아 놓고 정법을 두루 폈다. 모임 가운데 한 사미가 있었는데, 나이는 열 네 살이고, 이름은 도신道信이라 했다. 조사에게 와서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의 마음입니까?” 조사가 “그대는 지금 무슨 마음인가?” 되물었다. 도신이 “저는 지금 마음이 없습니다.” 하니, 조사가 “그대도 마음이 없거늘 부처님께서 무슨 마음이 있겠느냐?” 하였다. 도신이 “화상께서 저에게 해탈법문을 가르쳐 주시기를 오직 바랄 뿐입니다.” 청하니, 조사가 “누가 그대를 속박했는가?” 물었다. 도신이 “아무도 속박한 이가 없습니다.” 하니, 조사가 “아무도 속박한 이가 없다면 그대가 바로 해탈한 사람인데, 어찌하여 다시 더 해탈을 구하는가?” 물었다. 도신이 이 말끝에 크게 깨닫고, 조사의 곁에 8-9년 있은 뒤에 길주吉州로 가서 구족계를 받고 돌아와 다시 조사를 뵈니, 조사가 그에게 법을 전해 주었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혜가 조사로부터 법을 받고는 서주舒州 환공산晥公山에 숨었다. 그러다가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불법을 파괴하자, 대사는 태호현太湖縣의 사공산司空山을 오가면서 일정한 거처가 없이 10년을 살았는데, 당시 사람 가운데에 그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도신이 법을 받을 만하게 되자,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옷과 법을 전하였다. “씨앗과 꽃들 모두 땅을 인하고, 땅에서 씨앗과 꽃 생겨나지만, 만약에 씨 뿌리는 사람 없다면, 꽃이나 땅도 모두 남이 없노라. 華種雖因地 從地種華生 若無人下種 華地盡無生” 그리고는 곧 나부산羅浮山으로 가서 두해 동안 유행하다가 다시 옛터로 돌아왔는데, 한 달이 지나자 선비와 백성들이 모여와서 크게 단檀을 마련하고 공양을 베풀었다. 대사는 사부대중에게 마음의 요체를 널리 연설하고 나서, 법히를 하던 큰 나무 밑에서 합장한 채로 서서 입적하니, 이 때가 수나라 양제煬帝 대업大業 2년 병인년 10월 보름이었다. 당나라 현종玄宗이 감지鑑智 선사라 시호하고 탑호를 각적覺寂이라 하였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nbsp;&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스승을 뵙고 나서 죄성罪性이 없음 깨쳐,</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제자를 만나고는 해탈을 베푸신 분. </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신심信心’을 새겨 전하며 감지鑑智 각적覺寂 되셨네!</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font size="4">&nbsp;</font><!--[endif]-->  <o:p></o:p></p><p class="바탕글">&nbsp;&nbsp; 승찬 조사는 당시에 법난(후주 무제의 훼불)이 있었고, 스승의 예언과 암시에 따라 은거를 많이 하신 줄 압니다. </p><p class="바탕글">아무튼 도신을 만나 이른바, 해탈법문解脫法門으로 해탈시키고, &lt;신심명信心銘&gt;을 지어 후세의 귀감이 되셨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마지막 임종에서는 이른바, 좌탈입망坐脫立亡 즉, 앉거나 서서 열반하는 시적示寂 가운데, 서서 가시는 모습으로 생사에 자재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p><p class="바탕글">후대에 전해진 유명한 &lt;신심명&gt;은 선종 수행자들에게 근본서적의 하나로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고 전승되어져 왔습니다. </p><p class="바탕글">시호처럼 감지 즉, 거울 같은 지혜의 존재로서 도신과 같은 훌륭한 제자를 키워 후대에 선법 선양의 기틀을 마련하셨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승찬 선사는 흔히 삼조三祖로 통하듯이, 중국에서 선종의 뿌리를 내리는데 크게 이바지한 업적을 되새기며 더욱 기려야 하겠습니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Fri, 19 Oct 2018 08:27:1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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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혜가</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11</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이십구조第二十九祖 (中國第二祖) 혜가慧可</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 전하기를, 선사는 무뢰武牢 사람이며, 성은 희姬씨이다. 아버지 적寂은 당초 아들이 없어서 그 부인과 생각하기를 ‘우리는 지극히 선한 가문인데도 자식이 없으니 참으로 슬프구나. 어느 성현께서 굽어 보살펴주시려나’ 기도 했는데, 후위 효문제 영의永宜 15년 정월 초하루 저녁에 광명이 온 집안에 두루 하는 상서가 나타난 뒤로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아 이름을 광광光光이라 하였다. 나이 15세에 구경九經을 통달해 외웠고, 30세가 되자 용문龍門의 향산사香山寺로 가서 보정寶靜 선사를 섬기면서 항상 선정과 지혜를 닦았다. 출가한 뒤에는 동경東京의 영화사永和寺로 가서 구족계를 받았고, 32세가 되자 다시 향산사로 돌아와서 스승을 섬겼는데, 다시 또 8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고요한 밤에 한 신인神人을 보았는데, 그가 광에게 “과위를 받으려 하면서 어찌 여기에 머물러 있는가? 남쪽으로 가야 도道에 가까워지리라.” 라고 말했다. 그 뒤로 신광神光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 밤이 되자 갑자기 머리가 찢어지는 듯이 아파서 그 스승이 뜸을 뜨려 했는데, 공중에서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이는 뼈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 예사 고통이 아니니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승이 곧 그만두었고, 신광이 이상한 신인을 본 사실을 보정에게 이야기 하니, 보정이 “반드시 상서祥瑞일 것이다. 네 정수리가 달라졌으니 옛날의 머리가 아니다. 5봉이 옥 수레에 내려앉은 듯 그 모습이 기이하구나.” 하였다. 그리하여 스승을 하직하고 남쪽으로 갔다. 달마를 만나 상승上乘의 법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달마대사가 소림에서 교화를 부탁하고 서쪽으로 돌아간 뒤에, 혜가 대사가 계승하여 선풍을 드날리면서 법 전할 사람을 널리 구하였는데, 마흔 살이 넘어 보이는 어떤 거사 하나가 성명도 밝히지 않은 채 불쑥 와서 절을 하며, “제자의 몸은 풍병에 걸렸으니, 화상께서 죄를 참회케 하여 주소서.” 하였다. 대사가 “죄를 가지고 오라, 참회시켜 주리라.” 하니, 거사가 “죄를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였고, 대사가 “나는 그대의 죄를 다 참회시켜 주었다. 앞으로는 불 법 승에 의거해서 살도록 하라.” 하였다. 거사가 “지금 화상을 뵙고 나니, 승보僧寶는 알겠습니다만, 어떤 것을 불보佛寶 법보法寶라고 합니까?” 물으니, 대사가 “이 마음이 부처이고, 이 마음이 법이다.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니, 승보도 마찬가지니라.” 대답했다. 거사가“오늘에야 처음 죄의 성품이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으니, 마음이 그러하듯이 불보와 법보도 둘이 아니옵니다.” 아뢰니, 대사가 깊이 법기라고 여겨서 곧 머리를 깎아주고는, “너는 나의 보배이니, 이름을 승찬僧瓚이라 하라.” 고 말했다. 거사는 광복사光福寺에서 구족계를 받으니, 그로부터 병이 차츰 나아져서 2년 동안 대사를 시봉할 수 있었다. </p><p class="바탕글">   어느 날, 혜가 대사가 승찬에게 “보리달마께서 멀리 천축으로부터 와서 정법안장을 은밀히 나에게 부촉하셨다. 내가 이제 달마께서 신표로 주신 옷과 법을 아울러 그대에게 주나니, 그대는 잘 수호해서 끊이지 않게 하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본래로 땅 있음을 반연하여서, 그 땅에 씨 뿌리니 꽃이 피누나. 하지만 본래 씨앗 없는 것이며, 꽃 역시 일찍부터 남이 없어라.’” 하고는 옷과 법을 부촉하였다. 이어서, “그대가 내 가르침을 받은 뒤에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교화에 나서지 말라. 머지않아 국난國難이 있으리라.” 하였다. 승찬이 “스승께서는 미리 아시니, 바라옵건대 가르침을 내려 주소서.” 간청하니, 대사가 “내가 아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달마대사께서 반야다라 존자의 예언을 전하시기를 ‘마음속은 길하나 겉모양은 흉하다’고 한 것인데, 내가 햇수를 따져보니 요즈음에 해당한다. 마땅히 앞에 한 말을 잘 생각해서 세상의 재난에 걸리지 않게 하라. 하지만 나 역시 전생의 허물이 있어서 지금 갚아야 한다. 잘 가고 잘 행하다가 때를 기다려 전해 주어라.” 하였다.  대사가 법을 부촉한 뒤에 업도&#37172;都에서 34년을 교화하고는, 수隋 문제文帝 개황槪皇 13년 계축년 3월 16일, 태연히 입적하니, 당시 나이는 107세였다. 뒤에 자주 자주磁州 부양현&#28367;陽縣 동북쪽 70리에 장사 지내니, 당나라 덕종德宗이 대조大祖 선사라 시호하였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신광의 위법망구 달마를 계승하여,</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동방에 대조로서 승찬을 키워내니,</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만대의 모범으로서 지혜 빛이 퍼지네!</font></p><p class="바탕글">&nbsp;&nbsp; 중국의 당시 천재로서, 청소년기에 이미 대부분의 세상 경전과 서적에 통달하였지만 그에 만족하지 못했고, 불교에 심취하여 기존의 교학과 수행을 하였지만 그 한계를 느끼며 향상을 염원하다가, 신인의 안내와 도움으로 인도에서 온 보리달마를 찾아가서, 정성을 다해 섬기고 목숨을 바쳐 법을 구했던 혜가 조사는, 후대에 영원한 구도자의 모범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아울러 승찬 같은 훌륭한 제자를 키우고 법을 전함으로서 법통을 전승하도록 하였고, 107세가 되도록 ‘입전수수入廛垂手’ 즉, 세상 속에 들어가 동사섭同事攝 보살행을 하시다가, 시기하는 간승의 무고로 화를 당하시고 의연히 서거하심은, 선종 수행자의 행로를 보이신 줄 압니다.</p><p class="바탕글">&nbsp;아무튼, 혜가 조사는 중국에 전통적 선종의 토착화 되는 전기를 마련하시고 동아시아 선풍의 근원으로 씨앗이 되시었고 선종사에 불멸의 이정표가 되시었으니, 수도자는 길이 기억하고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nbsp;<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Fri, 12 Oct 2018 01:57:1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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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보리달마</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09</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이십팔조第二十八祖 (中國初祖) 보리달마菩提達磨 Bodhidharm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 전하기를, 남천축국 향지대왕香至大王의 셋째 태자로서 반야다라 조사의 법을 받았는데, 조사가 일러 말했다. “그대가 지금 나의 법을 받았으나 너무 멀리 교화하러 가지 말고, 내가 열반에 든 지 67년 뒤 동쪽 나라에 가서 법을 크게 베풀라. 그대는 너무 서두르지 말라... ...그대가 그 나라에 가거든 남쪽에는 머무르지 말라. 그 나라의 왕은 불법의 참 이치는 모르고 유위법의 인연 짓기를 즐기어 공덕을 좋아하니, 그대가 그 나라에 가거든 머물지 말고 바로 떠나라. 나의 참언을 들어라. "길을 가다가 물을 건너서 다시 양羊을 만나니,(路行跨水復逢羊) 혼자서 쓸쓸히 남 몰래 강을 건너리라. (獨自&#24659;&#24659;暗渡江) 한낮에 코끼리와 말이 애처로운데,(日下可怜雙象馬) 두 그루의 어린 계수나무 오래도록 번성하리.(兩株&#23226;桂久昌昌)” </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보리달마 대사는 바다重溟를 통해 건너가 3년이 지나서야 남해南海에 다다르니, 이때가 양梁의 보통普通 8년 정미년丁未年 9월 21일이었다. 광주廣州 자사刺史 소앙蕭昻이 주인의 예를 갖추어서 영접하고는 무제武帝에게 표表를 올려서 보고했다. 무제는 보고를 받고는 사자에게 조서詔書를 주어서 맞아드리니, 10월 1일에 금릉金陵에 도착하였다. (주에는 이 사실이 잘못 기록되었다고 하며, 대사의 광주 도착시기를 보통 원년元年 경자년庚子年(520)이라고 바로 잡았다). 무제가 대사에게 묻기를 “짐朕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 절을 짓고, 경전을 쓰고, 스님을 양성한 것이 셀 수 없는데, 어떤 공덕이 있소?” 하니, 대사가 “아무 공덕도 없습니다.(無)” 대답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 물으니, “이는 다만 인간과 하늘의 작은 과보를 받는 유루有漏의 원인일 뿐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듯 하지만 실답지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어지는 문답: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이오?” “청정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해서 체體가 스스로 비고 적멸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상 법으로는 구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 성제聖諦의 제일가는 뜻(第一義)이오?” “확연廓然하여 거룩함聖도 없습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모릅니다.” 무제가 알아듣지 못하자, 대사는 근기기 계합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달 19일에 몰래 강북을 돌아서 11월 23일에 낙양洛陽에 이르니, 이때가 후위後魏의 효명제孝明帝 태화太和 10년이었다 (주에는 후위 효명 정광正光 원년이라고 바로 잡았다). </p><p class="바탕글">&nbsp; 그 뒤에 숭산嵩山의 소림사 少林寺에 머물렀는데, 벽을 대면하여 앉아서는 종일토록 침묵을 지키니, 아무도 그 연유를 아는 이가 없어서 그를 일러 벽을 보는 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하였다. 당시 신광神光이라는 활달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오랫동안 낙양에 살면서 온갖 서적을 많이 읽고 현묘한 이치를 잘 이야기 하곤 하였다. 그는 늘 이렇게 탄식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예절, 술수, 풍류, 법규뿐이요, 장자와 &lt;주역&gt; 따위의 글은 묘한 이치를 다하지 못했다. 요사이 듣건대 달마대사가 소림사에 계시면서 찾아가는 사람을 맞이하지 않고, 현묘한 경지를 이룬다고 했다.” 그리하여 달마대사에게 가서 날마다 섬기고 물었으나 대사는 늘 단정히 앉아서 벽을 바라볼 뿐이어서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신광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옛사람이 도를 구할 때에는 뼈를 깨뜨려서 골수를 빼내고, 피를 뽑아서 주린 이를 구제하고, 머리털을 펴서 진흙땅을 덮고, 벼랑에서 떨어져 굶주린 호랑이를 먹였다. 옛사람도 이러하였거늘 나는 또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그해 12월 9일 밤에 큰 눈이 내렸다. 신광은 꼼짝도 않고 서 있는데, 새벽녘에는 눈이 무릎 너머까지 쌓였다. 대사가 불쌍히 생각해서, “그대는 오랫동안 눈 속에 서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가?” 물었다. 신광이 슬피 울며, “바라옵건대 화상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감로의 문을 열어서 온갖 중생을 널리 제도해 주소서.” 간청했다. 이에 대사가 “부처님들의 위없는 묘한 도는 오랜 겁을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작은 공덕과 작은 지혜와 경솔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진승眞乘을 바라는가? 헛수고를 할 뿐이다.” 라고 대답했다. 신광이 대사의 훈계를 듣자 슬며시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끊어서 대사의 앞에 놓으니, 대사는 곧 그가 법기法器임을 알고서 말했다. “부처님들이 처음 도를 구하실 때에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다.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끊으니, 법을 구할만 하구나.” 마침내 대사가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라고 바꿔주자, 신광이 물었다. “모든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을 들을 수 있습니까?” 대사가 “부처님들의 법인은 남에게 얻는 것이 아니니라.” 답했다. 혜가가 “제 마음이 아직 편안치 못하오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 청하였다. 대사가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를 편안케 해주리라.” 하니, 혜가가 “마음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 하였고, 이에 대사가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했다.” 고 말했다. </p><p class="바탕글">&nbsp; 뒤에 효명제가 대사의 기이한 행적을 듣고 사자와 조서를 보내서 부르기를 세 차례나 하였지만, 대사는 끝내 소림사를 떠나지 않았다. 황제는 더욱 더 흠모를 하면서 마납摩衲 가사 두벌과 황금발우, 은물병과 비단 등을 하사했으나, 대사는 굳게 사양하면서 세 번이나 돌려보냈다. 그러나 황제의 뜻이 더욱 단호해지자 대사는 그때서야 마침내 받았다. 그 때 이후로 스님과 속인의 무리가 갑절이나 더 믿고 귀의하였다. 다시 9년이 지나자 대사는 서쪽의 천축으로 돌아가고자 해서 문인門人들에게 말했다. “때가 되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각기 얻은 바를 말하지 않는가?” 이때 도부道副가 “제가 본 바로는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는 것으로 도의 작용을 삼는 것입니다.” 하니, 대사가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했다. 총지總持 비구니가 “제가 이해한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보았을 때처럼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않은 것입니다.” 하니, 대사가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했다. 도육道育이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고 오온五蘊이 있지 않으니, 제가 보기에는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하니, 대사가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했다. 마지막에 혜가가 절을 한 뒤에 제자리에 서 있자, 대사가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했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달마대사가 혜가에게, “옛날에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대사에게 전했는데, 차례차례 부촉해서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잘 수호해서 지켜야 한다. 그리고 너에게 가사를 전해서 신표로 삼나니, 제각기 표시하는 바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말하니, 혜가가 “스승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청했다. 대사가 “안으로 법인法印을 전해서 깨달은 마음과 계합하고, 밖으로 가사를 부촉해서 종지宗旨를 확정한다. 후세 사람들이 얄팍하게 갖가지 의심을 다투어 일으키면서, ‘나는 인도 사람이고 그대는 이곳 사람인데, 무엇으로써 법을 증득했다는 것을 증명 하리오?’ 라고 할 것이니, 그대가 지금 이 옷과 법을 받아 두었다가 뒤에 환난이 생기거든 이 옷과 내 법의 게송만을 내놓아서 증명을 삼으면 교화하는 일에 지장이 없으리라. 내가 열반에 든 지 2백년 뒤에 옷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겠지만, 법은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세계에 두루 하리라. 그래서 도를 밝힌 이는 많아도 도를 행하는 이는 적으며, 이치를 설하는 자는 많아도 이치에 통한 자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잠잠히 부합하고 비밀히 증득하는 이가 천만이 넘으리니, 그대는 도를 드날릴 때에도 깨닫지 못한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한 생각으로 근기를 돌이키면 문득 본래 깨달은 것과 같으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내 본래 이 땅으로 오려 한 뜻은, 법 전해 어리석은 이 구함이니, 한 송이 꽃에 다섯 잎이 열리면, 열매는 자연스레 이루어지리. 吾本來玆土 傳法求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대사가 다시 말했다. “나에게 &lt;능가경&gt; 네 권이 있는데, 이 역시 그대에게 부촉한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며칠 뒤에 그 고을 태수 양현지楊衒之가 일찍부터 불법을 사모했다고 하면서 대사에게,  “서역의 천축에서는 스승의 법을 전해 받으면 조사祖師라고 한다는데, 그 도가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대사가 “불심佛心의 종지宗旨를 밝혀서 행行과 해解가 서로 응하는 것을 조사라고 하오.” 라고 답했다. “그밖에는 어떠합니까?” 또 물으니, “모름지기 다른 이의 마음을 밝히고, 그 고금古今을 알고, 있음과 없음을 싫어하지 않고, 법을 취함이 없으며, 현명하지도 어리석지도 않고, 미혹도 깨달음도 없나니, 이렇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사라고 칭하오.” 라고 대답했다. </p><p class="바탕글">&nbsp; 대사가 교화의 인연을 다하였고, 법 전할 사람을 만났으므로, 단정히 앉아서 열반하니, 이때가 후위後魏 효명제孝明帝 태화太和 19년 병진년 10월 5일이었다. 그해 12월 28일 웅이산熊山耳에 장사지내고, 정림사定林寺에 탑을 세웠다. 그 뒤 3년 후에 위魏나라의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33905;嶺에서 대사를 만났는데, 손에 신 한짝을 들고 홀홀히 혼자 가고 있었다. 송운이 “스님, 어디를 가십니까?” 물으니, “나는 서역으로 돌아가오.” 대답하였다. 송운이 황제에게 복명하고, 그 사실을 알리니, 황제가 대사의 무덤을 열어보게 하였는데, 빈 관에 신 한 짝만이 남아 있었다. 온 조정이 경탄한 나머지 황제의 명에 따라 남은 신을 가져다가 소림사에서 공양하였다.  </p><p class="바탕글">      </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남인도 태자로서 출가해 도 이루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중국에 여래 심인 씨앗 뿌려 전하고서,</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선법을 누리에 펴며 서래 조사 되셨네.  </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보리달마 존자에 얽힌 설화는 수없이 많고, 많이 알려져 있는 줄 압니다.</p><p class="바탕글">&nbsp;&lt;조당집&gt;과 &lt;전등록&gt;에도 많은 양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지면관계상 다 소개하지 못함이 아쉽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아무튼 인도로부터 석존 여래의 정법안장과 심인을 중국에 전함으로서 선법이 동 아시아에 전파되고, 세계로 번져 나가는 계기를 만들었음은 역사적인 사건임이 분명합니다. </p><p class="바탕글">이름과 형상 등 현상적 의식에 집착하고 복을 짓는 유위법에 빠져 있던 세상에, 심성과 무명을 깨침으로 내적 세계의 초월적 지향과 무위법을 선양하고, 불교의 본래면목을 들어내어 이른바,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祖師西來意)”이 선종의 화두話頭가 되어 왔음을 되새겨 보게 합니다. </p><p class="바탕글">아울러, 그분이 정의한 ‘조사祖師’ 즉, “불심의 종지를 밝혀서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한 분”의 출현이 요청되며, 근래에 그분의 뜻이 새삼 더욱 귀하고 아쉽게 느껴집니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nbsp;<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hu, 04 Oct 2018 11:09:4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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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반야다라</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07</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이십칠조第二十七祖 반야다라般若多羅 Prajnatar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 전하기를, 반야다라는 동인도 출신으로, 어려서 부모를 잃고 보살로 화현하여 불사를 일으켰다. 불여밀다를 만나 법을 전해 받고 교화를 펴면서 남천축에 이르렀고, 당시 향지왕의 재에 참석하였다. 다른 이들은 모두 경을 읽는데 조사 홀로 경을 읽지 않고 있으므로, “어째서 스님은 경을 읽지 않습니까? ”왕이 물으니, “빈도는 숨을 내쉴 때에 모든 반연을 따르지 않고, 숨을 들이쉴 때에도 온蘊과 계界에 머물지 않나니, 항상 이렇게 백 천 억 권의 경을 읽으니, 한두 권뿐이 아닙니다.”라고 조사가 대답하였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남인도 향지 왕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막내가 총명하였다. 반야다라존자가 그들의 얻은 바(지혜)를 시험코자 해서 보시 받은 구슬을 가지고 세 왕자에게 물었다. “이 구슬이 둥글고 밝은데, 이에 미칠 것이 있는가?” 첫째왕자 목정다라目淨多羅와 둘째왕자 공덕다라功德多羅는 모두 똑 같이 “이 구슬은 칠보 가운데서도 존귀한 것이라서 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존자의 도덕이 아니라면 누가 그것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셋째왕자 보리다라菩提多羅는 달리 대답했다. “이는 세상의 보배이긴 하지만 최상의 것은 되지 못합니다. 모든 보배 중에서는 법의 보배가 으뜸입니다. 또 이 구슬의 빛은 세간의 빛이라서 최상의 것이 아니니, 모든 빛 가운데에서는 지혜의 빛이 최상입니다. 또 이 구슬의 밝음은 세간의 밝음이라서 최상의 것이 되지 못하니, 모든 밝음 가운데서는 마음의 밝음이 최상입니다.” 존자가 그의 변설과 지혜에 탄복하고, “모든 물건 가운데 어떤 물건이 가장 큰가?” 다시 물었다. 보리다라가 “모든 물건 가운데서 법성法性이 가장 큽니다.”라고 대답했다. 존자가 “그대는 이미 모든 법을 통달했다. 무릇 달마達磨라 함은 통달하고 크다는 뜻이니, 마땅히 이름을 달마라 하라”고 하여 보리달마菩提達磨라고 이름을 고쳤다. 존자는 그가 법을 계승할 자임을 알았으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으므로, 말없이 그를 인정하였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뒤에 향지왕이 세상을 떠날 때에 다른 이들은 모두 통곡을 하는데, 보리다라만이 영구 앞에서 선정에 들었다가 7일 뒤에 나와서 출가하겠다고 하였다. 존자가 구족계를 주고 나서 그 에게 분부하였다.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대가섭에게 부촉했고, 그런 식으로 차례차례 전해지면서 나에게 이르렀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에 온갖 종자 생겨나느니, 모든 일 말미암아 이치 생기네. 결과가 가득차면 깨달음 차고, 꽃피니 온 세계가 일어나도다. 心地生諸種 因事復生理 果滿菩提圓 華開世界起” 존자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의 손을 펴서 광명을 놓으니, 스물일곱줄기로 뻗으면서 오색이 찬란하였다. 몸을 허공으로 일곱 다라수多羅樹만큼 솟구치고는 삼매의 불로 스스로를 태우니, 허공에서 사리가 비 오듯이 하였다. 대중이 사리를 거두어서 탑을 세웠다.</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endif]-->&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서천의 이십칠조 큰 스승 반야다라,</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동토에 법 전하라 보리달마 부촉하신</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대세지 보살의 화현, 마하 방편 바라밀!</font></b></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훌륭한 스승은 가능성이 있는 제자를 발굴하여 잘 키워내는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반야다라 조사는 보리다라 왕자를 발탁하여 달마로 만들어 냄으로서, 인도의 법맥이 동방으로 전해질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셨습니다. </p><p class="바탕글">그리하여 선법이 중국을 거쳐 한국 등지 동아시아에 퍼지고, 나아가 세계로 확산될 씨앗으로 키운 조사의 공덕은 기리 빛날 것입니다. </p><p class="바탕글">보리다라 왕자의 지극한 불심과 뛰어난 지혜 이를테면, 세간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것들의 한계를 알고 그를 넘어선 출세간의 수승한 법의 가치를 추구하는 안목과 통찰력이 탁월함에 제이의 실달타라고 평가할 만합니다.</p><p class="바탕글">&nbsp;반야다라와 보리달마, 두 고귀한 인물과 이름을 새삼  기립니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30 Sep 2018 23:45:5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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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불여밀다</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05</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이십육조第二十六祖 불여밀다不如密多 Punyamit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불여밀다는 남인도 득승왕得勝王의 태자로 바사사다 존자에게 출가하여 법을 받은 뒤에 교화하며 동인도로 가서 주술을 하는 외도들과 그들을 믿는 왕 견고堅固를 만났다. “대사는 무엇 때문에 오셨소?” 왕이 물으니, “중생을 제도하려 합니다.” 조사가 대답했다. 또 “어떤 법으로 제도하시겠소?” 물음에 “각자의 부류에 맞는 법으로 제도합니다.” 라고 답했다. 이때에 외도 범지梵志가 환술로서 큰 산을 변화시켜 조사의 정수리 위에 얹어 두었다. 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홀연히 저들의 머리위로 옮라 갔다. 범지들이 겁이 나서 모두 조사에게 귀의하니, 존사가 그들을 가엾이 여겨 그 허깨비 산들을 사라지게 하고, 왕에게 법을 설해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였다. 그 때에 근처에 떠돌던 영락瓔珞이라는 동자를 만나서, “너는 지난 일을 기억하는냐?” 고 물었다. 동자가 “제가 생각하건대 아득히 먼 겁에 스님과 같이 살았는데, 스님은 마하반야를 연설하였고, 저는 깊은 수다라를 읽었습니다. 아마도 오늘의 일이 옛 인연과 계합하는가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조사가 옛 인연에 따라 반야다라般若多羅라 이름을 지어주고 제자를 삼았다. 뒤에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해 주었다. “참 성품 마음 땅에 갈무리되어, 머리(처음)도 없지만은 꼬리(끝)도 없네. 인연에 감응하여 교화를 하니, 방편을 부르기를 지혜라 하네. 眞性心地藏 無頭亦無尾 應緣而化物 方便呼爲智” 그 뒤에 왕에게 최상승인 불법을 외호하는 일을 잊지 말라고 분부하고, 가부좌로 앉아 입적하여 삼매의 불로 스스로 태웠다. 왕이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워 봉안하였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 </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득승왕 태자로서 발심출가 사문되어&nbsp;</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사다 조사 법을 있고 외도들 교화하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거룩한 불여밀다존 방편 지혜 빛나네.</b></font></p><p class="바탕글">    </p><p class="바탕글">&nbsp;&nbsp; 불교에서는 신통과 술수를 부림을 삼가고 정법으로 교화하기를 권합니다. </p><p class="바탕글">불여밀다 조사도 신통을 부리려 하지 않았지만, 외도들이 환술로 위협을 하고 아만을 보이자, 그들을 항복 받고 제도하고자 그들보다 더 강한 신통 법력을 방편으로 발휘하여 불법의 수승함을 들어내 보였습니다. </p><p class="바탕글">상황과 인연 따라 부응하는 자비방편의 교화방법은 삿된 외도 등의 도전과 횡포에 맞서서 정법을 펼치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대승불교의 주요수행법인 십바라밀 가운데 방편바라밀이 있음에 유념하여야겠습니다. </p><p class="바탕글">과학과 기술이 발달된 오늘날, 그 들을 방편으로 활용하여 불법을 펼치려는 연구와 시도도 고려해 볼 일입니다.<br></p><br>]]></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Mon, 24 Sep 2018 13:46:5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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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바사사다</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03</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이십오조第二十五祖 바사사다婆舍斯多 Basasat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 전하기를, 바사사다 존자는 계빈국 출신으로, 어머니 꿈에 신인神人이 보검을 손에 들고 와서 전해주는 것을 보고 태기가 있다고 한다. 사자존자를 만나 출가수행하고 법을 받은 뒤에 중천축국에서 교화하다가 남인도에 이르렀다. 그때에 득승得勝이라는 국왕이 있었는데 주술만 숭상하고 불교를 믿지 않았다. 주술사가 왕에게 “바사사다는 불법을 모르고 있으니, 대왕께서 시험해 보소서. 그 사람이 성인이라 자칭하지만 이상한 일을 물어서 대답을 못하면 사자 존자의 법을 이어받은 제자가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그 때 불여밀다不如密多라는 태자가 “선왕께서 이 존자를 공양하셨고, 이 존자께서는 위덕이 있으니, 시험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니, 왕이 태자를 꾸짖고 감옥에 가두도록 했다. 왕이 존자를 불러서 무례하게 물었다. “우리나라에는 삿된 법이 없소. 그대가 배운 것은 무슨 종宗이오?” 조사가 “이 나라에는 삿된 법이 없소. 제가 배운 것은 불종佛宗이오.” 라고 대답했다. 왕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지 벌써 1,200년이요. 스님의 나이 70인데 무엇을 얻었소?” 하고 물었다. 조사가 “석가여래께서 교법을 전하신 뒤로 24대를 거쳤습니다. 제가 지금 배운 것은 사자 존자의 법을 이은 것으로 믿음을 표시하는 옷이 있어 승가리라 하는데, 지금 저의 바랑 속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왕에게 꺼내 보였다. 왕은 그를 믿지 않고, 곧 좌우에 명하여 그 가사를 불에 태워 시험하니, 불이 타올라 광명이 하늘에 사무치고 상서로운 구름이 땅을 뒤덮으며 기이한 꽃비가 내려 이상한 향이 감돌았고, 불이 다 탄 뒤에도 가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왕은 이를 보고 비로서 발심하여 참회하였다. 그 때 태자는 감옥에서 음식을 얻지 못하자, “나는 법을 위해서 오늘날 이렇게 굶주리며 고통을 받는다. 어찌해야 구제를 받겠는가?” 말하니, 하늘에서 흰 젖줄이 내려와 입에 들어가서 감로와 같은 맛을 내었다. 몸이 건강해진 태자는 “내가 만일 이 곳을 벗어난다면 곧 출가하리라.” 다짐했고, 왕이 풀어주자 곧바로 조사에게 출가할 뜻을 말했다. 조사가 “그대는 무슨 일로 출가하려 하오?” 물으니, 태자가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함입니다.” 대답했다. 또 “무슨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물으니 “세속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조사가 “여래께서 큰 자비로써 오늘 이 태자를 나에게 보내시어 불사를 돕게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그를 출가시켜 계를 주어 수도하게 하였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불여밀다 태자가 바사사다 조사에게 출가하여 6년을 시봉하고,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해 받았다. “성인이 설하시는 앎과 봄에는, 경계에 당하여서 시비가 없네. 내 이제 참된 성품 깨닫고 나니, 도 없고 진리 또한 없다고 하리. 聖人說知見 當境無是非 我今悟眞性 無道亦無理” 불여밀다가 “법의法衣를 계속해서 전하오리까?” 물으니, 조사가 “이 법의는 환난 때문에 임시로 증명을 삼은 것이다. 그대의 몸에는 환난이 없거늘, 어찌 법의에 가탁하겠는가? 덕화가 시방에 퍼지면 사람들이 자연히 믿고 향해 오리라.” 대답했다. 조사가 신통변화를 보인 뒤에 삼매의 불로 스스로의 몸을 태우니 평지에 사리가 가득하였고, 왕이 부도를 세워 봉안하였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전생부터 인연으로 사자의 법을 이어,</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불여밀다 제자 얻어 여래의 법 부촉하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황량한 남인도 땅에 연꽃 씨를 뿌렸네. </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태어날 때부터 손에 구슬을 쥐고 나와 사자 조사를 만날 때까지 지키고 있다가, 전생의 인연에 따라 조사에게 반납하고 제자가 되었다는 아름다운 설화는 매우 인상적입니다.</p><p class="바탕글">&nbsp;법의 신표로 받은 가사가 불에도 타지 않음으로 법의 신성한 존재를 보여주고 있음이 주목됩니다.</p><p class="바탕글">&nbsp;이는 후대에 중국에서 혜능 선사가 홍인 조사의 법과 함께 받은 가사와 발우를, 쫓기다가 바위 위에 놓았지만, 힘센 장정도 그를 들어서 옮기지 못했다는 이야기와도 통하는 것입니다. </p><p class="바탕글">불여밀다 태자 같이 조사를 존경하고 불법을 위해 옥고의 위험을 무릅쓰며 소신을 말하기도 하고 나아가, 왕궁 부귀와 세속적인 일을 초월하여 출가 수도하려는 발심은 석가여래의 출가이전 싯다르타 태자를 연상하게 합니다. </p><p class="바탕글">이 모두 스승과 제자의 오래된 인연과 출가 배경 및 발심 수도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고귀한 신심과 원력을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전법의 미담을 널리 전하고, 발심의 계기를 갖도록 하여야겠습니다.</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Fri, 21 Sep 2018 06:54:1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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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사자</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101</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이십사조 第二十四祖 사자師子 Simh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서 전하기를, 중인도 출신인 사자 존자는 학륵나존자로부터 법을 받은 뒤에 사방으로 다니며 교화하다가 계빈국&#32637;賓國에 이르러. 그곳에서 다섯 무리의 외도들을 제도하였다. 어느 장자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존자에게 물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사다斯多인데, 태어날 때부터 왼손을 쥐고 있습니다. 이제 장성했건만 끝내 펴질 않고 있으니, 바라옵건대 존자께서 전생의 인연을 보여 주십시오.” 존자가 그를 보자 즉시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내 구슬을 돌려다오.” 동자가 갑자기 손을 펴고 구슬을 받들어 올리니, 대중이 모두 깜짝 놀랐다. 존자가 말하기를 “내가 전생에 스님이었을 때 바사婆舍라는 동자가 있었다. 당시 내가 서해 용왕의 재齋에 갔다가 구슬 보시를 받아서 그에게 맡겼었는데, 이제 내 구슬을 돌려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은가?” 장자가 그 아들을 출가하게 하니, 존자가 곧 구족계를 주고는 전생의 인연에 따라 바사사다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존자는 스승의 예언을 생각하고 환난을 겪기 전에 승가리와 함께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법을 전하며, 인연에 따라 교화를 베풀라고 부촉하였다. “알고 봄 올바르게 설할 때에는, 앎과 봄 그 모두가 이 마음이라. 당장의 이 마음이 곧 지견이요, 지견을 바로 알라 지금이니라. 正說知見時 知見俱 是心 當心卽知見 知見卽于今” 바사사다는 분부를 받고 곧 남천축으로 갔지만, 존자는 계빈국에 남아 스승의 예언이 실현됨을 맞았다. </p><p class="바탕글">&nbsp; 당시 계빈국에 마목다摩目多와 도락차都落遮라는 두 외도가 있었는데, 요술을 부려 혼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스님의 형상으로 가장하고 왕궁으로 잠입하면서, “성공하지 못하면 죄를 스님에게 돌리자.” 고 음모하였다. 마침내 요망한 짓이 재앙으로 잇달아 일어나고 계획이 그르치게 되었다. 왕이 스님의 행위로 착각하고, “내가 본래 마음으로부터 삼보에 귀의했는데, 어쩌면 이다지도 나를 해치려고 하는가?” 성을 내며, 사찰을 파괴하고 불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을 내렸다. 왕은 직접 칼을 들고 존자의 처소에 가서 따졌다. “스님은 오온五蘊이 공空함을 깨달았소?” 존자가 “깨달았소.” 하니 다시 “생사를 여의었소?” 물었고, 존자가 “여의었소.” 대답했다. 왕이 “생사를 여의었다면 나에게 머리를 줄 수 있겠군” 하니, 존자가 “몸도 내 것이 아니거늘 어찌 머리를 아끼겠는가?” 대답하였고, 왕이 곧 칼로 존자의 머리를 치니, 흰 젖이 몇 척이나 치솟았고, 왕의 오른팔도 땅에 떨어졌다가 7일 만에 죽었다. 태자 광수光首가 탄식하고, 사자존자의 시체를 거두어 탑을 세우게 하였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환란을 당하리라 예언한 스승 뜻을,  </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자비로 이루면서 세상을 깨우치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생사에 자재 보이신 사자비구 조사님!</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사자 조사의 일화는 불교 내부는 물론, 국가사회와 관련하여 여러 시사를 줍니다. </p><p class="바탕글">외도의 변란 조작으로 불교가 엉뚱하게 법난을 당하게 되었지만, 그 결과는 실질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국왕의 어리석음으로 잘못 판단하고 분심으로 스님께 섣불리 화풀이를 하려했지만, 도리어 그 앙화를 받아 천벌을 받아 죽었고, 태자의 속죄와 공경을 받아 불교의 진면목이 들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여기서 주목할 바는, 불교 수행자는 불교를 잘 이해하고 수행하여 언행이 일치하는 법력으로 그 진가를 보일 수 있어야 하며, 생사가 달린 결정적 순간에도 태연하고 당당하게 불교적 소신을 갖고 실상을 보여줄 수 있는 용기와 저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p><p class="바탕글">경주 백률사에 이차돈 성사의 유적이 있고, 신라의 불교 수용을 위하여 순교할 때에, 성사의 목이 베어지며 흰 젖이 솟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사자 존자의 순교시도 같은 현상을 보였음이 큰 감동을 줍니다.</p><p class="바탕글">&nbsp;개인적 일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자비심으로 불법의 실상을 보이며, 무아와 생사자재를 실현하신 조사님의 원력과 법력을 찬탄하며, 오늘날에 그러한 도인이 새삼 그립고 아쉬움을 절감합니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16 Sep 2018 05:43:2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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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학늑나</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98</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이십삼조第二十三祖 학륵나鶴勒那 Hakln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학륵나는 월지국 출신인데, 부모가 아들이 없어 부처님께 빌었는데, 모친의 꿈에 수미산 정상에서 한 신동神童이 금가락지(金環)을 들고 와서 “내가 왔소.”라고 말함을 듣고 깨어나니 태기가 있었다. 일곱 살의 소년으로 마을에 놀러 다니다가 동네 사람들의 굿하는 것을 보고 그 당집(廟)에 들어가 꾸짖기를, “너는 화禍와 복福을 허망하게 일으켜서 허깨비로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해마다 짐승을 희생하여 소비하니 살생이 어찌 이리도 심한가!” 하니, 당집이 곧바로 무너졌다. 이로 말미암아 마을 사람들에게 성자聖者로 불렸다. 스물두 살에 출가하여 서른 살에 마나라 존자를 만나 정법안장을 부촉 받았다. 인도중부에서 설법 교화하는데, 사자師子가 귀의하며, “제가 도를 구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겠습니까?” 하고 존자에게 물으니, “네가 도를 구하고자 하면 마음을 쓸 것이 없느니라.” 대답해 주었다. 이어서 사자가 “이미 마음을 쓸 것이 없다면, 누가 불사佛事를 짓겠습니까?” 물으니, 존자가 “네가 만약 쓰임(用이) 있다면 공덕이 아니요, 네가 만일 지음(作)이 없다면 그것이 불사이니라. 경에 말하기를 ‘내가 지은 공덕이라고 해서 내것(我所)이랄 것이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니라.” 고 가르쳐 주었다. 사자가 그 말을 들어 깨닫고 곧 지혜를 얻었다. 그 때에 존자가 하늘의 이상한 기상 변화를 가리키며, “내가 입멸하고서 50년 뒤에 북천축에서 환란이 일어나서 그대의 몸에도 미칠 것이다. 나는 곧 열반에 들겠으니, 이제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부촉한다, 잘 수호해서 지녀라.” 하며 다음 게송을 읊었다. “마음의 참 성품을 깨달아서 알 때에는, 생각하고 의논할 수 없는 줄 말하지만, 완전히 깨달으면 말할 수도 없으리니, 말할 수 있을 때는 안다고 말 하지마라. 認得心性時 可說不思 議 了了無可得 得時不說知” 사자는 게송을 듣고 기뻐하였지만, 장차 겪을 환란은 깨닫지 못했다. 전법을 마친 학륵나 존자는 여러 가지 신비한 변화를 보이고는 입적하였고, 대중이 화장하고 사리를 모아 그 자리에 탑을 세웠다고 전한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어려서 진실 보고 미신을 타파하며</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수행의 인과응보 실답게 보여 주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뒷세상 제자 걱정한 자비로운 누진통.</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학륵나 조사는 부처님께 기도한 부모의 태몽으로 탄생한 이인異人으로, 어려서부터 미신을 타파하여 악습을 없애는 등의 비범함을 보였고, 학의 무리들이 따르듯이 생태계에도 이적이 있는 도인의 풍모를 보여 줍니다. </p><p class="바탕글">나아가 미래를 내다보며 불교와 제자의 환란을 걱정하는 예지와 자비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p><p class="바탕글">오늘날에도 저러한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와 훌륭한 제자를 찾아서 키우고 전법 도생하는 스승이 그립고 아쉽습니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nbsp;<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ue, 11 Sep 2018 04:03:4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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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나라</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97</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이십이조第二十二祖 마나라摩拏羅 Manolut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마나라는 나제국 상자재왕 아들로서, 서른 살 때에 바수반두 조사에게 출가하여 법을 전해 받아 두루 교화 활동을 하였다. 서인도에 갔을 때에 그 나라의 왕인 득도得度가 신심을 내어 불사를 하고 수행에도 정성이 컸다. 그 왕은 마나라 존자를 뵙고 발심하여, 왕위를 태자에게 물려주고 존사에게 출가하니 도과를 증득하게 하였다. 당시 월지국에는 국왕 보인寶印이 학륵나 비구에게 경전 교의를 배우고 있었다. 이때에 마나라 존자는 학륵나의 기연을 통찰하고 미리 감응을 보인 뒤에, 월지국으로 가서 왕과 학륵나의 공양을 받았다. 학륵나가 자기 제자와 500여 마리의 학 무리가 따르는 연유를 묻자, 그들의 전생 인연들을 설명해 주었다. 500여 학의 무리는 과거 생에 학륵나의 제자들이었는데, 학륵나가 용궁에 묘한 공양을 받으러 가는 때에, 그 공양을 받을 자격과 자질이 못되었던 그 제자들이 따라가기를 간청하여 함께 갔던 까닭에, 그들이 죽은 뒤에 새로 변하여 계속 따라다니게 되었다고 하였다. 학륵나가 그들을 해탈시킬 방법을 묻자, 마나라 존자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법문하였다. “마음은 만여 가지 경계 따라 구루니라. 구르는 곳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하다. 흐름 따라 그 성품을 깨달아서 얻는다면, 기쁨도 없거니와 걱정 다시 없으리라. 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隨流認得性 無喜復無憂” 법문을 들은 학 무리들은 울면서 날아갔다. 법을 전한 뒤에 마나라 조사는 가부좌를 하고 입적하니, 학륵나와 보인 왕이 함께 조사 추모하는 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승속의 인물에다 새떼의 무리까지</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깨우쳐 해탈시켜 보살도를 행하셨네.</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마음의 본성 보여서 자유자재 누리게. <!--[endif]-->&nbsp;</b></font></p><p class="바탕글">&nbsp;&nbsp; 세상 사람들이 선망하는 왕위에 있는 이도 발심하여 출가하도록 감동을 주는 인격과 수행력, 혜안과 법력 및 자비심을 갖추신 선지식, 마나라 같은 훌륭한 스승이 그립고 아쉬운 시절입니다. </p><p class="바탕글">출가 승가와 재가 신도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은 물론, 새와 같은 동물들도 감응하고 해탈을 얻게 하는 지혜와 자비의 힘을 보여 주심을 본받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p><p class="바탕글">오늘날 불교인들이 지향하여야 할 바람직한 수행자와 지도자의 모범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nbsp;<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ue, 11 Sep 2018 04:01:0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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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바수반두</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95</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이십일조第二十一祖 바수반두婆修盤頭 Vasubanandhu</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 전하기를, 나열성 사람으로서 사야다 존자로부터 법을 받은 뒤에 두루 교화하며 다니다가, 나제국那提國에 이르러 상자재왕常自在王과 환담하고 있는데, 한 사자가    와서 보고하기를 “백만의 코끼리 군사가 남쪽으로 쳐들어왔습니다.” 하였다. 이에 왕이 놀라서 “큰일 났구나, 어떻게 적을 물리쳐야 하지?” 하며 걱정하니, 조사가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걱정 마시고, 둘째 왕자인 마나라로 하여금 가볍게 할喝을 한 번 하게 하십시오.” 하였다. 왕의 분부를 받은 왕자는 바로 성 남쪽에 가서, 왼손을 들어 배를 두드리며 할을 하자, 코끼리 군사가 땅에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왕이 이런 광경을 보고 감탄하여 그 왕자를 거두어 주기를 조사에게 애원하므로, 왕자는 곧 출가하여 계를 받았다. 조사는 그를 데리고 두루 다니며 교화하다가 마침내 마나라에게 법을 전했다. </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는, 나열성의 부유한 부부가 아들이 없어 불탑에 기도하며 자손을 구했는데, 어느 날 밤에 부인이 구슬을 삼키는 태몽을 꾸었다. 7일 만에 현중賢衆 아라한이 찾아와 그 훌륭한 아들 낳을 예언을 하였고, 그 뒤 한 달 만에 바수반두를 낳았으며, 그는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수행하고  득도하였다. 나중에 유행하면서 나제국 상자재왕과 만나 대화하는데, 대왕의 국토에는 두 스승이 교화한다고 하였다. 두 스승이 누구인지를 묻는 왕에게, “부처님께서 수기하시기를 ‘두 번째 5백년에 한 명의 신통력 있는 대사가 출가하여 성인의 법을 이으리라’ 하셨으니, 대왕의 둘째 아들인 마나라가 그 하나이고, 제가 그 다른 하나에 해당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에 왕이 그 아들을 출가시키니, 그에게 구족계를 주어 부처님의 뜻을 이루었다. 나중에 바수반두 조사가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마나라에게 법을 전해주었다. “거품과 허깨비는 한가지로 걸림 없다, 어찌하여 깨달아서 마치지를 못하는가! 불법이 그 가운데 있음을 깨달으면, 지금도 아니면서 옛날도 아니니라. 泡幻同無&#31001; 如何不了悟 達法在其中 非今亦非古” 법을 전한 뒤에 조사가 몸을 하늘 높이 솟구쳐 머무르자 대중이 우러러 청하므로, 다시 자리에 돌아와 결가부좌하고 입적하였다. 대중이 화장하고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웠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부모의 부처님께 기도로 탄생하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일찍이 출가하여 대도를 이룬 뒤에,</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훌륭한 제자 만들어 부처님 뜻 이뤘네.</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사야다 조사의 돈교와 정법을 전해 받은 바수반두 존자는, 나중에 마나라 왕자를 제자로 삼아 출가시켜 성도하게 하고, 석존의 수기 예언을 이루셨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두 비범한 조사의 출생 인연과 신비스런 설화의 사실 여부는 논외로 하고 아무튼, 그 걸출하고 위대한 조사의 사상과 생애 및 초인적 능력과 업적은 탁월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수행할 때에는 여법하게 정진하였으며, 도를 이룬 뒤에는 세간을 두루 다니며 교화하고 인재를 발굴하여 포교 전법하는데 무애 자재하였으니, 조사 가풍을 새삼 되새겨 보게 합니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hu, 06 Sep 2018 22:45:5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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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사야다</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91</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이십조第二十祖 사야다 夜多 Jayat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 전하기를, 북천축 즉, 북인도 출신으로서 구마라다로부터 법을 이어받은 사야다 존자는 교화를 펼치며 나열성羅閱城에 이르렀을 때에, 그 지역에 유명한 바수반두라는 두타頭陀를 만났다. 그는 하루에 여섯 차례 예불하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며, 눕지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서 하루에 한 끼니만 먹고 지내고 있었다. 사야다 존자는 그 곳의 대중으로부터 그 사실을 확인하고 말하기를, “이 두타는 오래지 않아 물러날 것이니, 이는 도와 매우 멀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구하는 바가 있으면 도라고 할 수 없느니라.” 이에 대중이 존자의 살림을 물으니, “나는 도를 구하지 않지만 목표와 수단을 뒤바꾸지도 않고, 여섯 차례 예불을 하지는 않으나 거만하지도 않으며, 오래 앉아 있지는 않으나 게으름을 부리지도 않으며, 한 끼니만 먹지는 않으나 이것저것 함부로 먹지도 않으며, 만족할 줄을 모르지만 욕심을 두지도 않는다.” 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그 두타가 사야다 존자를 찬탄하며 스승으로 귀의하였고, 나중에 조사의 법을 이었다. &lt;전등록&gt;에는, 사야다 존자가 나열성에서 돈교頓敎를 펼치는데, 바수반두(중국말로는 변행遍行) 두타를 우두머리로 삼는 그곳 무리들은 오직 변론만 숭상하였다. 존자는 변행 두타의 수행으로는 아무리 오래 노력해도 불도를 이룰 수 없다고 하며, 자신의 견해를 말하니, 변행 두타가 감동하여 찬탄하며 가르침을 청했다. 존자가 그 두타를 거두어 깨우치고,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법을 전했다. “말 끝에 남이 없이 온전히 계합하면, 법계의 본성품과 하나로서 같으니라. 만약에 이와 같이 이해할 수 있다 하면, 거침없이 이理와 사事를 통달하여 마치리라. 言下合無生 同於法界性 若 能如是解 通達事理竟” 사야다 조사가 법을 부촉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돌연 입적하니, 대중들이 화장하고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웠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유위有爲의 한계 넘어 법계성품 보이시며</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대승의 돈법頓法으로 변론외도辯論外道 조복하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여래의 정법안장을 전해주신 선지식!</b></font></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endif]-->&nbsp; 사야다 조사는 교학 변론이나 의례 의식 등의 외형적인 유위법에 머물면서 불도를 이루려는 이른바, 소승 점수漸修 무리들을 깨우쳐 대승 돈교와 선법을 들어내 보이는 교화를 하신 것으로 짐작합니다. </p><p class="바탕글">후세 선종에서 ‘말 한마디 듣자마자 생사문제를 해결한 (一言之下頓忘生死)’ 큰 깨침을 이야기 하며, 오래 앉고 눕지 않는 (長坐不臥) 수행 등의 외형보다, 곧바로 마음을 가리켜 (直指人心) 본성을 보아 깨닫는 (見性成佛) 것을 강조함과 일치하는 줄 압니다. </p><p class="바탕글">참선 수행자들이 유념하여야 할 가르침이며, 본받아야 할 살림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아울러 조사의 가르침을 듣는 순간에 그 뜻을 터득하고 기뻐하며, 아무런 거리낌과 머뭇거림 없이 곧바로 승복하고, 기존의 자기 관행을 청산하며 제자로 받아주기를 청하는 바수반두의 구도자적 자세와 정성에 주목합니다.</p><p class="바탕글">&nbsp;바람직한 “그 스승에 그 제자” 로서의 아름다운 인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26 Aug 2018 01:34:1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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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구마라다</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90</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십구조第十九祖 구마라다鳩摩羅多 Kumaralabdh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서 전하기를, 월지국 출신인 구마라다 존자는 가야사다로부터 법을 이어받은 뒤에 두루 교화하다가 북천축 즉 인도북부 지역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발에 기름을 바르고 돌아다니던 사야다라는 학자 신사를 만났는데, 그가 구마라다에게 달려와 절을 하며 물었다. “우리부모는 불도를 믿고 추구하며 정성껏 공양하여왔는데도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리고, 이웃집 사람은 항상 흉악한 짓만 하고 수행은 하지 않는데도 아무런 재앙이 없으니, 이 두 가지 사실의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자비로서 설명해 주십시오.” 존자가 대답하기를, “업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통함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선을 쌓는 집은 경사가 있고, 악을 쌓는 집에는 재앙이 있느니라.” 이 가르침을 들은 사야다가 기뻐하며 출가를 발원하고 존자에게 거두어 주기를 청하였다. 존자가 허락하자 수행하여 도과道果를 증득하였고 나중에 법을 이어 받았다. &lt;전등록&gt;에는, 구마라다가 전생에 자재천과 도리천 및 범천 등지에서 설법을 잘하고 지낸 천인天人이었는데, 때가되어 대월지국에 태어났다고 전한다. 가야사다에게 출가수행하고 법을 받은 뒤에 인도 중북부 지역에서 교화하다가 사야다를 만나 깨우치고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성품에는 본래부터 말을 냄이 없지만은, 구하는 사람 따라 맞추어서 말하느니. 법에는 본래 이미 얻을 것이 없는 터에, 어찌하여 깨치거나 못 깨침을 걱정하랴! 性上本無生 爲對求人說 於法旣無得 何懷決不決” 전법을 마친 구마라다 존자는 법좌에 앉아서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니, 마치 붉은 연꽃이 피어나는 듯 하며 큰 광명이 그 틈으로 나와 대중을 비춘 뒤에 입적하였다. 사야다 등이 탑을 세워 조사를 기렸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월지국 태어나서 외도에 머물다가</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선지식 만나서는 출가수행 이루어서</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북천축 교화하고는 연꽃 같은 서거를.</b></font></p><p class="바탕글">       </p><p class="바탕글">&nbsp;&nbsp; 구마라다 조사는 월지국 즉, 인도의 서방에 태어나서 이교도로 지내다가, 그곳에 교화하러 오신 가야사다 존자를 만나 개종하여 불제자가 된 분입니다. </p><p class="바탕글">출가수행으로 도를 이룬 뒤에는 인도북부 등지를 다니며 교화하면서 불교와 선법을 전파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사야다처럼 불평등하고 부조리 같이 세상을 보고 느끼는 이들에게, 불교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 안정을 찾아 개인적으로 안심입명安心立命과 해탈 자재를 얻게 하고는, 역시 변방으로 다니며 민중을 교화하고 전법하는데 진력하였음이 주목됩니다. </p><p class="바탕글">보통사람들처럼 자기 고향에 안주하며 편히 지내려 하지 않고, 변방 외지로 소외 계층을 찾아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이익을 주려는 대자대비의 보살행을 펼친 삶은 매우 고귀한 모범으로 삼아야 될 것입니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26 Aug 2018 01:30:1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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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가야사다</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89</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십팔조第十八祖 가야사다伽耶舍多 Gayasata</p><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서 전하기를, 마갈다국 출신으로 가야사다는 열두 살에 승가난제의 법을 받아 교화하러 다니다가, 월지국月氏國에 이르러서, 불사를 크게 펼쳤다. 그곳에 구마라다라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외도를 믿어서 불법을 싫어하였다. 가야사다는 구마라다 집에 가서 인연의 법을 깨우쳐 주고, 그의 아버지 병의 원인을 말해주니, 구마라다가 환희심을 내고 출가하기를 원했다. 이에 그를 출가시켜 구족계를 주고 수행을 시켜서, 그가 도를 이룬 뒤에는 법을 전해 주었다. &lt;전등록&gt; 기사에서는, 가야사다의 모친이 위대한 신장神將이 거울을 들고 있는 모습을 꿈꾸고 태기가 있었는데 7일 만에 낳았다고 한다. 몸이 유리 같이 비쳐서 한 번도 씻기지 않았는데도 자연히 깨끗하고 향기로웠다고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조용한 곳을 좋아하였으며, 거울을 들고 나갔다가 승가난제 존자를 만나 출가하게 되었다. 대월지국에 가서 구마라다를 찾아, “옛날에 세존께서 수기하시기를 ‘내가 열반에 들고 나서 천년 뒤에 월지국에 대사가 나타나서 현묘한 교화를 이으리라’고 하셨는데. 이제 그대가 나를 만난 것이 이 멋진 운명에 응한 것이다.”라고 하며 구마라다를 출가시켰다. 나중에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했다. “종자와 마음 땅이 모두 있으니, 인연이 어울려서 싹을 내리라. 인연이 서로서로 막지 않으면, 마땅히 생겨나도 남이 아니리 有種有心地 因緣能發萌 於緣不相&#31001; 當生生不生” 전법 뒤에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서 열여덟 가지 신통변화를 보였다가 화광삼매火光三昧로 화하여 스스로 몸을 태우니, 대중이 사리를 모아 탑을 세웠다.</p><p class="바탕글">       </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어려서 출가하고 수행에 몰입하여,</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대도를 이루고서 외지에 유행하며.</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서방에 불종자 심어 교화 꽃을 피웠네.</b></font> </p><p class="바탕글">&nbsp;&nbsp; 가야사다 존자의 출생과 관련된 모친의 태몽과 신비스런 탄생과정 및 신체특성 등의 설화는 비범한 존재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깨달음을 위하여 수행하는 하루의 삶이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백년의 삶보다 의미가 있다는 그분의 메시지는 출가 수행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승가난제 조사를 스승으로 출가수행하고 법을 이어 받은 뒤에, 월지국 즉 인도의 서부지역 나라에까지 나아가 전법 교화하였음은 가야사다 존자의 원력과 능력이 위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특히, 풍경소리에 대한 법거량 선문답 (소리는 풍경이나  바람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서 온다함) 은, 후대에 중국에서의 육조 혜능선사의 깃발 문답 (깃발이나 바람이 흔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흔들림)과 내용구조의 유사성 및 유심론적 동질성을 볼 수 있는데, 마음공부와 깨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이 주목됩니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26 Aug 2018 01:21:4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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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승가난제</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87</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십칠조第十七祖 승가난제僧伽難提 Samgha-dev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에서 전하기를, 실라벌성 출신인 승가난제 존자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줄 알았고, 분명하게 깨달아서 어머니에게 설법을 해주었다. 나중에 라후라다 존자의 제자가 되어 법을 받고는 여러 곳을 다니면서 교화를 폈다. 마갈타국에 도달하니,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동자가 손에 구리거울을 들고 존자에게 왔다. 존자가 묻기를 “그대는 몇 살인가?” 하니 동자가 “저는 백 살입니다.” 대답하였다. 그 연유를 물으니, 동자가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일백년을 살아도 부처님의 기틀을 알지 못하면, 하루를 살면서 분명히 알아 깨닫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거울을 든 까닭을 물으니, “모든 부처님들의 크고 둥근 거울은 안팎에 가림이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서로 마음을 알고 통하니. 동자의 부모가 출가하게 하였고, 조사가 거두어 절로 데리고 가서 계(戒)를 주고 가야사다라 이름 하였다. 절 건물 처마 끝의 풍경 소리가 울림을 듣고, 승가난제 조사가 가야사다에게 묻기를, “바람이 우는가? 풍경이 우는가?” 하니, “제 마음이 우는 것일지언정 바람이나 풍경이 우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무엇이 네 마음이냐?” 물으니, “모두가 고요하기 때문이니, 그 어찌 삼매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이에 조사가 “장하다, 참된 비구야. 부처님들의 이치를 잘 이해하였고, 참된 진리를 잘 설명하였고, 불법의 참 이치를 잘 인식하였다.” 라고 칭찬하였다. &lt;전등록&gt;에서는 승가난제 조사가 가야사다에게 법을 전해주며,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마음의 바탕에는 본래 남이 없느니라. 씨앗이 떨어져서 조건 따라 자라난다. 씨앗과 조건들이 서로 방해 않느니라. 꽃이 피고 열매 맺음 또한 마찬 가지니라. 心地本無生 因地從緣起 緣種不相妨 華果亦復爾” 법을 전한 뒤에 조사는 그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오른 손으로 잡고 입적하니, 대중들이 그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그대로 탑을 쌓아 기렸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나면서 말을 하고 어려서 깨우친 분,</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일찍이 출가하여 조사선법 이어받아,</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제자에 마음 전하며 수행 가풍 세웠네.</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승가난제 존자는 보장엄왕寶壯嚴王 아들로서, 석가세존의 싯달타 왕자의 시절과 같이 일찍부터 출가 구도를 추구하였다고 합니다. </p><p class="바탕글">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전생부터 큰 선근이 있었고, 중생 구제를 위해 원력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수행과 전법 교화의 모범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나면서부터 말을 했거나 불법을 깨우쳤다는 전설은 사실 여부를 떠나, 태어날 때부터의 일반인들과 다른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고, 세속적인 욕망보다 출세간의 진리와 초월의 삶에 대한 안목이 있어, 통찰의 예지를 지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나아가 선대 조사로부터의 정법안장을 이어받아 후대로 이어주는 역할로서 훌륭한 제자를 발굴하고 육성하여 그 책임과 도리를 모범적으로 다한 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nbsp;<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19 Aug 2018 23:24:1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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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라후라다</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85</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십육조第十六祖 라후라다羅&#30586;羅多 Rahulata</p><p class="바탕글">&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가나제바 존자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가비라국 출신의 라후라다는 교화를 행하면서 실라벌성에 이르러, 물맛이 좋은 금수金水라는 강을 만나자, “이 강의 원류 쪽으로 5백리 쯤 가면 승가난제라는 성자가 그곳에 살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천년 후에 거룩한 지위를 계승하리라’고 하셨다.” 말하며, 따르는 무리들을 데리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곳에 이르니, 승가난제가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들어 있었다. 존자가 대중과 함께 지켜보았는데, 21일이 지나서야 비로서 선정에서 일어났다. 존자가 “그대는 몸이 선정에 드는가, 마음이 선정에 드는가?”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몸과 마음이 함께 선정에 듭니다,” 하였다. 계속 법담을 나눈 뒤에 감복된 승가난제가 묻기를, “당신은 어떤 성인을 스승으로 섬기었기에 이와 같은 나 없음無我를 얻었습니까?” 하니, 존자가 “나는 가나제바 존자를 스승으로 삼아서 이와 같은 나 없음을 증득했다.” 고 답했다. 이에 승가난제가 “당신보다 뛰어나신 가나제바 존자에게 머리를 조아립니다. 또 당신도 나 없음을 얻었음으로 나는 당신을 스승으로 삼고자 합니다.” 라고 하며, 곧바로 출가하기를 원하니, 존자가 “그대의 마음은 자재하니, 나에게 매인 것이 아니다.” 라고 하며 받아드렸다. 승가난제가 과거 사라수왕여래娑羅樹王如來로서 중생들을 위해 다시 강림하셨음을 무리들에게 설파하고, 승가난제에게 법안을 부촉하는 게송을 읊기를, “법에서 실제로는 증득함이 없느니라. 취取하지도 못하지만 떠나지도 못하느니. 법이란 있고 없는 형상이 아닐지니, 안이나 밖에서도 어떤 일이 일어나랴? 於法實無證 不取亦不離 法非有無相 內外云何起” 하였다. 존자가 전법을 마치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니, 사부대중이 거기에 탑을 세웠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nbsp; 금수를 맛보시고 상류에 성자 찾아</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여래如來의 원력수생願力受生 선연善緣을 보이시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불조佛祖의 법맥法脈 펼치신 본보기의 스승님! </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nbsp; 라후라다 존자는 석가세존의 근본법인 무아無我를 체현하여 대중들을 깨우치며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p><p class="바탕글">인연 따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교화를 하셨고, 나아가 여래의 화현인 인물을 찾아 제자로 삼아 법을 전하셨지요. </p><p class="바탕글">그 제자인 승가난제로부터 자신과 더불어 스승인 가나제바 존자까지 그 법맥과 가풍의 품격을 존경받을 만큼 여법한 위의를 갖추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석가세존 재세 당시에 그 가르침을 실천한 마승비구의 품행을 보고 사리불 같은 인물들도 감동하여 발심 출가하였다는 일화처럼, 제자의 행동거지로부터 스승의 인격과 자질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p><p class="바탕글">오늘날의 불제자를 자처하고 그 사명을 자임하는 인사들의 살림살이와 처신을 살펴보면, 불교의 현실 상황 전개와 미래의 가능성을 전망하고 추측할 수 있을 줄 압니다. </p><p class="바탕글">주목 받는 개인의 수행과 삶은, 자신은 물론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큼을 유념하고, 항상 올바르게 불조의 가르침을 지키며 실천하여 그 가풍을 잘 가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br>]]></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12 Aug 2018 23:30:3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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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가나제바</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83</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십오조第十五祖 가나제바迦那提婆 Kanadev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가나제바존자는 용수조사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뒤에 비라국에 갔는데, 그곳의 범마정덕梵摩淨德이라는 장자가 살고 있었다. 그의 집 후원에 있는 나무에 신비한 맛좋은 버섯이 자라나는데, 장자와 그의 둘째 아들만 볼 수 있고 다른 친족은 볼 수 없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났다. 존자가 그 인연을 알고 장자의 집에 가니 장자가 그 버섯에 대한 까닭을 물었다. 존자가 “그대들은 전생에 어떤 비구를 공양하였는데, 그 비구는 도안이 밝지 않고도 헛되이 시주를 받았기로 나무의 버섯이 되어 갚는 것인데, 오직 그대와 둘째아들만이 정성껏 공양하였기로 그 대가를 누릴 수 있을 뿐, 다른 이들은 누리지 못한다.” 고 알려 주었다. 장자는 “제자는 노쇠하여 스승을 섬기지 못하겠으니, 둘째 아들을 드려 스승을 따라 출가하기를 바랍니다.” 라고 청하므로, 존자는 “옛날에 여래께서 이 아들에게, 두 번째 오백년에 위대한 교주敎主가 되리라고 수기하셨는데, 지금 그 인연이 부합되오.” 하며, 그의 머리를 깎고 시중을 들게 하였다. 나중에 많은 외도들을 조복 받고 교화한 뒤에,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상수제자인 라후라다에게 법을 부촉하였다. “본래부터 법을 전한 사람 사람 대하고서, 그들 위해 해탈하는 이치들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법에서 증득함이 없느니라. 이는 본래 끝도 없고 시작 또한 없음이라. 本對傳法人 爲說解脫理 於法實無證 無終亦無始” 법을 전한 뒤에 조사는 분신삼매에 들어 여덟 가지 광명을 놓아 열반에 드니, 제자들이 탑을 세워 공양하였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위없는 지혜로서 외도들 항복받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대승법 널리 펴서 여래수기 이루셨네.</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시은이 막중함 설해 수행자를 깨운 분.</b></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font face="궁서" size="4"><b>&nbsp;</b></font><!--[endif]--> 용수조사의 많은 제자들 가운데 정법안장을 부촉 받은 가나제바존자는, 출가 수도자가 정진을 잘 하지 않아서 도안道眼을 이루지도 못한 주제에 시주물건을 받고는 제대로 회향하지 못하고 죽으면, 사후에 몸으로라도 먹혀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함을 깨우침으로서, 수도자들에게 수행 정진에 분발할 것과 아울러 시은의 중요성 및 청빈한 생활을 하도록 경책하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p><p class="바탕글">나아가 외도들의 불교확산 방해에 대응하여 지혜와 방편으로서 합리적으로 대처함으로서 그들을 항복 받고 귀의시키는 모범을 보여 후대의 사표가 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유념하고 되새겨 보아야 할 가르침이며 살림살이임이 분명하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ue, 07 Aug 2018 23:48:1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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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용수</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80</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십사조第十四祖 용수龍樹 Nagarjun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용수는 용승龍勝이라고도 불리며, 가비마라 조사로부터 법을 받은 뒤에 남인도로 가서 교화하였다. </p><p class="바탕글">그 지역사람들은 복업福業만 믿고 있다가 용수존자의 대승묘법을 듣고는 이해를 못하고 이의를 제기했다.</p><p class="바탕글">&nbsp;“사람에게 복업이 세간의 제일인데, 헛되이 불성佛性을 믿으라고 말하지만 누가 그것을 볼 수 있겠는가?” 존자가, “너희들이 불성을 보고자 하면 먼저 아만부터 없애라.” 하니, 그들이 “불성은 큰가, 작은가?” 존자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으며, 복도 없고 과보도 없으며, 죽지도 않고 나지도 않는다.‘ 존자가 법좌에서 보름달 같은 자재한 모습을 보이니, 모든 대중이 오직 법문 소리만 들을 뿐 그 모습은 보지 못하고 있는데, 가나제바라는 장자의 아들이 대중에게, “이런 모습을 알겠는가?” 말하니, 대중이 “눈으로도 보이지 않거늘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답하므로, 가나제바가 “이것은 존자께서 불성의 본체와 형상을 나타내셔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이다. </p><p class="바탕글">어떻게 그런 줄을 아는가? 대체로 무상삼매無相三昧는 형체가 보름달 같으니, 불성의 뜻이 탁 트여서 비고 밝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니, 보름달 같은 형상이 숨겨지고, 존자가 다시 본래의 모습을 들어내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읊었다.</p><p class="바탕글">&nbsp;“몸으로는 둥근 달과 같은 모습 나타내니, 이는 모든 부처님의 본체 모습 표현이라. 비록 법을 설하지만 그 형상은 없느니라. 이를 통해 빛과 소리 아닌 줄을 알지니라. 身現圓月相 以表諸佛體 說法無其形 用辨非聲色.”</p><p class="바탕글">&nbsp;그 설법을 듣던 무리들이 깨닫고는 모두 출가하여 해탈하기를 원하니 존자가 곧 삭발시켜서 구족계를 주었다. </p><p class="바탕글">본래 그 지역에 있던 5천여 외도들을 모두 교화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고, &lt;대지도론大智度論&gt;, &lt;중론中論&gt;, &lt;십이문론十二門論&gt; 등을 지어서 후세에 전하였다. </p><p class="바탕글">나중에 가나제바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숨은 것과 들어난 법 밝혀주기 위하여서, 바야흐로 해탈하는 이치 모두 설하노라. 이법에서 그 마음을 증득하지 아니하면, 성내거나 기뻐할 바 아무 것도 없느니라. 爲明隱顯法 方說解脫法 於法心不證 無瞋亦無喜.” </p><p class="바탕글">조사는 법을 부촉하고 월륜삼매月輪三昧에 들어 신통변화를 보인 뒤에 본래의 법좌에서 열반에 들었고, 가나제바가 사부대중과 함께 보배로운 탑을 세워다.</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nbsp; 용 같은 인물들이 깃드는 그늘 되고,</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복업의 중생들을 불성으로 깨우쳐서,</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달 같이 밝고 둥글게 보이셨네, 빈 성품.</font></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바탕글">&nbsp;&nbsp; 용수존자는 보살로도 불리며, 대승보살의 화신처럼 활약한 대승불교의 대성자로 통한다. </p><p class="바탕글">&nbsp;복을 짓는 일에만 집중하고 수행하여 깨달으려 하지 않는 중생들에게 유위법의 한계를 깨트리고 공空사상과 무위법의 무한한 지혜 및 해탈 자재를 설하며 초월 자유의 세계를 열어 보였다.</p><p class="바탕글">&nbsp;전통 대승교학으로 인도에서는 중관中觀 학파의 비조로서 유식唯識 학파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철학체계를 세웠다고 알려져 왔고, 중국에서도 화엄종華嚴宗이나 천태종天台宗 및 삼론종三論宗 등 대승불교의 여러 종파에서도 조사로 존숭하는 위인으로서, 중도中道와 공空 사상을 강조하고 선양한 이른바, 팔종조사八宗祖師로서 팔방미인八方美人 즉, 만능의 성자라고 할 수 있다. </p><p class="바탕글">용수의 존재는 일반사회에서 불교 철학과 논리학 등 학계에서 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선종의 조사로서의 위상은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고 본다. </p><p class="바탕글">아난존자가 교학계 뿐만 선종조사로서의 위상을 보임과 비견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p><p class="바탕글">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nbsp;<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05 Aug 2018 00:25:0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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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가비마라</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79</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십삼조第十三祖 가비마라迦毘摩羅 Kapimala</p><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전하기를, 가비마라가 처음에는 외도外道로서 온갖 외도의 이론을 통달하여 3천 여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다가, 마명존자에게 제도되었고, 마침내 법을 이어받았다. </p><p class="바탕글">&nbsp;제자들과 서인도롤 갔는데 그곳에서 운자재雲自在라는 태자가 존자의 명성을 흠모하고 궁중으로 청하여 공양하려 하였다. </p><p class="바탕글">그러나 존자는, “여래의 가르침에 사문은 국왕, 대신, 권세 있는 집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니, 태자가 “지금 저의 나라 북쪽에 큰 산이 있는데, 산 속에 석굴이 하나 있습니다. 스님께서 그곳을 선적禪寂의 장소로 삼을 수 없겠습니까?” 요청하여 존자가 승낙하고 그곳으로 갔다.</p><p class="바탕글">&nbsp;가는 도중에 커다란 구렁이가 존자를 감았는데, 존자가 삼귀의三歸依를 일러주자 곧 떠나갔다. </p><p class="바탕글">존자가 석굴에 이르렀을 때, 어떤 노인이 소복素服을 입고 나와 합장하고 문안하자 존자가 “그대는 어디에 사는가?” 물으니, 노인이 “저는 옛적에 비구였는데 고요함寂靜을 좋아하여, 처음 배우는 비구가 자주 찾아와 물었는데도 대답하기 귀찮아서 성내고 원망하는 생각을 내었더니, 목숨이 다한 뒤에 구렁이가 되어 이굴 속에서 산지 천년입니다.</p><p class="바탕글">&nbsp;이제 존자를 만나 계법戒法을 듣게 되었으므로 사례하러 왔습니다.” “이 산에 또 어떤 사람이 사는가?” “북쪽으로 10리를 가면 큰 나무가 있어 5백 마리의 큰 용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데 그 나무왕의 이름은 용수龍樹라고 하며, 항상 법을 설하고 있어 저도 법문을 들었습니다.” 존자가 그곳으로 가니 용수가 맞으며, “깊은 산은 외롭고 적적하여 용이나 뱀이 사는 곳인데, 대덕의 지극히 높으신 몸으로 어찌 왕림하셨습니까?” 물으니, 존자가 “나는 지극히 높은 이가 아니오, 현자를 보러 왔을 뿐이오.” 대답했다. 용수가 “이 스님은 결정된 성품을 얻어서 도의 눈이 밝아졌을까? 큰 성인의 진승眞乘을 이어 받았을까?” 마음속으로 생각하니, 존자가 “그대가 마음 속으로 말을 한다 해도 나는 이미 그 생각을 알고 있소. 오로지 출가할 결심이나 하지, 어찌 내가 성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는가?” 하니, 용수가 뉘우치며 사과하였으므로, 존자는 곧 그를 출가시켰고 5백 용들에게도 구족계를 주었다고 한다. 조사가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숨기지도 아니하고 드러나지 않는 법은 진정으로 실상 경계 들어내어 설명하니, 이 숨음과 드러남의 실제법을 깨달으면 어리석지 않으면서 또한 지혜 아니니라. 非隱非顯法 說是眞實際 悟此隱顯法 非愚亦非智” 그 뒤에 신통변화를 보이고 삼매의 불로 몸을 태우니, 용수가 오색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모셨다.</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endif]-->&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대장부 사문으로 권력자를 멀리하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깊은 산 용의무리 제도해 전법하며,</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 size="4"><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자재한 대승의 물결 거침없이 펼친 분!</b></font></p><p class="바탕글">&nbsp; &nbsp; 불법을 만나기 전에 외도의 수장으로서 사회적인 존중을 받다가, 마명대사를 만나 깨쳐서 개종하여 대승법을 널리 펼치면서, 세속의 권력자들에게도 의연하고 당당하게 사문의 품위를 지키고, 용수와 같은 큰 인물을 제도하시고 법을 전한 가비마라 조사는 오늘날의 사회상황에 큰 시사를 주고 있다. </p><p class="바탕글">세속 권력에 도움을 받으려 애쓰는 이들이나 비불교인들을 백안시하는 불교인들은 조사의 모범을 참고하여, 세상의 지도자들과 타종교인들을 어떻게 제도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연구하여, 불자로서 이 세상에 지혜와 자비심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는지 시사를 얻기 바란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hu, 02 Aug 2018 05:11:5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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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명</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77</link>
<description><![CDATA[&nbsp;제십이조第十二祖 마명馬鳴 Asvaghosa<p class="바탕글">&nbsp;&nbsp; &lt;전등록&gt;에, 마명은 전생에 비사리국 왕이었는데, 그 나라에 말처럼 생긴 사람 하나가 벌거벗고 있음을 보고는 신통력으로 누에가 되어 그에게 옷을 입게 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나중에 다시 중인도에 태어났는데 말 같은 사람이 감응하여 슬프게 울었으므로 마명馬鳴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또한 공승功勝이라고도 부르는데, 온갖 공덕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전한다.</p><p class="바탕글">&nbsp;부나야사 조사로부터 법을 전해 받고 널리 전법 교화를 하던 가운데에 화씨성에서 설법하는데, 가비마라 라는 악마가 변신하여 와서 도청하려 함을 보고 그를 신통으로 조복 받아서 그의 권속 3천명과 함께 출가시켜서 구족계를 주고 제도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마침내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여래의 정법안장을 전했다.</p><p class="바탕글">&nbsp;“드러남과 숨는 것이 곧 본래의 법이니라. 어두움과 밝음 또한 원래부터 둘 아니다. 그대에게 깨달은 법 이제 부촉 하지마는 취할 것도 아니면서 여일 것도 아니니라. 隱顯卽本法 明暗元不二 今付悟了法 非取亦非離” 법을 전하고는 용분신삼매龍奮迅三昧에 들어서 태양의 모습처럼 공중에 솟구쳤다가 열반에 들었다.</p><p class="바탕글">&nbsp;&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b>&nbsp; &nbsp; &nbsp;&nbsp; <font face="궁서" size="4">가신 뒤 육백년에 외도를 조복 받고</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대승법 펼치리란 부처님 수기 대로</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뛰어난 공덕 이루며 말도 울린 조사여!</font></b></p><p class="바탕글">&nbsp;&nbsp; 마명존자는 대승불교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lt;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gt;의 저자로도 알려지며 교학게敎學界에서도 으뜸으로 삼는 조사이다.</p><p class="바탕글">&nbsp;불멸후 600여년이 지난 뒤의 불교 상황은 사회적 혼돈과 외도들의 도전 등으로 시련이 많은 줄 짐작되며, 그 중요한 시기에 외도들을 설복하고 대승 정법을 선양하여 불교를 발전시킨 마명보살 또는 공승조사의 위대한 업적은 여래의 예언과 수기의 성취로 표현되며,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줄 안다.<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ue, 24 Jul 2018 12:02:2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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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부나야사 Punayasa</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75</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 속가의 형제 일곱명 가운데 막내로서 가장 어리지만 마음이 밝고 두루 통달하여 구하는 바가 없었다고 전한다.</p><p class="바탕글">&nbsp;협존자로부터 법을 받은 뒤에 널리 여러 곳을 다니면서 교화 하다가 마명 장자를 만났는데, 그가 질문하였다. </p><p class="바탕글">“저는 부처를 알고 싶은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조사가 대답하기를, “그대가 부처를 알고자 하는데 알지 못하는 바로 그 것이니라.” “부처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그것인 줄 알겠습니까?” “그대가 알지 못한다면 어찌 아닌 줄을 알겠는가?” “이는 톱의 이치鋸義 입니다.” “그것은 나무의 이치니라.”</p><p class="바탕글">&nbsp;존자가 반대로 물었다, </p><p class="바탕글">“톱의 이치란 무엇인가?” “스승과 함께 나왔습니다.” 마명이 다시 묻기를, “나무의 이치란 무엇입니까?” “네가 나에게 쪼개진 것이니라.” 마명이 조사의 깨침을 듣고 기뻐하며 출가를 결심하고 부나야사의 제자가 되어 법을 이었다.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에, 부나야사존자가 대중에게, 여래께서 수기하시기를 “내가 열반에 들고 육백년 뒤에 마명이라는 어진이가 나타나 외도를 굴복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을 제도하며 내가 전한 교화를 계승하리라”하셨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하였다고 한다.</p><p class="바탕글">&nbsp;“깨달음과 어리석음 나타남과 숨음 같네, 어두움과 밝음 서로 헤어지지 않느니라. 들어남과 숨음 법을 이제 그대 부촉하니, 이는 하나 아니면서 또한 둘도 아니니라.</p><p class="바탕글">&nbsp;迷悟如隱顯 明暗不相離 今 付隱顯法 非一亦非二” </p><p class="바탕글">조사가 신통변화를 보인 뒤에 원적에 드니 대중이 보배탑을 세워 전신을 봉안했다.</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오고 감 머물음에 걸림 없는 자유 마음</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참 스승 뵙고 나서 도 이뤄 펼치시며</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바른 법 널리 전하고 등신불이 되셨네.</font></b></p><p class="바탕글">&nbsp; 협존자와 부나야사존자 사이의 문답과 부나야사존자와 마명존자 사이의 문답은 근래 수행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바, 간화선의 화두이며 선문답의 좋은 예로 볼 수 있습니다. </p><p class="바탕글">협존자와 같은 위대한 조사로부터 석존에서 비롯되어 전해진 정법안장의 법을 전해 받고, 마명과 같은 대승불교의 거장에게 그 법을 전해줌으로서 부나야사 존자는 그 시대적 역할을 완성하고, 제자들과 사부대중에 의하여 전신이 사리처럼 보배탑에 봉안되어 후세에 기려지는 조사가 되었다. </p><p class="바탕글">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할 만큼, 스승에게는 훌륭한 제자, 제자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되어 사제지간의 관계와 역할을 원만히 하여 후대에 전형적인 모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nbsp;</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endif]--><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hu, 22 Mar 2018 02:11:2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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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협존자</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71</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협존자脇尊者 Parsva</p><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 복타밀다의 법을 받고 널리 많은 중생을 교화하다가, 보신寶身 장자의 아들 부나야사를 만났는데, “제가 지금 출가하기를 원하는데 제도하여 주십시오,” 간청하므로 곧 출가시켜 구족계를 주니, 이내 과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에서는 존자의 아버지가, 등에 밝은 구슬이 놓인 보배좌석을 진 코끼리가 방에 들어오며 광채를 뿜는 태몽을 꾸고나서, 존자가 탄생하였으며, 복타밀다 조사를 만나 출가하여 시중을 들면서 잠을 잔적이 없어서, 협존자라고 불렸다고 한다. </p><p class="바탕글">부나야사를 만나서, “어디서 왔느냐?” 하니, “제 마음은 가지 않습니다.” “어디에 사는가?” “제 마음은 머물지 않습니다.” </p><p class="바탕글">등등의 문답을 한 뒤에 제자를 삼아 구족계를 주고,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하였다고 전한다.</p><p class="바탕글">&nbsp;“참 몸은 자연스레 스스로가 진실하고, 진실을 말미암아 이치 있음 설하느니, 진실한 법 진실하게 깨달아서 얻게 되면, 오고감도 없거니와 머뭄 또한 없느니라.</p><p class="바탕글">&nbsp;眞體自然眞 因眞說有理 領得眞實法 無行亦無止” </p><p class="바탕글">조사가 법을 부촉한 뒤에 즉시 신통변화를 보이고, 열반에 들어 삼매의 불로 스스로 태우고 나니, 사부대중이 여러 곳에 사리를 봉안하고 공양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집 떠나 스승 섬겨 도 닦는 살림살이</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잠시도 눕지 않고 평생을 깨어 살아,</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수행의 본이 되신 분, 그 이름은 협존자!</font></b></p><p class="바탕글">  수행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살아가려면,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식사와 수면을 취해야 함을 안다. </p><p class="바탕글">옛날부터 수도자에게 수행에 장애가 되는 것을 수마睡魔 즉, 잠의 마군이라 하며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p><p class="바탕글">수행자의 살림살이에서 잠을 자는 시간은 일반인들보다 적은 것이 상식이지만, 전혀 자지 않고 정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p><p class="바탕글">물론 선원에서 ‘납팔정진 臘八精進 (석존을 본받아 성도절인 음력 섣달 초여드레를 앞두고 초하루부터 특별히 정진함을 가리킴)’ 등, 특정한 기간에 이른바 “용맹정진”을 하면서 잠을 자지 않고 참선을 하는 경우가 있어도 대부분 일주일 정도이며 그 이상 지속하기는 실제로 어려움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인정할 줄 안다. </p><p class="바탕글">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나 한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데 수년 내지 수십 년을 잠자지 않고 정진하기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p><p class="바탕글">협존자에 대한 그림을 보면, 그 분은 나뭇가지를 의지하고 서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앉거나 누우면 잠이 오니까 평생 서서 지낸 것을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p><p class="바탕글">어쩔 수 없이 잠시 잠을 자고, 나머지 시간은 집중하여 정진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전혀 잠을 자지 않으면서 수행하였다는 이야기만으로도, 그 원력과 정성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연상케 하는 바, 협존자는 수행자에게 영원한 정진의 모범이며 공부인의 사표로 기억될 것이다.</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endif]--><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18 Mar 2018 10:06:0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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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복타밀다</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70</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복타밀다伏馱密多 Buddhamitra</p><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 복타밀다가 불타난제의 법을 받아 널리 교화 하던 차제에, 향개香蓋라는 한 장자의 집에 이르니, 그에게는 난생難生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조사에게 출가하기를 원했다. </p><p class="바탕글">조사가 그를 받아 들이니, 이후 난생비구는 부지런히 수행하느라 옆구리를 땅에 대는 일이 없었으니 즉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하였다고 하여 협脇 존자로 불리게 되었다.</p><p class="바탕글">&nbsp;&lt;전등록&gt;에는 복타밀다 조사가 난생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하였다고 한다.</p><p class="바탕글">&nbsp;“참 이치는 본래부터 이름조차 없었으나, 이름을 말미암아 참 이치가 들어나네. 참되고 실다운 법 받아서 얻고 나면, 이는 참도 아니지만 거짓 또한 아니니라. </p><p class="바탕글">眞理本無名 因名顯眞理 受得眞實法 非眞亦非僞” </p><p class="바탕글">조사가 법을 부촉하고 나서 즉시 멸진삼매에 들어 입적하니, 대중이 다비하여 그 사리를 모아 나란타사에 탑을 세워 봉안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b><font face="궁서" size="4"> 쉰 해를 말도 않고 걷지도 않으면서,</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스승을 기다리다 만난 즉시 따라나서,</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출가와 사제의 인연 귀한 줄을 보인 분!</font></b></p><p class="바탕글">   태어나서 50년 동안을 일어서 걷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다가 불타난제 조사를 뵈면서 절을 하며 인사하고 질문하는 등등, 복타밀다 존자의 일생에 대한 소개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희귀한 이야기이지만, 사실여부를 논란하기보다 그 이야기가 전하고자하는 뜻을 살펴보아야 한다. </p><p class="바탕글">부모와의 귀중한 인연을 저버리고 떠나기 어려운 인정과 수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하는 줄 안다. </p><p class="바탕글">세속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족 및 친척 사이의 관계에 촌수를 부여하는데, 부모와 형제도 2촌이요, 부모의 형제 및 친형제의 자녀와는 3촌, 부모형제의 자녀는 4촌으로 부르고 있는데, 가장 가까운 촌수인 제1촌은 누구인가?</p><p class="바탕글">&nbsp;불교가 가르치고 보이는 길도 석존의 길이라면, 자기 스스로의 길은 어떤 길인가? </p><p class="바탕글">그 점에 주목하여, 자기 자신의 본성을 돌아보며 자기 스스로의 갈 길을 찾아 가는 주체적 성찰과 노력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p><p class="바탕글">&nbsp;그러한 근본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차제에 불타난제 같은 스승을 만나서 그 의문을 풀고, 모든 것이 자기 마음에 달렸다는 스승의 깨우침을 따라 출가 수행하게 됨을 보이는 일화는, 스승과 제자 및 수행 자체에 대한 자질과 관계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바, 참으로 고귀하고 향기로운 것으로 평가된다. </p><p class="바탕글">수행 불자들에게 큰 감동과 많은 시사를 주는 대목으로 유념해야 할 것이다.</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endif]--><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18 Mar 2018 10:02:1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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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불타난제</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69</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불타난제佛陀難提 Buddhanadi</p><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 태어날 때부터 정수리에 구슬 같은 것이 있어 찬란한 빛을 보였다고 전한다. </p><p class="바탕글">세상에서 널리 알려진 학자로서, 마흔살이 되어서야 바수밀 존자를 만나 세속을 초월한 뛰어난 법을 듣고 출가한 뒤에, 도를 이루어 스승의 법을 이어받고는 널리 다니면서 교화를 하였는데, 복타밀다가 나타나 묻기를 “부모도 나의 친한 이가 아니거니, 누가 나의 가장 친한 이인가? 모든 부처님도 나의 도가 아니거니 누가 나의 가장 옳은 도인가?” 함에, </p><p class="바탕글">불타난제 존자가 답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그대의 말이 마음과 친하면 부모와 견줄 바가 아니오, 그대의 행이 도와 합하면 모든 부처님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밖으로 형상있는 부처를 구하면, 법과는 비슷하지도 않거니와, 그대의 근본 마음을 안다면 합함도 아니요 여임도 아니다.” 이에 복타밀다가 감복하여 오체투지로 예를 올리니, 불타난제 존자가 출가시켜 구족계를 주고 제자를 삼았다.</p><p class="바탕글">&nbsp;&lt;전등록&gt;에는 복타밀다가 태어나서 불타난제를 만날 때까지 50년 동안 아무 말도 않하고 일어나 걷지도 않았다가 불타난제 존자를 만나서야 질문하고자 처음 말하고 예배하고자 일어났다고 한다. </p><p class="바탕글">복타밀다는 과거생에 부처님을 만난 선근이 있었지만 부모의 애정 때문에 출가를 못하고 머뭇거렸는데, 불타난제를 만나며 비로서 출가하고 마침내 수행의 뜻을 이루었다고 한다. </p><p class="바탕글">불타난제 조사가 복타밀다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허공은 본래부터 안과 밖이 없느니라, 마음과 법도 또한 이와 같은 이치이니, 만약에 허공 진실 깨달아서 알고 나면, 이것이 곧 진여 이치 요달함과 같다하리. </p><p class="바탕글">虛空無內外 心法亦如此 若了虛空故 是達眞如理” </p><p class="바탕글">불타난제 조사가 법을 부촉하고 나서 고요하게 열반에 드니, 대중이 보탑을 세워 전신全身을 봉안하였다. </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b><font face="궁서" size="4">정수리 구슬 빛이 찬란하게 태어나고,</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말솜씨 뛰어나서 여기저기 다니면서,</font></b></p><p class="바탕글"><b><font face="궁서" size="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불법을 널리 펼치고 팔대 조사 되었네.</font></b></p><p class="바탕글">  불타난제 조사는, 부처님 상호중의 하나인 육계정상처럼 정수리가 뛰어나게 생겼고 빛을 발하였다고 하니 그 용모가 비범하게 훌륭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p><p class="바탕글">아울러, 바수밀 조사를 만나기 전까지 마흔 살이 되도록 당시 사회의 대학자로 평가되는 바로 박학다식하고 명철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p><p class="바탕글">그러나 세상의 지식과 명예의 한계를 느끼고 출가 수행하여 출세간의 조사가 되었으며, 복타밀다 같은 희귀한 인물을 계발하여 조사의 도를 전하였다. </p><p class="바탕글">보통 나이 사십에 출가하면 늦은 편에 속하지만, 그런 세속의 나이에 관계 없이 사회적 지위 및 명예를 떨치고 출가하여 대도를 이루고는 널리 교화하고 전법하였음은 후세에 훌륭한 귀감이 되어 왔음이 분명하다. </p><p class="바탕글">세상의 학자들도 참고하고 초월의 계기를 가질 수 있기 바란다.&nbsp;</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endif]--><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18 Mar 2018 09:57:5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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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바수밀</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66</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      제칠조第七祖 바수밀婆須密 Vasumitra</p><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 전한다. </p><p class="바탕글">바수밀은 항상 손에 술병을 들고 이리저리 마을을 다니면서 중얼거리거나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게 여겼다. </p><p class="바탕글">그러다가 미차가 존자를 만나 출가하였고 도를 이루어 널리 교화를 행하였다. </p><p class="바탕글">가마라국에 이르러 불사를 펴는데, 큰 학자로 알려진 불타난제가 나서서 물었다. </p><p class="바탕글">“진리를 토론할 줄 아십니까?” 바수밀 존자가 대답했다, “토론한다면 진리가 아니오, 진리라면 토론할 수 없다. 만일 토론한다면 끝내 진리를 토론하는 것이 아니니라.” </p><p class="바탕글">불타난제가 조사의 이 말을 듣고 마음 깊이 공경하여 승복하여 출가하기를 원하니, 조사가 허락하여 계를 주어 제도하였다.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에는 바수밀 존자가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불타난제에게 법을 전하였다고 한다.</p><p class="바탕글">&nbsp;“마음은 허공 같고 허공법 보이도다. 허공을 증득할 때 옳고 그른 법 없느니. 心同虛空界 示等虛空法 證得虛空時 無是無非法” 그 뒤에 곧 자심삼매慈心三昧에 들었는데, 천신들이 모여 와서 절을 하고 불법을 청하므로, “내가 얻은 법은 유有가 아닌 까닭에 만약 부처의 경지를 안다면, 그것은 유有와 무無를 여의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설법하고, 다시 삼매에 들어 입적하였다. </p><p class="바탕글">불타난제가 그 자리에 칠보탑을 세우고 전신全身을 봉안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하고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술 그릇 의지하여 덧없이 지내다가,</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도인 스승 만나서는 맑은 계를 받아 지녀,</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세상의 밝은 빛으로 큰 모범이 되었네.</b></font></p><p class="바탕글">&nbsp; 바수밀이 전생의 선근이 있었으나 합당한 인연을 만나지 못해 헤매어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미차가 도인 스승을 만나서 구제되고 도를 이루어 법을 이으니, 그 사연이 아름답다. </p><p class="바탕글">아울러 큰 학자 불타난제를 만나서는 진리에 대한 토론을 제안 받고, 진리는 언어로 토론할 수 없는 것임을 깨우쳐 제도하고 법을 전함이 향기롭다. </p><p class="바탕글">도인이라야 법기法器를 알아보고, 남들이 알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p><p class="바탕글">&nbsp;도와 진리는 언어문자로 논의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알음알이 이전의 경지에 도달하여야 체득할 수 있음에 유념하고 수행에 정진하여야 이룰 수 있음을 명심할 것이다.</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Wed, 07 Feb 2018 09:55:2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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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미차가</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65</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제육조第六祖 미차가彌遮迦 Micchaka</p><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서 전한다.</p><p class="바탕글">&nbsp;제다가의 법을 전해 받은 미차가는 여러곳을 다니며 교화를 펼쳤는데, 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수밀이란 이가 있었는데 술그릇을 들고 있었지만 출가할 뜻을 보였다. </p><p class="바탕글">그러자 미차가 존자가 “어서 출가하여 더러운 그릇을 버리고 성스러운 과위를 증득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자, 바수밀이 곧 술그릇을 버리고, 합장배례하며 과거를 스스로 반성하고 깨달아 알게 되었고, “존자께서 큰자비로 인도해 주십시오” 요청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미차가 조사가 곧 출가하게하고 계를 주고 제자를 삼았다.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 에는 미차가 조사가 “마음이 없으므로 얻을 것도 없느니라. 얻음을 말하여도 법이라고 이름 못해. 만약에 마음이란 마음 아님 깨친다면, 비로서 마음법과 마음을 알리로다. </p><p class="바탕글">無心無可得 說得不名法 若了心非心 始解心心法” 이란 게송으로 바수밀에게 법을 전하고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에 들어 몸을 허공에 높이 솟구쳤다가 본래의 자리에 돌아와 스스로 몸을 태웠고, 바수밀이 사리를 거두어 칠보의 함에 담아서 부도浮圖를 세웠다고 전한다.</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하고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font face="궁서"><b>중인도 팔천신선 으뜸인 대장부로,</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숙세의 인연으로 불제자 도인 만나,</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정법에 회향하고는 화광삼매 들었네.</b></font></p><p class="바탕글">&nbsp; 미차가 조사는 훌륭한 인격과 자질로 8천여 선인의 무리에 으뜸으로서 출가하였지만, 그의 많은 제자 가운데 바수밀이라는 술병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질시를 받던 인물을 제도하고 법제자로 만드셨다. </p><p class="바탕글">미차가는 바수밀의 과거생의 선연과 선사들의 예견을 알고 그 법기를 살펴 제도함으로서 그 자신은 물론 세상에 큰 기여를 한 것이다. </p><p class="바탕글">우리는 어떤 인물의 겉모습이나 괴이한 행위로만 부정적으로 속단하고, 단순히 외면하며 무시할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그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 자질과 가능성을 살펴서 합당한 대처를 하여야 한다. </p><p class="바탕글">아마 미차가가 아니면 바수밀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바수밀은 미차가가 아니면 출가 득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p><p class="바탕글">훌륭한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연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례로서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Wed, 07 Feb 2018 09:52:3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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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제다가</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63</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서 전한다. </p><p class="바탕글">제다가의 아버지가 태몽으로, 황금해가 지붕위로 솟아서 큰 광명을 뿜어 어는 보배산을 비추었고 그 산꼭대기에서 샘이 솟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우바국다 존자를 만나 그 사연을 말하였다. </p><p class="바탕글">국다가 “보배산은 나의 몸이요, 광명은 그대의 지혜요, 지붕위로 솟은 것은 출가한다는 것이요, 산꼭대기의 맑은 샘은 위없는 법이니라.”라고 해몽하며 향중香衆이란 이름을 제다가通眞量으로 바꾸어 주었다. </p><p class="바탕글">제다가가 기뻐하며 출가하여 국다 조사의 제자가 되었다. </p><p class="바탕글">도를 이룬 후에 중인도에 가서 8천여 선인들의 무리을 제도하여 출가시키고 그중의 으뜸인 미차가에게 법을 전하였다.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에는, “본래의 법과 마음 온전히 통달하면, 법이랄 것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다. 깨달아 마치고도 그전과 같으니라. 마음도 없거니와 법 또한 없음이라.</p><p class="바탕글">&nbsp;通達了本心 無法無非法 悟了同未悟 無心亦無法”라는 게송으로 미차가에게 법을 전하고는, 몸을 허공에 솟구쳐 화광삼매로서 스스로 다비하였는데, 미차가가 사리들을 거두어 탑을 세워 공양하였다고 전한다.</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하고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보배산 봉우리에 샘처럼 솟아나서,</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진리의 감로수로 세상을 적시었네.</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영원한 붓다의 햇빛 온 누리에 비추고.</b></font></p><p class="바탕글">&nbsp; 제다가의 출가는 모든 출가수행자의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다. </p><p class="바탕글">단순히 현상적인 몸의 출가가 아니라 마음으로 법을 깨닫고 중생과 세상에 법을 펼치려는 진정한 출가정신을 보여준다. </p><p class="바탕글">스승도 그 것을 점검 확인하고 제자로 삼아 깨우치고 법을 전하였다. </p><p class="바탕글">후대 말세에 사이비 출가자들이 본래의 출가정신과 의미를 모르고, 세인들로부터 존경과 공양을 받으며 편히 살려는 속심으로, 수행과 포교 전법에는 의지가 없이, 무책임한 안일과 방탕으로 자신의 불행은 물론, 승가의 존경과 신뢰를 떨어트리는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선사들의 삶을 본받아 반성하고 혁신하여야 할 줄 안다. </p><p class="바탕글">출가자들은 항상 본분을 각성하여 그에 맞는 수행과 전법에 전념하고, 재가자들도 마음은 형편에 맞는 불자로서의 수행에 노력하여, 맑고 밝은 불국정토를 이루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at, 03 Feb 2018 02:39:5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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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우바국다</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61</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서 전하기를, 열일곱살에 출가하여 스무살에 도를 이루고는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교화하다가 마돌라국에 이르니, 대중이 구름같이 모여서 보름동안 설법을 하였는데 하늘에서 때맞추어서 꽃비를 내리고 땅이 솟아올라 법을 들었으며, 모두 해탈을 얻었다. </p><p class="바탕글">우바국다가 한 사람씩 제도할 때마다. 네 치 짜리 산가지籌를 하나씩 돌로 된 방안에 던졌는데, 가로와 세로 및 높이가 열 여섯 자 즉, 약 5입방미터 부피의 석실이 가득하였다고 한다. </p><p class="바탕글">최후에 제도된 이가 제다가提多迦였는데, 출가할 생각이 간절하자 국다 조사가 물었다, </p><p class="바탕글">“마음이 출가하는가? 몸이 출가하는가?” 제다가가 답했다, “제가 출가하러 온 것은 몸이나 마음을 위하여 이익을 얻고자 출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p><p class="바탕글">조사가 물었다, “몸과 마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다시 또 누가 출가하려 하는가?” 제다가가 답했다, 출가한다는 것은 내가 없는 까닭이고, 내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생멸하지 않으므로 항상합니다. 항상하기 때문에 부처님도 항상하고, 마음은 형상이 없으며, 그 몸도 그러합니다.“ </p><p class="바탕글">조사가 말했다, ”그대가 크게 깨닫는 날에는 마음이 활짝 열리리니, 불법 안에서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무리를 제도하리라.“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에는 우바국다 조사가 제다가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하였다 하였으니. “마음은 자연스레 본래부터 마음이라, 본래의 마음에는 법이란 것 없느니라. 법이란 것도 있고 본래 마음 있다 하면, 마음이랄 것 아니고 본래 법도 아니니라.</p><p class="바탕글">&nbsp;心自本來心 本心非有法 有法有本心 非心非本法“ 국다존자가 입적하니, 제다가가 석실안의 산가지를 꺼내어 쌓아 놓고 불을 질러 다비하여,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다.</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하고 첨부한다: </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열일곱 집 떠나서 스물에 도 이루어,</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마왕을 조복 받고 수만인 깨우친 뒤,</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구제한 나뭇가지로 몸을 살라 가시네.</b></font></p><p class="바탕글">&nbsp; 우바국다 조사님의 삶은 수행자의 전형적인 살림살이를 보여 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p><p class="바탕글">일찍 출가하고 용맹정진 하여 도를 이루고는 포교전법으로 여생을 마치는 삶!</p><p class="바탕글">&nbsp;이는 소납이나 모든 출가 수행자들이 모범으로 삼아 그처럼 살아가려고 발원하고 노력해 나가야 할 것으로 압니다. </p><p class="바탕글">종합수행도량인 총림의 방장이나 선원의 조실이 머물고 학인이나 수행자를 제접하는 곳을 주실籌室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바국다 조사의 포교전법 결과를 보인 주실을 기념하려는 것으로 짐작합니다. </p><p class="바탕글">즉, 수행자는 스스로 성실히 도를 이루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회향으로서 전법도생傳法度生하는 것이 지도자의 본분이고 사명임을 보이는 것입니다.</p><p class="바탕글">&nbsp;도반님들도 조속히 도를 이루시고 포교전법하시는 보람 크시기 축원합니다. </p><p class="바탕글">진월_()_   </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Fri, 02 Feb 2018 03:22:3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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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상나화수</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59</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p><p class="바탕글">어머니 태胎 속에서 6년만에 태어나 얼마 안가서 출가하니, 몸에 원래 걸치고 있던 옷이 저절로 9조條 가사로 변했다. </p><p class="바탕글">아난(경희)의 법을 받아 널리 많은 중생을 제도한 큰 등불이었다.</p><p class="바탕글">&nbsp;17살이 된 우바국다를 만나 물었다, “그대는 몇 살인가?” 국다가 대답하기를, “17세입니다” 하니, 조사가 “그대가 17세라 하니 성품이 17세인가?” 되물었다. 국다가 “성품이 17세는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고 조사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마음이 희십니까? 머리기 희십니까?” 조사가 답하기를 “머리카락이 흰 것이지, 마음도 머리도 아니니라.” 이에 국다가 “몸이 제 홀로 17세이지, 성품이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했다. </p><p class="바탕글">그는 조사의 곁에서 시자로서 삼년정도 있다가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성인聖人의 과위果位를 증득하였다.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에는 우바국다에게 다음의 게송과 함께 법을 전하였다고 한다. </p><p class="바탕글">“이는 법도 아니면서 마음 또한 아니어라, 마음도 없지마는 법 또한 없느니라. 심법을 말할 때도 그 법마저 비심법임을. </p><p class="바탕글">非法亦非心 無心亦無法 說是心法時 是法非心法.”</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하고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font face="궁서"><strong>여섯 해 태중 생활 나오자 곧 출가하여,</strong></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strong>&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어둔 세상 빛이 되고 정법을 펼치시며,</strong></font></p><p class="바탕글"><strong><font face="궁서">&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석존의 마음 등불을 이어 받아 전했네</font>.</strong></p><p class="바탕글">&nbsp; 아이가 태중에서 6년을 지내고 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인데, 더 오랜 기간을 태중에서 지냈던 인물로 도교道敎 교조로 존중되는 중국 초나라의 노자老子를 들 수 있다. </p><p class="바탕글">노자의 본명은 이이 李耳 혹은 이담 李聃으로 그가 노자로 불리게 된 데에는, 그가 어머니 태중에서 62년을 지낸 후 출생했고 태어날 때에 이미 백발이 되었다고 전한다.</p><p class="바탕글">&nbsp;아무튼 상나화수는 출생부터 특이하고 총명하며, 선근이 있어서 곧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고 아난존자에게 법을 이어받을만한 큰 법기法器였다. </p><p class="바탕글">수법제자 우바국다와 나눈 대화를 통해, 열일곱살의 젊은이의 의식을 점검하며, 세속적이고 물리적인 나이보다 그를 초월한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나이 즉 인격과 도덕의 나이에 주의하도록 함으로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되새겨 보도록 하는 법담이다.</p><p class="바탕글">&nbsp;“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의 ‘본래 면목’을 찾아보는 것이 화두 참구의 하나이듯이, 이 육신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나고 죽는 현상도 돌아보고, 현재 육체적으로 늙었다고 공부와 수행을 게을리 하거나 포기하려는 이들에게 각성의 계기를 주는 법문이기도 하다. </p><p class="바탕글">아울러 게송으로서 법이니 마음이니, 있느니 없느니 등등, 말과 글의 알음알이로 천착하지 말고, 본성과 실상을 사무쳐 보아서 불조의 의지를 터득하여야 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p><p class="바탕글">명심하고 유념해야 할 것이다.</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Wed, 31 Jan 2018 05:42:5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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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아난</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51</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nbsp; &lt;조답집&gt; 에 다음과 같이 아난에 대하여 전한다. </p><p class="바탕글">백반왕의 아들로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다. </p><p class="바탕글">전생에는 금룡존불金龍尊佛이더니 금생에 여래에게 제도되어 법의 당간을 세우고 6만대중을 교화하였으며, 부처의 해를 높이 달아 미혹한 무리들을 널리 비추고 널리 통달하고 잊지 않아 다문多聞 제일이었다. </p><p class="바탕글">한때 거닐다가 어떤 비구가 부처님의 게송을 잘 못 외우는 것을 듣고 바로 잡아서 다음과 읊었다.</p><p class="바탕글">&nbsp;“만약 사람들이 백년을 살더라도, 붓다가 보인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깨친 뒤 하루의 삶과 견줄 수가 없으리.</p><p class="바탕글">&nbsp;若人生百歲 不會諸佛機 未若生一日 而得決了之.”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에서는, 범어의 아난타는 이곳 말로는 경희慶喜 또는 환희歡喜라 번역하니, 여래께서 성도成道하신 날 밤에 태어났으므로 그런 이름을 지은 것이다.</p><p class="바탕글">&nbsp;박학다식하여 지혜가 막힘이 없으므로 세존께서도 총지摠持에는 제일이라고 칭찬하셨고, 시자侍者로 임명하셨다. </p><p class="바탕글">입적할 때에 상나화수와 말전지가에게 다음과 같이 게송과 함께 법을 전했다.</p><p class="바탕글">&nbsp;“전할 때는 유법 소식 부촉을 한다마는, 당부를 마치고는 무법을 말하느니. 저마다 깨치고 나면 무법 또한 없으리. </p><p class="바탕글">本來付有法 付了言無法 各各須自悟 悟了無無法” </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하고 첨부 한다: </p><p class="바탕글">&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font face="궁서"><b> 기쁘게 태어나서 빼어난 몸매에다,</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세존을 따르면서 가르침 다 외웠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가섭형 법을 이어서 교 법 모두 전했네.</b></font></p><p class="바탕글">&nbsp; 만약 꿈속에서 백년을 살아 보았자 깨어서 하루를 산 것만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할 줄 안다. </p><p class="바탕글">그렇다면, 꿈같이 덧없는 일생을 오래 살려고 애를 태우지 말고, 불교를 배우고 수행하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하루를 살아 보려고 노력함이 실다운 살림살이임을 강조하고 분발하여야 함을 일깨움에 거듭 감사할 뿐이다.</p><p class="바탕글">&nbsp;이 게송을 늘 마음에 새기고 시간을 아끼어서 공부하며 수행하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리라. </p><p class="바탕글">조사들이 법을 전할 때에는 어떤 법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고는, 법을 전해 마쳐서는 어떤 법도 없다는 말씀을 하는데, 그 깊은 의지를 깨닫지 못하고서 단지 말에 집착하면 혼란과 불신이 생기게 된다.</p><p class="바탕글">&nbsp;말을 통해 그 의지를 깨닫고자 함이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이니 이른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착하지 말고 달을 보라’는 격언을 되새기며, 언어와 문자를 초월하여 마음의 의지에 계합하도록, 수행자는 참선 정진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un, 28 Jan 2018 04:13:0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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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하가섭</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50</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p><p class="바탕글">세존께서 살아 계실 때 [당신 곁에]앉으라 하시고 옷을 주시고 대중 앞에서 항상 제일이라 칭찬하셨다.</p><p class="바탕글">&nbsp;[세존이 입적하시자] 그 때에 대가섭이 비구들에게 말했다. “부처님의 다비는 끝났다. 금강 사리는 우리들의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러 왕과 대신과 장자長者와 거사 중에 최상의 복을 구하는 자가 있을 것이므로, 이때에 공양될 것이기 때문이다.</p><p class="바탕글">&nbsp;우리들은 법보法寶를 결집하여 끊이지 않게 함으로써 말세의 큰 광명이 되어 바른 법이 융성하게 이어지게 하자.</p><p class="바탕글">” 왕사성 근처 기사굴산의 빈발라굴에 499명의 훌륭한 도인이 모였지만, 아난은 그때까지 도를 이루지 못해 참석할 수 없다가 분발하여 마침내 도를 이루고 참여하여 500대중이 되었다.</p><p class="바탕글">&nbsp;그때에 가섭이 대중에게 고했다. “이 아난 비구는 많은 것을 듣고 잊지 않아 큰 지혜를 지녔습니다. 항상 부처님을 따라 모셨고, 여래의 청정한 범행을 닦았고, 들은 불법은 그릇의 물을 옮겨 붓듯 남김이 없어 부처님께서 총명하기로 제일이라 하셨으니, 그에게 수다라 정을 결집하라고 청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p><p class="바탕글">대중이 묵묵히 따랐다. 이에 가섭이 아란에게 말했다.</p><p class="바탕글">&nbsp;”그대는 이제 마땅히 법보를 선양하라.“ 이때에 아난이 법좌에 올라 말했다. </p><p class="바탕글">”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어느 성, 어느 곳에서 마무 경을 말씀하셨다. 이에 사람들과 하늘들이 절을 하고 받들어 행하였다.“ 이어서 우바리에게 율장을 결집하라 명했고, 다음은 가전연에게 논장을 결집하도록 명하였다. </p><p class="바탕글">가섭이 원지삼매願智三昧에 들어 결집한 삼장을 관찰하니, 조금도 잘못됨이 없었다.</p><p class="바탕글">&nbsp;이로부터 유포되어 끊이지 않게 되었다.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에는 다음같이 전한다. </p><p class="바탕글">가섭이 아난에게 말했다 ”내 나이가 많아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겠으니, 이제 바른 법을 그대에게 부촉하노라. 그대는 잘 지켜 보호하도록 하라. 그리고 나의 게송을 들어라. “법답게 하는 법의 본래의 참된 법은, 법이랄 것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다. 어찌해 한 법 가운데 법과 비법 있느뇨? 法法本來法 無法無非法 何於一法中 有法有不法” 이 게송을 마친 뒤에 곧 금란가사를 가지고 계족산에 들어 가서 자씨 미륵불께서 하생下生 하시기를 기다리다. </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하고 첨언한다:&nbsp; </p><p class="바탕글">&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font face="궁서"><b>이름도 크고 밝은 대가섭 두타비구, </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석존의 으뜸 제자 만세에 스승일세. </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청빈한 살림살이에 가득 쌓인 참 법보.</b></font></p><p class="바탕글">&nbsp;석존의 위대한 교설과 정법이 오늘에 전하는 데는 마하가섭의 공덕이 누구보다도 크다. </p><p class="바탕글">세존의 모범적 상수제자로서 결집을 통해 삼장 교설이 전승 확산될 수 있게 하였고, 여래의 정법을 아난에게 전해서 이후 금일까지 상속 유통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p><p class="바탕글">아울러 선사가 교학을 무시하거나 강사가 선을 백안시함은 버리고 고쳐야 할 폐단이니, 선종 법맥의 제1조인 가섭도 교설을 존중하였으며, 그를 이은 제2조 아난도 교학의 비조이나 도를 이루고 법맥을 이은 조사임을 간과하면 안 될 줄 안다. </p><p class="바탕글">그러므로 선교불이 禪敎不二 또는 선교일치禪敎一致의 의미를 알고, 교관겸수 敎觀兼修 또는 정혜쌍수定慧雙修로 종통宗通과 설통說通을 원만히 구족하여야 종사宗師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p><p class="바탕글">작금의 선사禪師나 강사講師 내지 법사法師라고 불리는 이들은 가각의 독선적 편견에 대한 각성과 부족한 역량에 대한 분발이 있기를 바란다.&nbsp;</p><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endif]--><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at, 27 Jan 2018 04:56:3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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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석가모니불</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49</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석가모니불</p><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에 싯달타가 태어나며 전한 게송으로 “이는 나의 마지막 몸 다시 나지 않으리라. 나는 이미 해탈하여 아무 걸림 없으므로, 마땅히 뭇생명들을 모두 거듭 건지리. 我生胎分 盡 是最後末身 我已得解脫 當復度衆生” 라고 하였고, </p><p class="바탕글">출가할 때에는 “은혜와 사랑 속에 함께 오래 살더라도, 때가 되면 목숨 다해 헤어지기 마련이네. 덧없음 보는 까닭에 해탈 찾아 나서리. 假便恩愛久共處 時至命盡會別離 見此無常須臾間 是故我今求解脫” 라고 읊었으며,</p><p class="바탕글">&nbsp;성도시에는 “별보고 깨쳤으나 이제는 별 아닐세. 깨달은 뒤로부터 물건에 걸림 없네. 그래도 이를 두고서 정 없다고 못하리. 因星得悟 悟後非星 不隨於物 不是無情” 라고 노래했고,</p><p class="바탕글">&nbsp;대열반에 들 때에는 “본래 법은 무법이요, 없는 법도 법이니라. 내 이제 없는 법을 그대에게 전하지만, 법이라 할만한 법이 일찍부터 있었나 法本法無法 無法法亦法 今付無法時 法法何曾法” 라고 가섭에게 부촉했음을 전한다.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에는 가섭에게 법을 전한 석존이 열반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은 무상게를 읊으셨다고 전한다, </p><p class="바탕글">“모든 행 덧없어라, 이것이 나고 죽음. 이 같은 생멸법이 이미 벌써 사라지니, 고요히 시원한 평온 그지없는 즐거움.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 已 寂滅爲樂” </p><p class="바탕글">&nbsp; 진월이 찬탄하고 첨부한다:</p><p class="바탕글">&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font face="궁서"><b>용맹한 출가 정진 대각을 이루시고,</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뭇 생명 건지시려 한 평생 보낸 스승</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해처럼 지혜 자비로 기르시네, 온 세상.</b></font></p><p class="바탕글">&nbsp; 불자와 수행자들은 늘 석존의 용맹정진하신 삶을 본받으려 애쓰며, 열심히 그 가르침을 공부하고 실천하여 마침내 성불하기를 서원하고 정진하여야 할 줄 안다. </p><p class="바탕글">그러하면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누릴 수 있다. </p><p class="바탕글">사람으로 태어나서 불법을 만나 수행할 수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큰 축복인지 되새겨 보아, 자긍할 것이다.    </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Fri, 26 Jan 2018 03:17:4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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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조당祖堂 전등傳燈 법연法緣 회고 回顧</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48</link>
<description><![CDATA[<p class="바탕글">&nbsp; 성도절成道節을 맞아, </p><p class="바탕글">석존釋尊 Sakyamuni Buddha 의 대각大覺을 기리며, 그 후예後裔 법손法孫들의 법맥法脈과 수행전통을 되돌아 보면서, 앞으로 의미 있는 전법사연 傳法事緣의 나눔을 통해 불자佛子 특히 선수행자禪修行者들에게 교양敎養과 조도助道에 이바지 하고자 한다.</p><p class="바탕글">&nbsp;우선 선종사禪宗史 이해에 필수자료인 &lt;조당집祖堂集&gt;과 스승과 제자 사이의 법연法緣 및 전등傳燈을 소개하며 이른바 공안公案 공부에 중심자료인 &lt;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줄여서 전등록)&gt;을 통하여 석존부터 1500여년간의 법통法統을 살펴본 뒤에 그 뒤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기간은 다른 자료를 통하여 우리의 전통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할 계획이다.</p><p class="바탕글">&nbsp; &lt;조당집&gt;은 한국의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에 생존한 한정閑靜과 균筠 두 스님이 중국 천주泉州 초경사初慶寺에서 952년에 집성集成한 서적으로서, 해인사 고려대장경 보판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p><p class="바탕글">이는 제목의 뜻대로 불조佛祖의 법통法統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으로서, 이 분야에 온전히 보전된 문헌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p><p class="바탕글">&lt;전등록&gt;은 중국 남송南宋의 도원道原 선사가 경덕원년 1004년에 진종황제에게 헌상한 책으로서 불조의 사자상승師資相承 법등法燈의 전래와 수행 공안公案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서는 동국대학교 부설 동국역경원에서 2016-2017년 발행한 책을 기본으로 한다.</p><p class="바탕글">&nbsp;&nbsp; &lt;조당집&gt;과 &lt;전등록&gt;에는 시작을 석존을 포함한 이른바 과거칠불過去七佛부터 소개한다.</p><p class="바탕글">&nbsp;첫번째로 과거 장엄겁莊嚴劫 제998존 비바시 불毘婆尸佛, 두번째 장엄겁 제999존 시기불尸棄佛, 세번째 장엄겁 제1000존 毘舍浮佛, 네번째 현재 현겁賢劫 제1존 구류손불拘留孫佛, 다섯번째 현겁 제2존 구나함모니불俱那含牟尼佛, 여섯번째 현겁 제3존 가섭불迦葉佛, 이어서 현겁 제4존으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열거하며 그 출신배경과 게송을 간단히 싣고 있다.</p><p class="바탕글">&nbsp;석존을 제외한 앞의 부처님들은 초역사적이며 상징적 존재로서 논급을 생략하고, 석존을 시발점으로 삼아 진행한다.&nbsp;&nbsp;&nbsp;</p><p class="바탕글">&nbsp; &nbsp;&nbsp; 두 고전 古典을 찬탄하며:</p><p class="바탕글">&nbsp; &nbsp; &nbsp; &nbsp;&nbsp; <font face="궁서"><b>옛 책을 읽어보니 임의 뜻 고마워라.</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때와 곳 아득한데 빛과 향 사무친다.</b></font></p><p class="바탕글"><font face="궁서"><b>&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 훌륭한 큰 살림살이 본받아서 살리라.&nbsp;</b></font></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hu, 25 Jan 2018 13:34:3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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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석존 성도절을 맞으며</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47</link>
<description><![CDATA[<div>&nbsp; 남방 상좌부 전통에서는 석존의 탄생과 성도 및 열반절을 베삭절(음력 사월보름)에 함께 기립니다. 각각의 년차는 있지만 그 한날에 이루어졌다고 믿고 전해져 옵니다. 하지만, 북방 대승 전통에서는 음력으로 사월 초파일에 탄생, 납월(십이월) 초파일에 성도, 이월 보름에 열반 하셨다고 믿고는 그에 따라 기려왔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음력 섣달 초여드레 즉, 금년 2018년에는 1월24일 성도절을 기념합니다.</div><div>&nbsp; 고성선원에서는 샌프란시스코배이지역에 사시는 수행불자들을 위하여 성도절 전야부터 철야특별정진 기회를 제공하려 하니, 원하시는 분은 연락 주시고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선원에서는 성도절을 즈음하여, 납월 초하루 낮부터 초여드레 아침까지 장좌불와 용맹정진(불침묵언) 을 전통 관행으로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싯달타 태자의 6년여 고행 정진과 참선정진을 기리며, 최후의 용맹정진을 본받고 따라 해보려는 노력을 통해 단기간이나마 나름대로의 수행을 체험해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div><div>&nbsp;&nbsp; 불교의 실질적인 시작인 성도절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들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자축해 마지 않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nbsp; &nbsp; &nbsp;</div>]]></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ue, 23 Jan 2018 08:01:5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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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무술년 담선법회</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46</link>
<description><![CDATA[&nbsp; 금년 담선법회는 매월 첫번째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산호세 수선회 선방 (2175 The Alameda #213, San jose) 에서 시행합니다. 지난해처럼 2시부터 30분정도 좌정 입선하고, 2시30분부터 3시정도까지 선법문을 한 뒤에, 30분정도 문답 시간을 갖으며, 30분정도 좌선하고 마무리하는 순서로 진행하기로 공표하였습니다. 지난 1월6일에 예정대로 진행하였는데, 그때에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GTU) 소속 태평양종교학교( PSR) 영성신학교수 이정철 목사도 참석하여 종교를 초월하여 여러가지 명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음번 법회는 2월3일(토) 오후에 있을 예정이니, 흔연히 자유롭게 동참 바랍니다. &nbsp; &nbsp; &nbs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Tue, 23 Jan 2018 07:32:5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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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담선법회</title>
<link>http://www.go-sung.org/bbs/board.php?bo_table=dq_01&amp;wr_id=45</link>
<description><![CDATA[<p><p style="text-align: left;">이 분야에 오신 분들에게,</p><p style="text-align: left;">관심에 감사드립니다.</p><p style="text-align: left;">그동안 경황이 없)어 챙기지 못한 불찰과 부실에 미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p><p style="text-align: left;">현재 상황으로는,실리콘벨리 산호세 수선회 선방 (2175 The Alameda, San Jose) 에서 지난 9월1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10월부터는 매주 토요일 오후 2-4시 진행해 온 "담선법회 (談禪法會)"를 젠아카데미의 행사로 볼 수 있는데, 이는 12월 중순까지 100일간의 수행공부결사로 이어집니다. 그 이후는 내년의 상황에 맞추어 기획하고 진행할 예정입니다.</p><p style="text-align: left;">위와 같은 사정을 이해하시고, 담선법회에 동참하시기 바라며, 계속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p><p style="text-align: left;">건강히 법히선열(法喜禪悅)을 누리시기 빌며,</p><p style="text-align: left;">진월 합장&nbsp;&nbsp;&nbsp;&nbsp; </p><h2>&nbsp;&nbsp;</h2><h2 style="text-align: left;"><img width="4000" height="3000" style="border: currentColor; border-image: none;" alt="" src="http://go-sung.org/data/cheditor4/1801/b59bb6b8facc30a9afc297218e1129e2_uwmnKJgxtaPk6GeyH3TdzoxjiawltA.JPG"></h2><p style="text-align: left;"><br></p>]]></description>
<dc:creator>dowon</dc:creator>
<dc:date>Sat, 18 Nov 2017 08:16:3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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