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달력에는 음력 섣달 초여드레이며, 한국과 중국 불교인들은 석존의 성도절로 기립니다.
소납은 산위의 판자집 아란야에서 이 아침을 혼자 맞지만, 한국의 전통선원에서는 대중들이 지난 7일간의 용맹정진을 마감하고, 환희로운 휴식을 누릴 줄 압니다.
소납도 선원에서 지내던 젊은 시절의 성도절이 추억됩니다.
특히 1971년 1월 즉, 음력으로는 1970년도 섣달의 용맹정진 끝에 맞은 성도절은 제 일생의 가장 깊은 체험의 기회였습니다.
48년전 대한민국 젊은이로서 국방의 의무 수행을 위해 입대를 두달정도 앞둔 때에, 해인강원 (현 해인승가대학) 학인이었던 소납은, 군복무기간에도 수행자로 계속 정진할 수 있는 저력을 확보하리라 결심하고, 선원의 용맹정진에 단식하며 참여하였었는데, 그 마지막 날 즉, 성도절 아침에 선열당 뜰에서 내리는 흰눈을 맞으며 누렸던 감격의 기쁨은 정말 하늘을 날아 오르는듯,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먹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며, 오직 앉았다 걸으며 화두에 집중하였던 정진이 끝나는 즈음, 이른바 경안輕安을 그렇게 느껴보기도 처음이었지요.
곧바로 퇴설당의 방장실로 가서 방장스님 (당시 종정이셨던 고암 대종사가 겸임중)을 뵙고 소견과 경지를 점검 하여서 인정을 받은 기억은 제 인생의 한 장이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야 비로서 부처님 경전과 조사 어록에서 가르친 말씀들의 참뜻을 터득하고 거짓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부처님과 스승들의 은혜를 뼈저리게 느꼈고, 그 기쁨은 무엇보다 크고 깊었음을 되새겨 봅니다.
물론, 그 힘으로 군복무를 수행처럼 잘 마쳤고, 제대하자마자 곧바로 해인사로 돌아가 졸업을 할 수 있었지요.
이어서, 영축산 극락선원, 조계산 수선사, 비슬산 도성암, 사불산 대승사 등 산중의 제방 전통 선원에서 안거 정진하다가 80년대에 세상과 소통하고 제 체험을 나누고자 대학 캠퍼스로 내려가 선법을 현대적으로 연찬하고 교수하다가 은퇴의 지경에 이르렀네요...
성도절에 흔히 되뇌어보는 한문게송을 우리말 운문으로 풀어 봅니다.
世尊當入雪山中 싯달타 궁을 떠나 눈산 들어서
一坐不動經六年 한자리 안 떠나고 여섯 해 지내
因見明星云悟道 별빛에 도 깨치고 열반 누리니
言詮消息徧三千 그 소식 온누리에 두루 퍼지네
제나름 시조풍으로 읊어 봅니다.
귀한 님 집을 떠나 눈산에 들어가서
한자리 굳게 앉아 여섯 해 지내시다
별보고 깨친 소식이 온 누리에 퍼지네!
지금의 제 소감을 그려 봅니다.
먼산 위 오막 속에 호젓이 홀로 앉아
지내온 이른 해를 고요히 살펴보니
바람에 구름 스치듯 빈 하늘에 오갔네...
모든 생명들이여! 석존의 성도를 기리며, 찬탄하고 기뻐하며 큰 행복을 누리시라!
나무본사 석가모니불! 마하반야바라밀!
고성 아란야에서, 진월 심향을 사르며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