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곳 고성에서 두번째 맞는 음력 섣달 초엿새입니다. 칠십년전 기축년 이날 저의 부모님께서 저를 이세상에 낳아 놓으셨다고 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전주이공 종택과 경주김씨 경복 님의 산고와 양육의 노고에 새삼 감사드리며, <부모은중경>의 뜻을 되새겨 봅니다. 저의 세속 족보로는 제 17대 할아버지가 세종대왕의 넷째 왕자인 임영대군으로서, 저는 세종대왕의 제18대 자손이 됩니다. 세종 할아버님의 한글창제와 "월인천강지곡" 등 불교 인연을 돌이켜 봅니다. 어머님은 경주김씨로서 천손 김알지의 자손으로 볼 수 있고, 하여 불교나라 신라와 유교나라라고 알려진 조선에서 불교를 현창한 부모님들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정신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고 유지 발전해 나가야 할 사명과 책임을 되새겨 봅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제 생일은 4월28일로 호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날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탄생일로서, 저는 어려서부터 그분의 삶과 인격을 존경하고 본받고자 했었습니다. 제 생일에 생각나는 모든 어른들의 유지를 받들어 불교와 민족문화 전승과 발전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해방후의 분위기가 잘 가다듬어지기도 전에 터진 6.25! 젖도 떼기전에 벌어진 이 참극과 1.4후퇴의 피란 속에 저의 첫돐 잔치는 무산되었고, 당시 어려운 시절을 보낸 저희 가족은 그 뒤부터 저의 생일날에는 민족의 환난과 고통을 기억하는 날로 지내왔습니다. "첫돐잔치를 하지못한 경우, 그뒤로는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 풍습"에 따라 저는 어려서부터 생일에도 별다른 행사없이 지내왔지요. 다만 출가전에는, 다섯살 아래의 여동생 생일이 공교롭게도 음력 섣달 초닷새라서 그녀의 생일날 차린 음식으로 저의 생일날 먹거리를 대신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출가이후에는 석존 성도절을 기념하는 이른바 "납팔정진" 즉, 음력 섣달 초하루부터 초여드레 아침까지 용맹정진 (잠자지않고 참선정진)하는 관행속에, 초엿새의 생일날에는 더욱 생사를 초월하려는 마음을 다져왔다고 추억합니다.
소납은 금년 무술년에 세칭 종심(從心)을 맞습니다. 공자님이 당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하신 말씀에, 칠순을 맞으며 "마음대로 하여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從心所欲而不踰矩)"라는 글귀에서 나온 말이지요. 저도 이제 마음대로 하지만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지 살펴야 할때에 온줄 압니다. 시성 두보가 "사람이 이른살을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문 일 (人間七十古來稀)"이라는 시를 지은 뒤부터, 고희로 불리는 이른살은 요즈음 별로 귀하지 않게 되었지만, 단순한 육체적 나이보다 정신문화적으로 원숙하고 품격있는 귀한 삶이 되도록 내적으로 충실하여야 되겠지요.
어제사 우편으로 부쳐진 <미주현대불교>를 받아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기고했던 "고성선원 홍법통신" 파일을 첨부하니, 그 책을 보지 않으시는 분은 읽어보시고 연말연시 제 심경의 일부를 짐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맹정진중이신 분들은 예외로 하고요...
이 몸이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의 은혜와 모든 인연들께 거듭 감사드리며, 이 마음을 이끌어주신 부처님을 비롯한 삼보와 모든 스승님들께 공경을 표합니다. 고성 아란야에서, 두타 진월 심향을 사르며 큰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