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통해 범주스님 (3월23일)과 초우스님 (3월 26일) 이 타계한 소식을 보았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범주스님은 선서화로 유명하고, 초우스님은 총무원장도 지냈고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질 종단 원로였지요. 초우스님은 소납이 50년전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했을 당시 해인총림의 재무직을 맡고 있으셨는데, 매우 합리적이고 자상한 분으로 기억됩니다. 당시에 총림 방장에는 성철 스님, 도사(주지)에는 지월스님, 총무에는 도성스님, 교무에는 보성스님이 살림을, 자운스님과 일타스님이 율주, 지관스님이 강주 등을 맡고, 기라성 같은 용상대덕 들이 모여, 한국 제일의 총림 체계를 갖추고 전국의 중심이며 모범인 수도장 분위기를 보였지요. 제 스승인 고암스님도 종정이시면서도 산내암자인 용탑선원에 계셨었고요. 그 후, 보성스님은 조계총림 방장으로 계시고, 초우스님도 영축총림 부방장으로 방장직을 맡으시려다가 말았지만, 아무튼 훌륭한 분들 곁에서 행자생활과 초기 수행을 했던 시절이 추억 됩니다.
범주스님은 소납이 동국대 경주캠퍼스 선학과 교수로서, 선연구소장으로 있으며 선문화관련 세미나를 할 때에, 선서화 분야에 초청하여 발표를 하게 하였으며, 그 뒤로 개인적인 교분도 나눈 도반의 하나로서, 그분 작품도 몇점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속리산 기슭에 달마선원을 차려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며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선묵일여 禪墨一如"로 수행과 서화를 일치시키려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있겠지요. 그런면에서 '시서화삼절 詩書畵三絶'로 통했던 초의선사의 한 면모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 있다면 그분들의 열결과 다비식에 참석하여 조의를 표하겠지만, 다녀오기 어려운 형편이니 이곳에서나마 추모의 마음으로 몇자 적으며, 한국이나 미국의 지인과 도반들에게 아쉬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정토에 잠시 머무시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다시 좋은 모습과 삶을 보여주시기를 빕니다. 캘리포니아 고성 아란야에서, 진월 두손모음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