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인터넷 뉴스로 무산 오현스님 입적 소식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연세가 가볍지 않으나, 그래도 몇년은 더 탈없이 지낼 것 같이 생각되어 면담을 미루어 왔었고, 이번 한국방문에서 주변사정이 어떤지 알아보려 했는데, 뜻밖에 영결식에나 참석하게 되어 아쉬움이 큽니다.
그분은 소납보다 10여년 이상 연장이지만, 절집안 법맥 문중항렬로는 조카가 되어, 과거에 어쩌다 대중속에서 만날 때에는 그분이 먼저 소납을 "아제" 라고 소개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무산스님의 은법사인 성준스님과 소납은 함께 고암 큰스님의 제자로서 형제지간인 까닭).
"설악산 호랑이"로도 불렸던 그 분은 실제로, 오늘날의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및 만해마을 등을 만드는 산파 역할을 하셨고, 그 가풍을 새로 일으키는데 중심이 되어 왔음을 압니다.
자호를 "설악 雪嶽"으로 하며, "무산 霧山" 즉 안개산으로 법호를 사용함 그 자체가 그 분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을 느낍니다.
안개속에 몸을 숨기는 산처럼 신비함을 간직하고, 시詩에 능하며, 대인관계에 수완이 있었음은, 그분과 인연 있던 이들은 다들 겪어 보았을 줄 압니다.
30년전에 샌프란시스 지역에서 잠시 머물렀던 인연으로 그 지역을 좋아하셨고, 재작년에도 버클리대학 한국학 관련 강좌의 초청으로 노구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가서 문인들과 시낭송을 하기도 했음을 알며, 소납이 버클리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했던 것을 자랑하고 회향하는데 큰 관심과 성원을 보여 주셨음을 추억합니다.
과거에 어쩌다 설악산에 가서 만날 때면 너무나 과분한 대접을 베풀어 주셔서, 미안하고 부담스러워 가기를 삼가했었는데, 이제 떠나시고 나니,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이 한참 갈 것 같습니다.
오늘밤 방콕발 인천행을 타고 내일아침에 서울에 도착하면, 교통사정을 알아보아 다음날 영결식과 다비식에 참석하려 합니다.
조용히 설악 무산 신흥/백담사 조실 원로스님을 추모하며, 정토에 잠시 쉬셨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설악산 문중과 가풍을 더욱 발전시켜 주시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멀리서나마 심향을 사르며, 진월 두손모음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