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선원 홍법통신 古城禪院 弘法通信>
옛날부터 “시절인연을 살펴보라”는 말이 전해 옵니다. 어느덧 한해도 절반이 지나갑니다. 봄을 넉넉하게 보내기도 전에, 여름이 미리 찾아와 벌써 무르익으며, 가을을 보입니다. 그 너머는 겨울이니, 해가 이리도 빨리 바뀌는지, 새삼 놀랍습니다. 우리 살림살이도 그에 따라 비추어 보게 됩니다. 인생의 푸짐한 가을과 겨울을 준비하여 왔는지, 봄에 때에 맞추어 씨 잘 뿌리고, 여름의 더위 속에도 땀 흘리며 부지런히 가꾸어 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 글을 쓰는 이도 인생의 가을을 지내며, 겨울나기를 걱정해야 하는 때를 맞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모든 일을 잘 해 보겠다며 애를 써 왔다고 생각되면서도, ‘더 잘 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삶의 환경을 바꾸며 새로운 살림살이를 해 보자고, 지난해에 캘리포니아 리버모아 산 위에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오막살이도 온전히 꾸려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수행의 길동무들과 탁마정신으로 소식을 나누고 좋은 인연을 지어보자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방편의 서신을 띄어 봅니다.
제대로 된 사람은 자기가 좋다고 말하는 만큼 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불교인도 ‘바람직한 불교’를 말하는 만큼 스스로 그를 살아냄으로서 훌륭한 불교인임을 올바로 보여 줄 수 있을 줄 압니다. 저도 나름대로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며,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불교를 가르쳐 본적이 있습니다. 출가수행자 신분으로서 그럼직하게 살아 보이며 가르치려고 애썼지만, 얼마 만큼 그 뜻을 이루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회의 법도에 따라 정년퇴직을 하고는,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며 남은 세월을 마음먹은대로 살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선지식은 “인생은 한바탕 연극이니, 중노릇 잘해 보라”고 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비구(출가독신수행자)로서 중의 한사람이니, ‘중노릇 잘해봐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선 비구로서 비구의 역할에 맞게 비구답게 살아야 하며, 적어도 재가불자들과 일반인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여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비구는 율장에 그 살림살이가 규정되어 있습니다만, 약 2,500년전 인도의 생활환경에서 제정된 모든 것들을 그대로 다 지켜나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하여 그 제정취지에 따라 오늘날의 샇황에 알맞게 맞추어 나가야 될 줄 압니다.
불교인들 특히 출가수행자들은 교조인 석가무니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할 줄 압니다. 알려진대로, 석존(釋尊)은 왕자로서 왕위와 부귀영화 즉,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선망하고 추구하며 집착하는 것들을 스스로 기꺼이 버리며 출가하시어, 영원한 진리와 행복을 추구하고자 극심한 고행을 포함한 힘든 수행을 통하여, 마침내 위없는 큰 깨달음을 이루시고 생사까지 해탈자재를 성취하셨습니다. 비구는 자신의 출가를 석존의 출가정신에 근거하고, 수행도 석존의 용맹정진을 본받으며, 수행성취의 회향도 석존의 성도이후 전법포교의 삶에 합치하여야 할 존재입니다. 흔히 말하듯이, 석존은 길 위에서 나셔서, 길 위에서 사시다가 길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몸소 모범을 보이셨으며, 비구들에게 그렇게 살아가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생활을 풍족하고 편안하게 살려하지 말고, 가난하고 조촐하게 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석존 당시에 대표적인 제자 비구는 가섭존자였습니다. 가섭의 진지한 두타행(頭陀行)을 부처님이 칭찬하셨고, 석존 입멸 이후는 경장과 율장 등의 결집주도와 심법(心法)을 후대에 전하신 첫 번째 조사였다고 알려져 옵니다. 투타행 혹은 청빈(淸貧) 이른바, ‘자발적 가난’을 생활신조와 덕목으로 삼고 살아가신 수행자의 가장 첫 번째 모범이 가섭존자였음을 기려나가야 할 줄 압니다.
5세기에 인도의 왕자로 태어나 출가수행하고, 가섭존자 이후 제27대조사인 반야다라존자의 법을 이은 보리달마존자가 6세기초에 중국에 와서 중국선종의 초조 즉, 제1대조사가 되었음은 선종을 배운 이들에겐 널리 알려진 전통적 사실입니다. 그 분의 삶과 업적을 기리며 “제2의 석가”로 칭송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보리달마 대사가 당시 중국의 아쇼카대왕이라고 평가될만큼 불법천자(佛法天子)로 알려진 양나라 황제 무제가 “(수많은 사찰을 지었고, 수많은 경전을 번역하였으며, 수많은 스님들을 공양한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라는 질문에, “(조금도) 없다(無)”라고 대답하였다는 선문답은 화두의 하나로 전해옵니다. 그 뒤에 달마대사가 숭산 소림사의 굴속에서 9년간 면벽 참선하시며 때를 기다리셨다는 사연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신비한 전설이 전해지지만, 그분의 살림살이가 두타행 또는 청빈의 생활이었음에 주목하고 유념해야 할 줄 압니다.
중국에 수행중심도량인 총림을 시작하고 청규(淸規)를 제정하여 선종의 독립을 이룩한 분으로 유명한 백장스님의 청백가풍(淸白家風)도 청빈을 바탕으로 합니다. 주로 산중에 있으면서, 인도처럼 탁발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중국의 환경에서는, 농사일 등으로서 스스로 일하며 근검절약하고 자급자족을 지향하였습니다. 한국에 최초로 육조 혜능선사의 가풍인 남종선을 전하여 대한불교조계종 종조로 추존되는 도의 명적선사는 백장선사를 참방하셨을 때에, 백장선사로부터 “중국의 선법이 모두 해동으로 가는구나!”라고 칭찬을 받은 분으로, 설악산 진전사 토굴에서 청빈 또는 청백가풍을 유지하며 두타행을 하셨다고 전해옵니다. 근대에 선종가풍을 새롭게 일으키시며 선농일치 즉, 참선과 농사일을 하나로 삼으신 용성선사와 그분의 제자로서 조계종 종정이셨던 고암선사도 청백가풍을 보이시며 조촐하게 생활하셨음도 주목하고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저도 교조인 석존과 그 법을 이으신 가섭존자, 중국선종초조인 보리달마대사와 선종청규의 효시인 백장선사, 한국 조계종의 종조 도의선사와 종정 고암선사 등의 청백가풍과 두타행 또는 청빈 생활을 본받아, 오늘날의 한바탕 연극 속에 비구 및 선사로서의 배역을 잘해보기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도반 여러분들도 이 길에 함께 가시며 보람 느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른바,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한 세태에 청빈 수행자의 선풍이 세상을 보다 맑고 향기롭게 하며 인간다움을 북돋우는데 도움이 되기 바라며, 불보살님의 호념과 가피를 기대합니다. 나무 본사 석가모니불! 우리의 으뜸가는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목숨 바쳐 돌아갑니다! 함께 가는 모든 이들에게 지혜와 축복을 내려주소서! 고성선원에서 진월, 한마음으로 큰절 올리며,(jinwollee@gmail.com)
(미주현대불교 7월호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