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행증’ 의 아름다움
영원한 행복의 길에 정진하시는 길 벗 여러분, 생사의 무더위 속에서 열반의 세계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진리의 바람을 누리시기 축원합니다. 오늘날 이른바 ‘다종교사회’에 살아가면서, 불교인의 정체성을 되새기며 불자로서 늘 자신의 살림살이를 성찰하고 점검하며 향상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주는 본래 동양과 서양의 여러 나라로부터 온 이민들에 의하여 형성 발전되어온 지역으로서, 다민족 다문화 사회의 특성이 있고, 아울러 다종교 현상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원래 아시아에서 온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토착문화 전통을 비롯하여 유럽에서 온 크리스찬들과 유대인 및 무슬림들의 전통들, 후대 아시아에서 온 힌두교와 불교 및 유교인들의 전통들이 혼재해 있는 실정입니다. 종교학적으로 보면, 신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들 이를테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이 있고, 인간을 중심삼는 종교로 불교와 유교가 있습니다. 신중심종교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까닭에 일반사회에서는 그들의 용어와 관행이 무의식적으로 통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종교인여부를 묻는 경우에, “무엇을 신앙하느냐?”고 질문합니다. 즉 신앙이 종교의 핵심으로 그 대상에 따라 종교가 구분되고, 신앙생활이 곧 종교생활인 것처럼 착각되어 등가의 용어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같은 용어라도 종교인에 따라 그 내용과 차원이 다르게 인식됩니다.
불교인들도 ‘신심’을 말하며 신앙과 유사한 개념을 보이지만, 다른 종교인들과는 그 대상과 내용 및 방법이 크게 다릅니다. 신중심적 종교인들의 신앙은 신에 대한 것이며, 그것은 궁극적 가치로서, 그를 통해 구원을 받으려 합니다. 그들은 신이 창조주이고 인간은 피조물로서 신의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이 되므로, 전적으로 신을 신앙하며 의지하여야 하고 다른 방법과 도리가 없습니다. 불교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부처님이 가르치신대로 수행하면 성불할 수 있음을 믿는 것이 핵심이며, 이는 부처님이 신처럼 우리를 구원해주시리라 바라기보다 우리들 스스로 수행하기에 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인들에게는 ‘신앙(信仰)’이라는 말보다 ‘신행(信行)’이라는 말을 잘 씁니다. 이는 단순한 믿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 즉,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성불할 수 있음을 믿음과 동시에, 그대로 수행함을 나타냄으로서, 믿음의 차원에서 실천수행의 차원으로 진화함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불교인들은 신앙을 넘어 신행하는 존재이며, 단순한 신앙인이 아니라 신행인이 되어야 하고, 신행활동을 생활화 하여야 합당하다고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교인들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향상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신해행증(信解行證)”으로 압축하여 표현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신행 사이에 ‘해’ 즉, 이해와 나아가 신행의 결과로서 ‘증’ 즉, 증득을 보입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성불할 수 있음을 믿고(신), 그 가르침을 잘 배우고 알아서(해) 올바로 실천 수행하여(행) 성불을 증득하는(증) 일련의 순서와 단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올바른 신심이 없다면 불교를 공부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올바른 수행을 할 수 없을 것이며, 구체적인 수행이 없다면 궁극적 증득 즉, 성불은 불가능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필수 요소이며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불교인 스스로 각자의 질적 수준과 단계를 반성하고 점검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느 정도 불교에 신심이 있으며, 얼마나 불교를 이해하고 있는지, 나아가 얼마나 불교를 실천 수행하고 있으며, 얼마나 불교를 체험하고 증득하였는지 판단할 수 있을 줄 압니다. 또한 이를 통하여 다른 불교인들의 수준도 평가하고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신해가 깊고 견고하며 행증이 건전하고 확실해야 지혜와 자비를 보이며, 다른 이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고, 감동과 기쁨을 줄 수 있겠지요.
불교인의 신심 즉, 믿는 마음은 진실하고 절실해야 합니다. 자기의 온갖 고통을 순수하게 느끼며 그 원인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그 원인 제거와 해결을 위한 올바른 노력을 통해 고통과 윤회로부터 해탈 자재를 누릴 수 있음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확인하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문제해결 노력에 진정성을 갖고 간절한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불교인의 기본 공부는 ‘삼학(三學)’이라 하는데, 이는 계율 (행동 윤리와 생활 규범), 선정 (마음공부로 마음을 맑고 평안하게 함), 지혜 (불교경전 등의 교리공부로 얻는 지혜) 를 가리키며, 이 세 분야에 균형과 조화로서 바람직한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통적인 요청입니다. 이로서 해행이 원만한 인격이 되고, 자신의 안과 밖으로 또는 개인이나 사회적으로 불교인의 본분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재가 신자들은 세속생활에 맞는 오계와 팔계 및 보살계를 받아 지니며, 출가승단 대중들은 십계와 구족계를 받아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 전념해야 하지요. 참선과 교학은 생활 형편대로 하되 주어진 여건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정진해야 각자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겠지요.
한국 조계종 전통에서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학을 버리고 선 수행을 하라는 뜻인데, 이는 이론에 그치고 실천에 소홀한 이들을 경계하는 것으로서, 교학을 전제로 하고 있음에 유념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개학하여 학기 수업을 하지 않으면, 방학이란 말이 소용없듯이, 교학을 하지 않았다면 버릴 것도 없을 줄 압니다. 다만, 교학에 집착하여 알음알이에 그치고 수행을 하지 않는 이들을 경책하여 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지요. 교학 즉, 수행법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수행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그 점검 및 판단의 기준도 없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을 것임에 주목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어느 곳을 가고자 할 때에, 가는 곳에 대한 결과에 확신을 갖고, 그 곳에 가기위한 지도와 관련정보를 갖추어서, 차량 등의 교통수단으로 직접 실제적으로 운행함으로서,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 보람을 누릴 수 있는 것과 같이 유추해 보면, 아무리 수행정보를 갖추고 있어도 실제 수행하지 않으면 결국 성불하지 못함은 분명함과 같다고 하겠지요.
모든 종교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종교로 평가되는 불교가 그 효과를 보이기 위해서는 불교인 모두 신해행증을 올바로 하여야 자신과 이웃들에게 실제적인 이익과 보람을 누리고 베풀 수 있을 줄 압니다. 길 벗 여러분, 불교 신해행증을 통한 성숙하고 품격있는 종교인으로서, 해행의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으로 이 세상에 연꽃처럼 불국정토를 이루시는 보람 누리시기 빕니다. 이 세상에 으뜸가는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심향을 사르며.
가숭산 고성에서, 진월 비구_()_
(미주현대불교 8월호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