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의 기쁨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한국과 중국의 전통적인 중요사찰은 주로 산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도와 티벳 등 다른 지역도 비슷합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근거지인 사찰을 생각하거나 말할 때면 주로 산중의 절을 연상하게 됩니다. 이는 세간 대중이 많이 모여 사는 마을 또는 저잣거리와 떨어져서 탈속의 경지를 보이기도 하지만, 다소는 불편하고 고적하면서도 엄숙하고 경건한 종교적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불교인이 아니라도 전통문화에 감각이 있는 분들은 이른바, “도 닦는 이(修道者)”는 대부분 산 속에 들어가 정진해 왔다고 느낄 줄 압니다. 산과 들, 강과 바다 등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다양하고, 농업과 임업, 어업과 수산업, 공업과 상업, 여행업과 금융업 등의 각종 직업이 많아지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설과 방식이 발전해 왔습니다. 점차 도시문화가 번창해지고, 근래에는 4차산업까지 회자되며 인류의 문명은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인구는 도시 또는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정치와 경제 및 문화적인 사업의 중심지도 모두 저지대의 도시를 위주로 형성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수도자들에게는 산이 다른 곳보다 수행에 도움이 되는 듯 선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 경기도 의왕의 모락산 기슭에서 몸을 받아 났습니다. 제 18대 할아버지인 임영대군(臨瀛大君) 즉, 세종대왕의 넷째 왕자였던 분이 그 근처에 사시다가 돌아가셔서 그분 묘소도 있고 하여,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왔던 곳입니다. 아무튼, 어려서부터 자라면서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고, 형편이 되는대로 산위에 오르기를 자주 하였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청계산 청계사 소풍,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는 속리산 법주사 와 토함산 불국사에 수학여행 등, 다른 지역의 산과 절에 다녔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 준비시기에 우연히 해인사에 가보고 싶어, 무작정 나섰다가 가야산에 들어서며 옛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갖고, 해인사에 눌러앉아 즉시 출가수도를 작정한 것도 전생의 필연적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의상스님의 법손, 순응스님과 이정스님이 해인사 창건시의 아름다운 비화뿐만 아니라, 고운 최치원선생도 말년을 가야산에서 마쳤다는 일화는 가야산의 매력을 암시하는 것들 가운데 일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1970년대초에 해인강원(현 해인승가대학)을 졸업하고, 6년간 제방선원에서 안거 정진할 때도 거의 산중에서 지냈습니다. 이를테면, 극락암이 있는 영취산,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 도성암이 있는 비슬산, 대승사가 있는 사불산 등의 선원에서 지냈으며, 해제시기의 만행 때에는 봉암사가 있는 희양산, 상원사가 있는 오대산, 신흥사가 있는 설악산,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 범어사가 있는 금정산,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 등, 전국의 명산을 돌아보며 그곳에 있는 선지식들을 방문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옛날 큰스님들이 스스로를 지칭할 때나 필명(筆名)으로, 처음 출가했거나 오래 사신 곳의 산 이름을 따서, ‘ㅇㅇ山人’ 으로 표현하셨던 것이 한 전통이 되어왔고, 이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제가 지난달 보낸 글의 말미에 “가숭산 고성선원”이라고 제 있는 곳을 표시한 것도 제 생각의 표현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고성선원(古城禪院)은 제 법사인 고암(古庵) 선사와 고암선사의 법사인 용성(龍城) 선사의 법호에서 한 글자씩을 택하여 지은 이름입니다. 이 아란야가 있는 산 이름은 특별히 없고, 그냥 행정구역에 따라 거대한 태평양 해안산맥(Coast Ranges) 의 일부로서 리버모아 산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지역의 다른 산 이름을 보면, 버클리대학의 천문대가 있는 산은 하밀톤 (Mt. Hamilton) 이고, 근처에 세다 (Mt. Sedar), 오소 (Mt. Oso) 등이 있는데, 그 지역과 관련있는 인물과 특성 및 별명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가 있는 산 이름을 가숭산으로 스스로 지어 부르는데, 그 뜻은 저의 한국 출가 본사인 해인사의 가야산과 제가 현재 회장의 소임을 맡고 있는 문화학회인 세계불교문화와 보리달마 우의회(World Fellowship of Buddhist Culture and Bodhidharma, WFBC&B) 의 보리달마 선사가 주석하였던 숭산(崇山)에서 한자씩 따서, 중국과 한국의 선맥을 이은 곳임을 시사하고자 한 의도입니다. 이는 가주 (California) 에 있는 숭산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인도 석존의 출가 수행 및 성도지였던 붓다가야의 가야산, 이른바 설산(雪山)과 연계시켜서 가야산과 숭산 즉, 인도와 중국 및 한국을 거쳐 온 수행전통과 불법의 흐름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거창한 설명 같지만, 스스로의 정신적 연원과 전통의 정체성을 되새겨 보게 하는 나름대로의 의지와 노력의 하나라고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불교입문 수행자에게 제일 먼저 읽히는 책이 이른바, ‘초발심자경문’으로서 보조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야운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순차적으로 가르칩니다. 발심수행장을 보면, “높은 산과 바위는 슬기로운 이들이 머물러 살 곳이며, 푸른 솔이 우거진 깊은 골짜기는 수행자가 깃들일 곳 (高嶽峩巖智人所居碧松深谷行者所棲)” 이라고 하고, “‘사람들 누구나 산에 돌아가 도를 닦고 싶지 않겠는가?’ 마는, 그렇게 나아가지 못함은 애욕에 억매여 있기 때문 (人誰不欲歸山修道而爲不進 愛欲所纏)”이라고 했습니다. 나아가, “비록 재주와 지혜가 있다 하여도 마을에 사는 사람은 모든 부처님께서 걱정하는 마음을 내시고, 설사 도행이 없다고 하드라도 산에 사는 사람은 성인들이 환희심을 내신다 (雖有才智居邑家者諸佛是人生悲憂心設無道行住山室者衆聖是人生 歡喜心)”고 했습니다. 이는 신라시대 원효스님의 견해이지만, 오늘날에도 그 깊은 뜻은 공감되고 있습니다. 이는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와 행복을 추구하는 수행자의 처신을 제시한 것으로서, 불교의 교조인 석존과 중국선종의 초조인 보리달마선사와 조계종의 종조인 도의선사가 보여주신 행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 모두 먼저 산으로 들어가 수행하시고는 중생을 위해 회향하신 것입니다.
산은 꼭 물리적인 산만으로 고집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산이 세속의 욕망과 먼 곳을 가리키는 상징이라고 본다면, 시중에서도 얼마든지 나름대로 산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반면에 몸은 산중에 있어도 마음에 욕망이 가득하다면 그는 진정한 산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연꽃은 진흙에 뿌리를 두고도 청초한 꽃을 물위에 펴 보임으로서, 혼탁한 세속에 살면서도 거기에 물들거나 휩쓸려가지 않는 삶을 사는 이들을 상징하며, 불교의 꽃으로 대표되고 칭찬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선수행의 과정을 보이는 심우도(尋牛圖)에서 볼 수 있듯이, 산중에서 수행을 마치고는 시중 저잣거리에 내려와 세상 사람들을 교화하는 삶을 제시함에 주목하여야 하겠지요. 어떠하든 이 모두는 수행자의 자세와 처신 및 세상의 기대치를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수행자가 항상 돌이켜 보며 점검하고 스스로 경책할 필요를 강조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출가후 10여년간 산에서 수행하다가 깨달은 바 있어, 불은에 보답코자 시중에 내려와 40여년간 포교하다가 이제 퇴임하고 다시 산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아무튼 저는 현재 부처님을 비롯한 옛 스승들의 살림살이를 되새기며, 산중에서 머물러 살 곳을 가꾸어갈 수 있어 다행으로 여기며, 길벗 여러분들의 연꽃 같은 삶과 정진 및 탁마를 축원합니다. 두루 청안하시며, 시원하고 알찬 가을 맞으소서! 가숭산 고성에서, 진월 (www.go-sung,org jinwollee@gmail.com)
(미주현대불교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