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10/24) 버클리대학(UCB) 명예교수 이홍영 박사님이 돌라가셨다는 기사가 한국일보 목요일(10/26) 판에 게재되었고, 장례식은 10월 30일 오후 1시에 오클랜드 마운틴뷰 세미터리에서 한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워낙 멀고 외진곳이라 이곳 우편물은 일주일에 2번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배달됩니다.(그것도 고성선원에서 2 마일 떨어진 길가에 있는 우편함에). 그러므로 제가 읽는 신문은 어떤때는 1주일정도 늦게 도착도 되고 하여 구문을 읽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아무튼 저는 지난주 토요일(10/28) 산호세에서 "담선법회(매주 토요일 오후 2-4시)"를 마치고 오래전부터의 선약 때문에 자동차로 로스엔젤리스로 갔습니다. 일요일(10/29) 오전에 고려사 법회에서 설법하였고, 오후에 "<미주현대불교> 창간28주년 및 <미국불교> 발간기념법회"에서 법문한 뒤에 그곳 인사들과 만찬과 환담하고는 밤에 회주 현호스님과 이야기 하다가 고려사에서 숙박, 다음날인 월요일 고성선원으로 돌아오니 저녁이었습니다. 다음날인 화요일에는 토굴공사를 하였고 수요일 부족한 자재를 구입하러 리버모아시내에 갔다오는 길에 지난주 신문들을 챙기면서, 그때에서야 이교수님의 기사를 볼 수 있게 되었지요. 그날 저녁에야 이교수의 사모님과 통화할 수 있었고, 다음날(11/2) 화장한 유해를 매장하는 식을 거행한다고 함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목요일 오후 1시에 마운틴뷰 세미터리에 가서, 안장식을 봉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전에 리버모아 시내에서 노란 국화분을 2개 사고, 버클리에 가서 위로카드와 네팔 카투만두 불교용품 지점에서 향을 사서 안장식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미망인 화경, 딸 선영, 사위 던컨, 친지 앤과 소납이 모여 조촐하게 치러진 법요식에서 저는 전통적인 의식과 <금강경> 독경을 해 드렸지요. 이울러 한참전에 먼저간 이교수님의 큰딸 선아(소냐)의 유분을 함께 안장하게 되어 "신묘장구대다라니"와 반야심경 봉송 및 장엄염불도 모두 함께 정성으로 하였지요. 그 뒤에 선영이 아버님께 드리는 글을 읽었고, 소납도 "극락정토에 잠시 머무시다가 곧 이세상으로 다시 돌아와 유족과 세상을 위해 새 삶을 이루시며, 고성선원에서 선차라도 함께 드십시다" 라고 첨언하였지요. 그 묘소옆에는 세다추리가 있었고, 저멀리 버클리대학 캠퍼스의 시계탑이 잘 보이는 곳이라 명당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홍영 교수님은 소납이 버클리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논문을 쓸때에 한국학연구소(CKS)소장으로 계셨으므로, 한국분야를 고려하여 논문심사위원회의 일원으로 초치되어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분이 다른 교수님들과 심사하며, "말보다 글이 더 좋다!" 고 칭찬을 해 주셨다고 전해들었고, 여러가지 고마움을 기억합니다. 그 분은 원래 한국에서는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뒤에 예일대학 교수로 계시다가 버클리대학 정치학과로 초빙되셨지요. 중국정치의 전문가로 알려졌고, 관련분야에 많은 논문과 저서가 있는 줄 압니다. 재작년에 퇴임하시고는 한국 등지로 여행하시었고 작년부터 지병으로 불편하시다가 금년에는 거의 병원에서 지내신줄 압니다. 버클리대학 법대에서 재학중이던 큰딸 선아가 먼저 떠나자 충격을 받으셨는데, 그녀의 명복을 비는 일에 관심을 가지셨고,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의 시내사찰에는 한국과 같은 사찰분위기가 아니라며, 그나마 카멜의 삼보사가 낫다고 하여, 그곳에서 소납이 선아를 위해 49제를 지내드린적이 있지요. 아무튼 몇년전에 소납에게 일만불을 주셨기로 그것을 고성선원 창립에 사용하며 그 뜻을 기려 나가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교수님 가족들이 한국을 방문하실 때에 인연이 있는 강원도 속초지역에 쉬실 곳을 마련하여 온줄 압니다. 그리하여 이교수님 49제는 그 쪽으로 가서 신흥사나 낙산사에서 가질 예정입니다. 아울러, 내년 1월중에 버클리대학 캠퍼스에서 추모회를 계획중입니다. 버클리대학 교정에는 선아를 기념하는 식수를 하였는데, 이교수님을 기념하는 나무를 심을 것도 고려중입니다. 소납도 이곳 산중에 교수님을 기리는 나무를 심을 생각입니다. 이교수님이 한국학연구소장 재직시인 1990년대에는 한국으로부터 많은 방문교수와 학자들이 다녀갔고, 한국관련 행사들이 많아 학내 및 지역의 관심을 크게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수많은 대학들 가운데 버클리대학이 한국학관련부분에 가장 활성화되고 영향력이 크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버클리대학에서 연구했거나 다녀갔던 많은 학자와 인사들은 이홍영 교수님과의 추억이 많을 줄 짐작합니다. 인연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 가신 분을 추모하며, 명복을 빕니다. 부디 정토에서 평안히 쉬시다가 다시 오소서! 가숭산 고성에서, 진월 분향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