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련화 슬픈 소식>
며칠 전 문안편지 답 없어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의 아들 이메일에 부고라니!
코비드 바람에 실려 정토 가서 쉬리라.
지난달 말 (3.30)에 지구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코비드-19 상황을 감안하여, 오랫만에 어찌지내는지 궁금해서 서울의 옥련화 문정희 시인에게 문안의 이메일을 보냈었는데, 회신이 없어서 다소 의문과 걱정이 되던차에, 오늘 (4.7) 아침에 이메일을 점검해 보니, 그 이의 아들로부터 부고의 메일이 와 있었네요. 지난주 목요일 (4.2)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하였으며, 고향인 제주도 서귀포 선산에 안장하였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집과 가깝고 전부터 인연이 있던 서울 양천구 목동의 법안정사에서 5월20일 49재를 지낼계획이라고 하니, 산승은 그곳에 갈 수 없겠지만, 혹시 가능하신 분들은 동참하여 명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돌이켜 보면, 약 20년전에 산승이 법안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에 법회에 참석하여 시작된 인연은, 그때에 소납이 옥련화(玉蓮花)라고 법명을 지어 주기도 하였지만, 1999년 5월 산승이 발기하고 창립한 한국종교연합선도기구(URI Korea)의 종교간 소통과 화합 및 세계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으며, 특히 여러종교계 인사가 참여한 종교연합문인회를 결성하고 2003년부터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란 계간 문예잡지를 편집장으로서 발간하여 많은 공감과 지지를 받았음이 주목됩니다. 이른바 현모양처로서 두 자식의 어머니 역할로 가정일에 분주한 상황에서도 학구열이 높아 만학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만해스님의 사상과 문학정신을 연구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경기대학교 등에서 문학강의를 하였으며, 틈틈히 시와 수필을 써서 여러권을 출판한 부지런한 작가이자 학자이며 교육가였던 고인은 여러분야에서 사회의 모범을 보였다고 기억됩니다. 교장선생님의 딸로 태어나 품격있는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받았고 순결한 문학정신과 불교 수행정신으로 항상 고결한 삶을 추구하였으며, 사회적 공익과 평화에 관심을 갖고 성실하게 이바지한 그의 살림살이는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문 옥련화 보살이여! 이제 정토에 가서 잘 쉬었다가 다시 이세상에 돌아와 더 멋진 삶으로 누리를 더욱 빛나고 향기롭게 하기를 빕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미주 캘리포니아 고성선원에서, 진월 두손모음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