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9-08 01:32
초가을 피리 소리
 글쓴이 : dowon
조회 : 1,898  

**아래글은 오늘 샌프란시스코한국일보에 실린 산승의 <소성통신>인데 공유합니다.

고성통신   진월 스님/리버모어 고성선원 원장
가을의 상쾌함을 누려보는 9월입니다. 엊그제 여름을 마감하는 풍습의 미국 노동절 연휴가 지나갔고, 한국 달력으로는 선선한 가을 날씨로 해맑게 이슬이 엉겨나는 백로절이 내일로 닥아왔습니다. 한 보름 뒤에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절, 삼주후에는 한국의 전통명절 한가위 축제가 시작됩니다. 고국에서는 올해 개천절과의 사이에 있는 월요일(10/2)을 포함하여 일주일 가까이 추석연휴가 벌어지므로 많은 분들이 여유롭게 자유 시간을 즐기려 기대에 부풀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모두 초 중 고 대 각급 학교들이 새학기를 시작하며, 대학팀들을 중심으로 각종 체육경기가 개장하고 있지요. 아무튼, 연중 최적의 기후전개를 맞으며, 더위 속에 방학과 휴가 등으로 느슨해졌던 생활리듬이 분주하게 활동하는 모드로 전환되는 시기인데, 모두들 환절기의 건강에 주의하여야 할 때입니다.

한국일보를 비롯하여 교포언론에 이미 보도되었듯이, 이스트베이한인회 주최 여러 기관들의 후원과 협찬으로 “다민족과 함께 하나되는 한국문화축제 (Korean Culture Festival)”가 지난 금요일(9/1)에 오클랜드 중심가에서 열렸습니다. 버클리에서 오클랜드로 이어지는 중심도로인 텔레그라프와 27가 공간의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축제 마당은 남녀노소가 어울려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연으로 가득했습니다. 한사모 청년들의 전통사물놀이와 대북 타악기 연주로 시작되어, 한복의 성장으로 김일현과 백효리의 전통 부채춤과 화관무가 아름답게 선보였고, 멜로디경과 신윤주의 가야금과 해금의 전통 현악기와 김원미의 피리 관악기의 연주는 이쪽에서 익숙한 바이올린과 첼로 클라리넷과 섹서폰 등의 서양악기와 대조되는 독특한 동양적 음색과 곡조를 느끼게 했지요. 특히 산타클라라 노인봉사회 까투리무용단은 70대 노인분들로 구성되었다는데, 그분들의 화려한 한복차림과 “노들강변 춤”의 연기는 우아한 원숙미를 멋지게 보여주어 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외국 청소년들이 주를 이룬 한스매스터아트의 태권도 시범과 잘 알려진 구르브와 이클립스 케이팝 댄스팀의 공연은 현지 젊은이들에게 공감의 흥을 신나게 돋구었고, 끝장의 한마당 강강술래는 모두가 동참하고 하나되는 어울림의 계기가 되었지요.

산승도 초대되어 관람에 동참하며 나름 심취되었던 부분은, 모든 공연이 다 좋았지만 특히 해금과 피리 소리에 공명을 느꼈습니다. 과거 케이드라마 사극의 배경음악 같은데서 들을 수 있었던 심금을 울리는 애절하고 낭랑한 해금과 깊이 산천에 울려퍼지는 피리 독주는, 현대 도시 한가운데에서의 온갖 빛과 소음들을 훤출히 초월하여, 적막한 산중에서 펼쳐지는 듯한 딴 세상의 정황을 일으키는 환상적인 공연이었습니다. 도회지에서의 큰 잔치를 끝내고, 이 백 여리를 떠나 깊은 산중에 이르러, 보름이 갓 지난 큰 달빛 아래, 구성진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적막속에 되새겨지는 긴 여운은 몇 시간 전에 들은 해금과 피리소리였습니다. 특히 피리소리가 고요에 사무쳐 천녀의 너울처럼 그윽하게 저 허공에 여울져 가더군요.

산승은 평소에도 마음 속으로 인연따라 홀로 무형의 피리를 불고 홀로 듣기도 합니다. 선종에서는 이른바 ‘무공적(無孔笛) 몰현금(沒絃琴)’ 즉 구멍없는 대통 피리와 줄없는 거문고라는 상징을 통해 보통 개념의 악기가 아닌 격외(格外)의 기구로 영성적 차원의 경지를 표해왔습니다. 그로서 연주하는 재량은 물론 감상하는 수준을 나타내며, 고수(高手)의 연주와 지음(知音)의 소통을 가리키기도 하지요. 독자 여러분도 이 청량한 가을바람에 실려오는 고요한 피안의 향소리(香聲)를 듣고 세상소리를 보며(觀世音), 의젓하게 소 타고 피리불며 집으로 돌아가는(騎牛歸家) 자유인의 모습을 상상하고 평안을 누려 보시길! 마하반야바라밀!

관리자 23-09-0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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