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1-25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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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dowon
 조회 :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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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고통" 여기에서는 붓다가 극단적 고행시기 이전에 당신이 감각적 즐거움에 집착하는 수행자는 깨침/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고 알았고, 그렇게 인식한 뒤로 그분은 감각적 즐거움을 피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러므로 여러 가지 극단적 고행에 동참하게 되었고, 아무튼, 그러한 고행기간중에 대단한 정진력과 집중력은 계발되었어도, 그 과정에서의 신체적 고통은 그의 마음에 별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으며, 극단적 고행은 신체적으로 극도의 피로와 체력의 고갈상태를 가져왔고, 마침내 그러한 고행은 깨침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편집자 주) “경배받을 분, 고타마시여! 아주 즐거운 느낌이 당신의 마음에 스며들고 머물 수 있다는 생각이 일어나본 적이 없습니까? 경배받을 분, 고타마시여! 아주 고통스러운 느낌이 당신의 마음에 스며들고 머물 수 있다는 생각이 일어나본 적은 없습니까?” “아끼벳사나여, 건전한 것을 탐색하거나 숭고한 평화의 최고상태를 추구하면서, 마침내 세나니가마 근처의 우르벨라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마가다국을 두루 유랑하였다. 거기에서 나는 보았다: 적당한 터전, 맑은 물이 흐르는 강과 유쾌하고 부드러운 강변의 동산 및 그 근처에서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음과, 이곳이 정말 구도 수행자를 공양할 곳임을. 아끼벳사나여, 나는 생각하였다: 이 땅 터전이 [머물기] 적절하다; 이 맑은 물이 흐르는 강과 유쾌하고 부드러운 강변의 동산 및 그 근처 마을에서 탁발할 수 있어 기쁘다. 이곳이 정말 구도수행 정진하는 이들을 공양할 곳이다.” “아끼벳사나여, 나는 그곳에 앉아서 생각하기를 : ‘이곳은 수도 정진함을 돕고 공양할 것이다.’ 아끼벳사나여, 나는 이 세 가지 대조가 나에게 동시에 일어났는데, 전에 전혀 들은 바 없었다. [이는 마치 습기찬 나뭇가지로는 비벼바야 불을 일으켜 낼 수 없고 다만 마른 나뭇가지로 해야 불을 내게되는 것과 같으니] 출가 추행자나 감각저 즐거움으로부터 벗어난 브라만이 육체적 욕망과 애정, 감각적 즐거움의 유혹과 갈증 및 열정을 전적으로 포기하고 느끼는 바, 아픔과 긁힘이나 쑤심을 당하더라도 내적으로 억누르는 이들만이 알고 보며 탁월한 깨침이 가능하다... 아끼벳사나여, 나는 고려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혀로 입천장을 떠밀며 나의 [수도에 장애되는] 마음을 [결단의] 마음으로 극복하고 절제하며 격파해야 하리라.“ 아끼벳사나여, 내가 실제로 그렇게 하는 동안 겨드랑이 밑에 땀이 흘렀다. 아끼벳사나여, 어떤 막강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의 머리나 어깨를 쥐어잡고 굴복시키거나 억누르거나 짓뭉게는 것과 같이, 나도 이를 악물고 혀로 입천장을 떠밀며 [안일한] 마음을 [정진의] 마음으로 굴복시키고 절제하며 격파해 나갔으며, 내 겨드랑이 밑에 땀이 흘렀다.** 이상에서, 석존이 출가후에 유랑하면서 고통수행을 실천하다가 우루벨라 마을에 이르러 새로운 시도를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아울러, 감각적으로 안일함을 찾는 유혹이나 수행에 장애가 될만한 꺼림을 극복하는 결단의 과정과 단면을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자기 자신과의 내면적 싸움에서 어떻게 이겨나가는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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