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방편에 능숙한 교사: 수행 정진의 완급조절
여기서는 석존께서 가르치친 선교방편을 묘사한다. 이는 당시 최근에 입문한 비구가 행선하면서 너무 힘을 쓰고도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하자 거의 좌절 포기 상태에 있음과 관련이 있다. 붓다는 그 비구에게 보다 유연하게 접근하라고 권하셨는데, 그렇다고 너무 이완되지는 말도록 경계하셨다. 이 내용은 그 비구에게 지시하신 것이지만, 모든 영성적 수행에 적용될 수 있다. (편집자 주) 행선 수행을 하면서 걸음 걸이에 너무 심하게 힘을 주는 까닭에 소냐비구의 발에 상처가 났고, 그래서, 비록 그곳이 가축의 도살장 [근처]이었기로 [다른 생명의 출혈도] 있을 수 있지만, 그가 걷는 곳이 그의 피흘림으로 더럽혀지게 되었다. 그러자 그가 홀로 명상하는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 올랐다: “세존의 제자들은 열심히 수행정진하며 산다. 나도 그 가운데 하나이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집착없이 [삼독번뇌에] 중독되려는 경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나는 내 가족의 소유 재산이 있다. 그러니 그 소유 재산을 즐기면서 [보시 등으로] 선업공덕을 짓고 복을 누릴 수 있지 않겠나? 다시 세속생활로 돌아가 소유 재물을 즐기며 선업을 지음이 어떨까?” 그러자 석존은 소냐의 마음을 알아치리시고는 강력한 사람이 접었던 그의 팔을 뻣치듯이 곧 영취산에서 소냐가 머물고 있는 냉곡에 출현하셨다. [석존이 소냐에게 접근하여, 환속할 생각이냐고 물으셨고, 소냐는 그게 사실이라고 말하자, 그분이 말씀하셨다] “소냐여, 그대는 이 경우를 어떻게 생각하는냐? 그대는 과거 집에 머물 때에 현악기를 다루는데 능숙하지 않았더나?” “예, 경배할 분이시여!.” “소냐여, 그 현악기의 줄을 너무 팽팽하게 했을 때에, 그 악기는 연주하는데 적절하였다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아닙니다,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다. 경배할 분이시여!” “소냐여, 그 현악기의 줄을 너무 느슨하게 했을 때에, 그 악기는 연주하는데 적절하였다고 생각하느가?” “아닙니다, 참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경배받을 분이시여!” 소냐여, 그 현악기의 줄을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그 중간정도로 알맞게 조절했으 때에, 그 악기를 연주하는데 적절하였다고 생각하느가?“ ”예, 참으로 그렇습니다, 경배받을 분이시여!” “소냐여, 그와 같이, 정진함에 있어서 너무 심하게 힘들여 하면 휴식이 없어 지치고 너무 느슨하게 하면 게으르게 된다. 소냐여, 그러므로 그대는 정진하는데 그 균형 잡기를 다짐하고 영성적 기관의 통찰에도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며 이들을 늘 반성 점검하도록 하라.” “예, 정말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배받을 분이시여.” 소냐 비구가 그렇게 말하자 석존은 오르셨다. 소냐비구를 격려하신 석존은 강력한 이가 그의 팔을 뻣듯이 곧 소냐비구의 앞에서 사라져 냉곡을 떠나 영취산에 출현하셨다.
소냐비구는 곧 수행 정진 노력에 중도 균형을 취하고 영성적 기관의 통찰에도 균형 수평을 이루며 그를 점검해 나갔다. 소냐비구는 외진 곳에서 홀로 지내며 스스로 절제하면서 열심히 수행 정진하였고, 그곳에서 곧 선남자들이 그들의 가정을 떠나 추구하는 바, 집없는 출가수행자의 거룩한 삶의 최고 목적인 고급 지식을 이해하고 지혜를 성취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차렸다: “태어남은 무너졌다; 거룩한 삶의 필요는 구비 완성되었다; 해야할 일들을 다해 마쳤다; 앞으로 더 할것이 없다.” 그래서 소냐비구는 한 응공(공양받을 성자)이 되었다.** (Mahavagga V. 1, 13-18; Vinaya I. 182-183, Trans. G.A.S. 영역, 진월 한역) CBT 79b-80a
이상에서, 수행자가 그 목적을 이루려 함에 무도하게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기므로, 중도적 균형을 추구함이 결과 성취에 바람직하다고, 석존이 자비와 지혜로서 제자를 깨우치고 격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악기의 줄 고르기' 사례와 비유를 통해 수행정진 뿐만 아니라, 모든 다양한 업무 경우에도 유효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음을 시사받게 한다. "사성제"의 안목이 모든 문제 해결의 방법과 가능성을 보여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