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의 유혹 퇴치
여기서는 유혹의 신 마라 (나무치 + 칸하) 가 고행시기의 끝 무렵에 있는 고타마에게 찾아와 그의 출가수행자적 삶을 포기하고, 부라만적 공희를 통해 안락한 복과 세속적 이익을 일으키는 보통사람의 생활을 하는 게 좋다고 권유한다. 그렇지만 고타마는 말하기를 그는 더 이상 그러한 안락과 이익을 바라지 않으며, 깨침을 이루고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기를 결심했다고 대답한다. 그는 신심과 정진 염관 선정 지혜 등 다섯가지 분야의 능력을 갖추고 마라의 도덕 영성적 방해와 도전을 항복받고 퇴치한다 (편집자 주)
내가
네란자라강 근처에서 번뇌 속박으로부터 안전하게 해탈을 이루려고 명상하는 정진중에 나무치가 나에게 접근하여, 자비스럽게 말하기를: “그대는 안색이 좋지않고 야위었다. 곧 죽을 것이다. 그대 안에는 천가지 죽을 거리가 있고 살 수 있는 부분은 다만 하나 뿐이다. 살아남으시오, 사는 게 좋소. 만약 그대가 산다면 그대는 유익한 업을 지을 줄 아오. 거룩한 삶과 배화 공희를 수행하면 그대는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소. 그대는 정진으로 무엇을 바라시오? 정진의 길은 가기 어렵고, 수행하기 어려우며, 성취하기 어렵소.” 이렇게 말하면서 마라가 석존 가까이 옆에 섰다. 그렇게 말하는 마라에게 석존은 이렇게 말했다: “게으른 종자여, 삿된 것, 그대는 그대의 목적을 위하여 여기 왔다. 나는 조그만 이익도 바라지 않는다. 마라는 그러한 이익을 바라는 이들에게 말해야 하리라. 내 안에서는 신심과 용기와 지혜를 찾을 수 있다. 왜 그대는 정진에 몰두하는 나에게 그러한 삶에 대하여 묻는가? 이 바람이 강의 물을 말려 버릴 것이라면, 왜 정진에 몰두하는 나의 피는 말리지 않겠는가? 나의 피가 말라버릴 때에 나의 성냄과 게으름도 사라진다. 나의 살이 사라져 없어질 때에 내 마음은 맑아지고 더구나 나의 마음 새김과 지혜와 선정은 더욱 확립된다. 내가 이렇게 고양된 느낌으로 머물러 사는 동안, 내 마음은 더 이상 감각적 즐거움에 관심이 없다. 감각적 즐거움들은 그대의 첫째가는 군대이다; 불만은 그대의 둘째; 굶주림과 목마름은 그대의 셋째; 애착은 넷째; 우둔함과 무기력은 다섯째; 두려움은 여섯째; 동요하는 의심은 일곱째; 위선과 고집은 여덟째 [군대 가 될 것이다. [재산] 소득, [좋은] 평판, 명예, 등 어떤 명성도 거짖으로 받아드리고, 자기를 칭찬하며 남들을 헐뜯는 누구라도 그대의 군대이다. 나무치는 칸하의 공격 능력이다. 누구나 영웅이 아니면 이것들을 정복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을 정복하는 이는 행복을 얻을 것이다. 내가 문자풀(항복의 상징)을 입어야 하나? 나는 여기서 충분한 삶을 살았다. 싸움에서의 죽음이 정복되어 사느니보다 낫다. 이 싸움에 빠지면 적지않은 출가수행자와 청정수행자들은 보이지 않으며, 그들은 훌륭한 서원으로 찾아갈 길을 알지 못한다. 저 마군들이 내 주위에 도열하고 그의 코끼리들을 이끈 마라를 보면서 나는 전투하러 전진하리라. 나의 자리에서 나를 옮기지 마라. 신들과 세계가 함께해도 이길 수 없는 그대의 군대를, 나는 굽지않은 도자기 단지를 돌로 깨뜨리듯 지혜로 부수리라. 내 생각들을 통제하며 나의 염력을 잘 확립하여 나는 왕국들을 돌아다니며 많은 제자들을 훈련시키리라. 내 가르침을 실행하는데 열심인 이들은 그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라도 가면서 꺼리거나 슬퍼하지 않으리라.”
[나중에 마라가 말했다:] 칠년동안 석존을 걸음마다 따라다녔어도, 나는 항상 마음을 새기며 알아차리고 있는 완전히 깨친 붓다에 대하여 단 한번의 [공격할] 기회도 가질 수 없었다. 한 때 나는 큰 바위를 맴돌고 있는 한 새를 보면서 생각하기를 : “우리는 여기서 부드러운 [먹을] 것들을 찾으리라, 아마 거기에는 단맛이 있는 것이 있으리라.” 단맛나는 어떤 것도 얻지 못한 그 새는 그곳을 떠났다. 그 돌을 맴돌던 그 까마귀가 [아무 것도 먹을 것을 얻지 못하여] 낙심하였듯이 우리도 고타마를 공격한 뒤에 절망하고 떠날 것이다.“ 슬픔에 젖어 마라의 겨드랑이에서 류우트 현악기가 떨어졌고, 그 실망한 영혼은 거기에서 사라졌다.** (Padhana Sutta, Sutta-nipata, 425-449, Trans. G.A.S. 영역, 진월 한역) CBT 60a- 61a
이상에서, 석존이 네란자라강가 즉 지금의 보드가야 대탑이 있는 곳에서 명상 수행을 하는데, 마라 [마군]이 출현하여 그분의 수행 성도를 방해하는 과정과 그 극복을 볼 수 있다. 이는 대승권에서 보이는바 '팔상성도' 가운데, "설산수도상(희말라야 기슭에서 수행하는 모습)"에 이어진 "수하항마상([보리수] 나무아래에서 마군을 항복받는 모습)"에 해당된다. 보통 이와 관련 그림에, 아름다운 여인이 유혹하는 장면 및 군대가 창칼과 화살을 쏘는 그림 등으로서, 수행을 하지 말도록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광경인데, 이는 인간의 근원적 본능에 기반한 욕망과 공포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석존이 그를 극복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석존은 대각을 성취하여 붓다(깨침을 이룬 분)가 되었고, 그로부터 "석가모니불 (Sakyamuni-buddha 석가족 성자 붓다)"로 불리게 된다. 석존이 앉으셨던 자리 위 나무의 본래 이름은 '핍팔라'였는데 그 이후로 "보디(Bodhi 깨침)" 즉 "보리수"로 불리며, 현재 "마하보디수트파 (대각탑)"옆에 있는 보리수이다. 나무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