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들이여, 건전한 것을 탐색하고, 숭고한 평화의 최고 상태를 추구하면서, 마침내 세나니가람 근처의 우르벨라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마가다국을 유랑하였다. 거기서 나는 적당한 터전, 맑은 물이 흐르는 강과 유쾌하고 부드러운 강변의 동산 및 그 근처에서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음과, 이곳이 정말 구도 수행자를 공양할 곳임을 보았다. 비구들이여, 나는 생각하였다: “이 땅 터전이 [머물기]
적절하다; 이 맑은 물이 흐르는 강과 유쾌하고 부드러운 강변의 동산 및 그 근처 마을에서 탁발할 수 있어 기쁘다. 이곳이 정말 구도수행 정진하는 이들을 공양할 곳이다.” 나는 그곳에 앉아서 생각하였다: “이곳은 수도 정진함을 돕고 공양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 자신이 태어남의 주제가 되며, 태어남의 주제가 된다는 것의 위험성을 이해하면서, [생사윤회] 속박으로부터 불생의 최고 안전인 니르바나(열반, 적멸)를 추구하였고, 나는 그 니르바나를 성취하였다; 나 자신이 늙음의 주제가 되며 늙음의 주제가 된다는 것의 위험성을 이해하면서 불로의 최고 안전인 니르바나를 추구하였고, 나는 그 니르바나를 성취하였다; 나 자신이 병듦의 주제가 되며 병듦의 주제가 된다는 것의 위험성을 이해하면서 불병의 최고 안전인 니르바나를 추구하였고, 나는 그 니르바나를 성취하였다; 나는 죽음의 주제가 되며, 죽음의 주제가 된다는 것의 위험성을 이해하면서 불사의 최고 안전인 니르바나를 추구하였고, 나는 그 니르바나를 성취하였다; 나 자신이 슬픔의 주제가 되며, 슬픔의 주제가 된다는 것의 위험성을 이해하면서 무비의 최고 안전인 니르바나를 추구하였고, 나는 그 니르바나를 성취하였다; 나는 번뇌의 주제가 되며, 번뇌의 주제가 되는 것의 위험성을 이해하면서 무번의 최고 안전인 니르바나를 추구하였고, 나는 그 니르바나를 성취하였다. 내 안에서 그 [경과와 상황] 들을 알고 보면서; “나의 해탈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부동이다. 이것이 나의 최후의 태어남이다. 이제 더 이상 [윤회] 반복될 것은 없다.”** (
Ariya-pariyesana Sutta: Majihima–nikaya I.166-167, Trans. G.A.S. 영역, 진월 한역) CBT 64b-65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