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일념) 고요히 물러서 돌아볼 때
어느덧 12월에 들어섰다. 한국 달력은 음력으로 아직 시월 중순임을 보여주나, 양력으로는 섣달 초순으로서 대설 절기 즉, 큰 눈이 내리는 시절이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내다보는 때임을 알려준다. 필자는 지난주에 영국 옥스퍼드 근교의 부라흐마쿠마리스(Brahma Kumaris 梵修女會)의 스피리츄얼유니버시티(Spiritual University靈的大學)가 운영하는 글로벌리츄릿센터(Global Retreat Center地球的避靜中心)에서 엘라이자종교간연구소(Elijah Interfaith Institute, EII)가 주최한 세계종교지도자단(Board of World Religious Leaders, BWRL) 모임에 다녀왔다. 한국 전통선원에서 시행하는 동안거(冬安居)를 영문으로는 Winter Retreat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아무튼, ‘리츄리트’ 라는 말이 우리말로는 뒤로 물러서서 조용히 돌아본다는 뜻으로 통한다. 시절 인연에 합당한 행사였기로, 그 내용의 일단을 나누려 한다.
지난 2003년 스페인의 세빌라에서 시작되어 평균 2년에 한 번 정도로 여러 대륙에 걸쳐 지구촌 각지에서 진행되어온 이 모임에, 올해에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시크교, 등 세계적 종교 지도자와 학자들 30여 명이 모여서, 현실 상황의 공통 관심사에 대하여 생각을 모았다. 기본적인 논제로서, 개인과 공동체 및 지구환경에 대한 시대적 도전과 대응방안에 대하여, 각 종교 전통문화의 지혜와 경험을 공유하며 공동 대처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나흘 동안 한 건물 안에서 숙식을 함께 하였다. 오전의 전체회의에서 여러 종교전통의 명상과 기도를 통해 시대적 공동 사명을 되새기고, 소규모 분임토의를 통해 세부 논의를 심화하며 친교를 다졌다. 중요 의제로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개인 및 사회적 물질주의 경향과 탈종교화 및 종교의 세속화 현상, 인공지능(AI)과 다양한 정보확산, 사회 갈등과 불화, 기후환경위기 등 당면 현황과 미래세대에 끼칠 영향을 내다보며 평화와 치유, 인문과학적 교육과 공동선 구현을 위한 협조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아울러, EII에서는 BWRL을 기반으로 장차 평화의 성지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아시시 (작은형제회 프란시스 성인의 연고지)에 ‘우정과 희망 박물관 (Museum of Friendship and Hope)’를 설립 준비하여, 인간 자연 생명 모두의 평화와 우정 의식을 확산하는 사업과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요즈음 지구촌 상황은 개인과 국가들 모두 물질적 이익과 편의를 위해 경쟁으로 내달리는 실정이다. 대부분 사회에서 빈부 및 세대 사이의 격차도 커지고, 여러 방면에서 독선과 차별 및 배타적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오래 이어지면, 사회의 지속가능성 저하는 물론, 인류 및 지구 미래에 공멸의 가능성 증가가 예상된다. 이러한 위기는 한 나라, 한 민족, 한 종교 등으로 해결할 수 없고, 모든 국가 민족 및 종교 등이 상황을 공감하고 협조하여 공동선을 위한 공동노력으로만 공존공영할 수 있을 줄 안다. 긴 수저로 혼자만 음식을 먹으려다 못 먹고 고통에 신음하는 지옥, 서로서로 먹여주며 함께 즐기는 천국의 비유 우화가 새삼 주목된다. 본래 남의 도움 없이는 홀로 살 수 없는 인연 속 존재인데, 어리석어서 이기주의로 남을 무시하면 결국 자기도 부지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누구나 무언가 얻고 이루려 내닫는 바쁜 생활 가운데, 가끔 잠시 그곳을 벗어나 멈추어서, 자신과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목적은 잘 결정했는지, 방향과 방법은 올바른지, 준비는 잘 되었는지, 지금까지 잘 왔는지, 잘 가고 있는지,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는지, 등등. 나아가 그 길이 자신에게도 좋으며, 사회 공동체 유지에도 좋고 바람직한지도 돌아볼 문제다. 더 큰 발걸음을 위해 잠시 추스르고, 힘찬 정진을 위한 반성과 충전 기회를 가져 봄이 필요하다. 다가오는 연말연시를 앞두고, 부산한 분위기에 들떠서 귀한 시간을 헛되게 보내면 나중에 아쉬움이 커지게 된다. 각자 알찬 살림을 위해서 형편대로, 어디서나 잠시라도 가던 길을 비켜서서 고요히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바라마지않으며, 시조 한 수 적어본다.
지는 해 노을 아래 아쉬움 없잖아도,
처음 뜻 되새기며 걷는 길 돌아볼 때,
나이테 쌓인 언저리 엉긴 보람 아늑히.